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친구와 나눈 아침 카톡 대화

雲靜, 仰天 2025. 10. 29. 09:26

친구와 나눈 아침 카톡 대화

한 친구가 내게 박선영 교수의 글이라면서 보내왔다. 트럼프가 일본을 방문해서 일왕을 만난 것에 대한 소감이었다. 글을 읽고 나는 친구에게 댓글을 보냈는데 박교수의 글과 함께 여기에도 올린다.-편자 주


"아래는 진실화해위원회 박선영 교수의 글일쎄."

절제와 품격의 미학

일본왕을 일본은 천황 天皇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Japanese emperor. '하늘'이라는 뜻이 영역에서는 빠진다. 그냥 황제. 일본 황제.

언론에 따라서는 그냥 '왕' Japanese King이라고도 하지만 대부분 황제 Emperor라고 쓴다.

그런데 '천황'이라 하든, '왕'이라 하든 그 명칭에 상관없이 그의 언행이나 사는 모습은 상당히 소박하다. 놀랍도록 소박하다. 다른 나라 왕실에서 보는 화려함이나 사치?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트럼프 방일에서도 마찬가지. 일본의 새 총리가 트럼프의 전용 헬기인 ‘마린 원’을 같이 타고, 미군기지방문에 동행해 핵잠수함에 같이 올라타든, 관세협정에 종지부를 찍든, 일본이 트럼프 기분 좋으라고 영빈관에 포드 자동차사의 픽업트럭 ‘F-150’을 전시하든, 그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전부 사진과 기사로 대서특필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사진은 트럼프와 일본천황의 만남, 그 장면, 아니었을까? 트럼프가 일본왕한테 손가락질한 사진도 회자됐겠으나, 두 사람이 비밀회동하는 사진 말이다.

조금 전까지 손가락질하던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마주 앉은 그 장소는 외국 정상들이 오면 일본 천황이 늘 회담을 하는 곳이다.

아무 것도 없는 노란 방. 의자와 탁자, 그리고 일본식 꽃꽂이 외엔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텅 빈 방. 높은 천정엔 하얀 종이등이 켜있고, 사방으론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격자무늬 종이벽이 마치도 창문처럼 둘러져있는 심플, 단순, 그 자체의 방.

왕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위엄있는 커다란 그림도 조각도 전혀 없다. 선조들의 사진 하나 걸려있지 않은 텅 빈, 커다란 방.

그것도 방 중앙이 아닌, 깊숙히 걸어 들어가 저 끝에 마주앉아있는 두 사람은 결코 거짓이나 위선의 말을 주고받을 수 없으리라.

이런 것이 품격, 아닐까?
이런 것이 존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제가 주는 위엄. 그걸로 일본은 미국을 사로잡았으리라, 생각하니 또 가슴이 쓰렸다.

일본인들을 사로잡았던 막사발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은근과 끈기는 다 어디로 가고 거짓과 막말, 호통만 남았을까? 그게 '비굴'인지도 모르면서 ㅠ

오늘도 경복궁엔 국적불명, 아니 중국풍의 한복이 휘젓고 다니겠지?

친구가 내게 보내준 위 글에 대해 나는 아래의 답글을 보냈다.


“아무 것도 없는 노란 방. 의자와 탁자, 그리고 일본식 꽃꽂이 외엔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텅 빈 방. 높은 천정엔 하얀 종이등이 켜있고, 사방으론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격자무늬 종이벽이 마치도 창문처럼 둘러져있는 심플, 단순, 그 자체의 방.”

▶일왕만 그런 게 아니고 이것이 보편 일본인들의 미의식이자 문화인 걸, 일본의 사찰이나 가정집 뿐만 아니라 일장기 등등이 그렇듯이 꾸밈을 최소화 한데서 오는 단순미, 소박함, 적적함이나 고즈넉함, 여백의 미 등, 이걸 일본인들은 “와비(侘び)” 혹은 “사비(寂)”라고 칭한다네. 일본인들의 이런 정신과 의식은 禪불교의 마음 경계에 닿아 있어. 사실 선불교는 원래 네팔에 연원을 두고 있지만(석가모니의 槨示雙趺가 상징하듯이) 네팔과 인도땅을 떠난 이후론 중국이 원조인 것처럼 개발됐고, 현재는 한국도 선불교가 독특하고 깊이 있게 발전한 상태이지만 서양 사람들은 선을 뜻하는 zen이라는 영어단어가 상징하듯이 일본이 선의 원조라고 생각하고 있지. zen이라는 단어도 禪이라는 한자의 일본어 음으로 통용이 되고 있다네. 서양에선 중국어의 “chan”도 아니고 한국어의 “sun”으로도 불리지 않고 있지! 

礻+單=禪자가 말해주듯이 사물을 간단하게 본질만 보는 게 선이 지향하는 세계인데 일본인들이 이 정신을 에도(江戶)시대에 들어와서 더 확장시켰다네. 다도의 보급이나 일본 다도의 원조격인 센리뀨우(千利休)를 이용한 토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랬듯이 다도문화를 정치에 활용함으로써 선불교와 다도가 習合되면서 일본인 전체에 하나의 정신적 가치로 받아 들여져서 일반화 된 것이라네.

하는 짓이 천박하고 무식해서 일본 만큼 혹은 그 이상이나 선연하고 한국다운 우리의 정신 문화를 깊이 있게 우려내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문제지. 트럼프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에서 체험한 그런 일본적 경험은 오늘부터 한국에 와서 이재명을 만나서 접하고 나눌 대화 내용들과 완전히 극과 극으로 대비가 되면서 트럼프의 심연에 각인될 걸세. 이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지네. 보통 사람보다 더 용속하고 품격 제로의 인간을 대단한 지도자로 받들어 국가의 간판얼굴로 세워놓은 걸 생각하면 마치 내가 죄 지은 듯이 지금도 얼굴을 들 수가 없다네. 간교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 날뛰고 있어 구토가 날 듯한 세상,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사는 이유라네.

2025. 10. 28. 09:1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