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10월 13일 오늘의 역사 단상 : 그린니치 천문대 세계 표준시

雲靜, 仰天 2025. 10. 15. 01:37

10월 13일 오늘의 역사 단상 : 그린니치 천문대 세계 표준시


10월 13일 오늘은 근대 이래 인류의 삶에 너무나 크게 영향을 미쳐서 그 영향을 가늠하기 힘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의 평균시(GMT)가 세계 표준시로 정해진 날이다. 1884년이었다. 미국 워싱턴에서 25개국 대표들이 모여 그리니치 전문대를 지구상의 위치를 가늠하는 경도의 시작점인 본초자오선의 기준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몇몇 국가들이 저마다 독자적인 시간 기준을 갖고 있어서 혼란이 초래되고 있었다. 세계 표준시가 된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은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시간을 산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조수 등의 영향을 받아 자전 속도가 달라져서 시간이 조금씩 부정확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1967년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세슘 원자의 진동을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재기로 했다. 그리고 1972년부터는 협정 세계시인 UTC로 명칭을 바꾸어 사용해오고 있다.


시간(time)이란 무엇인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즉 관찰자)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측정한 평균 태양시를 세계 표준시각인 세계시로 정하고 있지만 이는 자연계의 진리와 다른 하나의 가설적 개념이다. 사실 하늘을 보는 관찰자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시각’을 측정하므로 그 위치가 다르면 시각의 값이 달라진다. 지구 자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의 증가에 관한 과학적 검증 결과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사실이 증명 된지 오래다. 자연계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지만 자체의 질량이 없어 쌓이지는 않는다. 간극 없이 연속되는 시간 가운데 매일매일은 동일한 하루임에도 인간은 365일(티베트인, 인도인, 인디언 등 종족에 따라 일수가 다르기도 함)을 1년으로 만들어 시간을 쌓아가면서 과거를 망각하고, 기억하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를 인습적 시간(conventional time)이라고 한다.

인습적 시간이란 연속되는 시간을 초, 분, 시간, 일, 월, 년 등 분리된 시간으로 나누는데 사용되는 사회적 장치를 말한다. 가령 1시간을 60분, 하루를 24시간, 1년을 365일로 정한 게 그런 예다. 이는 자연계의 현상적 시간과 별개로 인간이 고안해낸 발명품으로서 인식의 틀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철학에서 시간을 외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내부의 형식(혹은 개념)으로 보는 이유다.(베르그송, 칸트, 헤겔 등). 불교철학에서도 시간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편의적으로 설정된 인간의 관념(과거, 현재, 미래의 3세, 찰나, 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인간은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인식하는가? 인간은 모든 사물에 대한 이해의 토대인 시간을 축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파악한다. 시간은 인간이 공간과 함께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는 주된 개념이다. 인간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1년을 365일로 정해놓고 세계는 거기에 따라 움직인다. 1초 차이로 하루가 달라지고, 1초 차이로 1주가 달라지고, 1초짜리로 한 달이 달라지고, 1초 차이로 1년이 달라진다.

단 1초 차이로 해가 달라지듯이 1초 차이로 시간 단위가 불가역적으로 전이되는 건 인간이 인습적 시간으로 인식한 결과일 뿐 자연계의 물리적 진리와는 다르다. 시간이라는 인식의 틀에 예속돼 단 1초 차이로 사람들은 나이를 더 먹고, 에너지가 모이고 각오가 달라지는 것처럼 마음이 달라지고 많은 변화를 수반한다. 1년 주기와 나이가 표상하듯이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누적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인습적 시간 때문이다. 사실 1초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역사에서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추동하기 어려운 시간의 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과 인식은 이 1초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다. 이 1초는 매년 ‘새해’의 ‘주술’이다.

그런데 만약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일지라도 시간을 분절해 1년을 하나의 단위로 매듭을 만드는 1년 주기가 없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밤낮만 바뀌는 ‘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삼세 개념과 변화의 의미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문명적 기능이 없게 된다. 당연히 역사와 문화도 생성되지 않는다. 무엇 보다 인류의 태반이 정신적 질환을 앓을 수 있다. 망각하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의 작용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사회가 혼돈과 광란의 도가니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발견 또는 발명품들, 예컨대 문자, 불, 숫자(특히 아랍인이 만든 제로 개념), 제철기술, 4대발명품(종이, 화약, 목판인쇄술, 나침판), 증기기관, 페니실린, 컴퓨터 등등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문명의 이기보다 1년을 365일을 주기로 정한 ‘1년 주기’가 더 수승한 지혜의 결정체라고 보는 이유다.

인습적 시간은 공간, 사람의 마음과 숫자 등과 함께 현실에 대한 인간들의 표상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식의 도구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그러한 인위적인 개념적 틀에 구애 받지 않고 ‘해 바뀜’을 인습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게 좋다. 시간에 끄둘려 살기보다 시간을 통제해 삶의 주인이 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시간을 어떻게 통제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인간의 인식과 각각의 삶의 자세에 달렸다. 세계 표준시 제정 역사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2025. 10. 13. 10:2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