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날조와 왜곡이 범람, 횡행하는 동북아시아, 종국은?
동아시아 역내엔 해마다 10월 10일이 되면 이 날을 국경일로 경축하는 곳이 있다. 대만과 북한이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반만년 간 지속된 왕조체제를 무너뜨리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체제인 중화민국을 수립한 것을 기념한 대만의 '쌍십절'(雙十節, Double Ten Day) 그리고 김일성이 북한노동당 위원장이 된 1949년 6월 30일이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일임에도 이것을 마치 1945년 10월 10일에 김일성이 조선노동당을 창건한 것처럼 조작한 이른바 북한판 ‘쌍십절’이다. 전자는 신해혁명의 거사일을 기념하는 진짜 ‘쌍십절’이지만, 후자는 북한 당국이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조작한 날조의 가짜 ‘쌍십절’이다.

북한은 물론, 한국의 언론 매체들도 온통 오늘이 조선노동당 창당 제80주년 기념일이라고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햇수로도 제80주년이 아니라 제76주년이고 날짜도 오늘이 아니라 지난 6월 30일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 공산당도 창당 시기를 왜곡하고 인민들을 속여온지 이미 반 세기가 훨씬 넘는다. 북한의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 Workers' Party of Korea)과 중국 공산당(中国共产党, Communist Party of China=CPC 또는 Chinese Communist Party=CCP) 두 당의 창당일 날조, 왜곡을 핵심 내용만 간추려 본다.
북한은 과거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 또 지금 김정은 시대에도 동일한 의도에서 김일성이 1949년 10월 10일에 조선노동당을 창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역사 날조다. 그 前史를 보면 새빨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북한에 '공산당'이라는 명칭이 출현한 것은 해방 직후였다. 예컨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1945년 10월 13일에 창설됐지만 김일성이 만든 것은 아니었다. 1946년 6월 22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명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꾸고 서울에 지하조직 형태로 연고를 두고 박헌영이 주도한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독립했다. ('북조선공산당'이라는 정식 이름과 공식적인 표기는 1946년 4월 19일이 최초였다는 설도 있음.) 1946년 8월 28일,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은 합당을 선언하고 당명을 '북조선노동당'이라고 불렀다. 북한에 “노동당”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때의 북조선노동당은 '조선노동당'의 전신이다.
조선노동당은 훗날 김일성이 창당한 것이라고 속인 1945년 10월 10일에 창당된 게 아니라 1949년 6월 30일에 창당된 것이다. 평양 모란봉 회의장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남조선노당과 북조선노동당이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된 것이다. 북한은 줄곧 통합 사실을 숨기다가 그 이듬해 6·25전쟁을 도발한 후에 알게 했다.
그런데 정은아 어쩌냐! 북한이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처음부터 치밀하게 왜곡을 작정한게 아니어서 이미 기발간된 북한 공간사의 서책들에서 다 밝혀져 있단다. 예컨대 1958년 1월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간행된『조선통사』에서 1945년 10월 10일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창건일로 기술하고 있으며, '북조선노동당'의 창건은 1946년 8월 29일이었고, 약 1년이 지나 1949년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이 각기 해산되고 6일 뒤인 6월 30일 이 두 당이 합쳐 현재의 조선노동당이 창건했다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이 이처럼 조선노동당 창당일을 날조해서 1945년 10월 10일로 삼은 까닭은 두 가지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김일성이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김일성이 북한에 단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운 것을 기념해오고 있는 1948년 9월 9일의 소위 '구구절'에 맞춰서 조선노동당 창건일도 기억하기 쉽게 쌍십절로 잡은 게 아닐까 하고 추측된다.
그러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은 어떤가? 중공은 중공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1921년 7월 23일을 중공 창당일이라며 중공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열어서 창당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중공은 전국적으로 요란하게 창당기념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엔 창당 제100주년이라며 주한 중국 대사관에서도 코로나 사태의 와중이었음에도 국내 중국 전문가들(사실은 중국 전문가라기보다는 친중파 지식인들)을 불러서 밥도 먹이고 좌담회를 벌였다.
그런데 중공의 1921년 7월 창당설은 날조이자 역사왜곡이다. 이 날은 단지 여름방학 중이었던 상하이 뽀원(博文)여고에서 비밀리에 중공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됐을 뿐이다. 중공은 이미 그 이전에 1920년 11월에 창당이 된 상태였다. 크레믈린궁의 배후에서 레닌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게 조종돼오던 코민테른의 자금 지원과 지시를 받아 전국 각지에서 사전에 연락된 공산주의자와 疑似공산주의자 13명이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해서 당강을 제정하고 창당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중공은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자 이때가 아닌 그 이듬해인 1921년 7월 하순에 창당한 것으로 날조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1920년 11월의 창당 발기 대회에는 마오쩌둥이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뻬이징(北京)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중이었다. 마오가 처음 중공에 참여한 것은 1921년 7월의 제1차 전국대표 대회였다. 중공 후난(湖南)성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마오쩌뚱은 자신이 그렇게 빨리 국가 권력을 잡을 줄 몰랐었는데 1949년 10월 국가권력을 잡고 난 이후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었다. 그가 중공의 창당 멤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위신과 권위가 설리가 없다는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졸저(서상문 저,『혁명러시아와 중국공산당 1917~1923』, 서울 : 백산서당, 2008년 제2판)에서 언급했다시피 중공 혁명역사가 마오의 입장에서 재구성됐다. “인류역사가 그래 왔듯이 권력주체의 교체에 따른 새 시대의 역사적 궤적은 왕왕 정권 창출자, 즉 이긴 자의 입장에서 서술돼 왔다. 과거사에 대한 해석권과 새 시대의 의제 설정권 모두 그들이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마련이다.
이때 역사의식이 박약해 올곧지 못한 유약한 역사가는 권력자의 입이 되곤 한다. 중공 치하의 사가들은 거개가 毛澤東의 혁명역정을 유일한 정통노선으로 떠받들었다. 1940년대 초엽의 ‘延安整風’ 시기 毛澤東은 당원들로 하여금 중공당사를 학습케 함으로써 당내의 배타적 입지를 공고히 한 측면이 있는데, 이 시기 개시된 소위 중공당사 연구 혹은 그 학습을 지시한 목적은 毛 자신이 걸어온 노선의 무오류성을 강조, 주입하고 이를 현재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위 맥락은 북한의 정권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당 정권에 적용된다. 독재 정권의 지속과 권력의 강화라는 관성 때문이다. 요스트 A. M. 메이를로가 지적했듯이 독재자가 “역사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신화를 세우며, 전체주의 지도자에게 힘을 싣고 돋보이게 만들고, 불행한 인민들에게 혼돈을 일으키게 만들면서 인민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언어는 천천히 최면을 거는 독재자의 구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 중공의 역사 왜곡이나 날조와 관련해서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가 더 큰 문제다. 차라리 보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나 중공의 역사는 사실과 달리 많은 부분이 거짓말로 이뤄져 있다. 특히, 마오쩌뚱을 중심으로 기술된 중공의 역사는 거의 절반 이상이 거짓말인데 국내학계에서는 그 점을 제대로 알거나 말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부족하고 언론은 더더욱 그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히려 북한과 중공의 거짓말을 부지불식간에 인정, 동조하고 그런 왜곡이나 날조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거나, 혹은 무신경하게 그런 범죄에 휩쓸리고 마는 것이다. 북한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날조라는 사실을 들춰내기보다는 북한이 말하는 대로 인정하면서 보도해오고 있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식이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8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수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며 “10일 평양에 비 예보가 있어 쌍십절 전날인 9일 열병식이 열릴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은 당 창건 기념일 당일이나 전날 저녁에 열병식을 개최해 왔다.”「북·중·러 밀착, 이번엔 평양… 10·10절 열병식에 중·러 서열 2위 참석 : 北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 준비」, 『朝鮮日報』 (2025년 10월 9일).
그러니 역사나 사안의 진실을 알기 어려운 일반 국민들이 해마다 그런 보도를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북한 노동당의 창건일이 1945년 10월 10일인 걸로 믿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 외에 한국은 어떤가? 국내에는 중국이나 북한에서 직접 밀파된 자들이든 아니면 토착적 부역자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나 사이비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암약한지 오래다. 이재명도 사회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전혀 모르는 무식꾼으로 의사사회주의자 흉내만 내고 있다.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이재명 정권의 거짓말이 패악질의 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북한, 중공과 동일한 거짓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점입가경의 진앙지는 어디이겠는가!
단언컨대 과거 이재명이 저지른 범죄행각은 앞으로 더 큰 것들이 튀어나오고 일파만파로 번질 것이다. 도덕적 자격 미달에 깜냥도 안 됨에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과욕을 부린 것 자체가 결국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될 것이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고 쉽게 속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의 과보를 피해 갈 수 없게 돼 있다.
원래 19세기 이래 전개돼온 세계 공산주의운동 역사를 보면, 마르크스보다도 특히 세계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레닌주의'가 형성된 연원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이래 공산당은 목적을 위해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거짓으로 협박, 공갈, 편취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는다. 한 마디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부모 형제까지 도구화하고 인륜을 저버리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자구책임과 동시에 역사의 오랜 습이다. 북한과 중공이 그렇듯이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 경우엔 이재명 본인 자체의 성격적 특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아뭏든 공산주의자들이든 의사 공산주의자들이든 그들의 말로는 한 곳으로 수렴될 것이다. 파국을 맞는 것 외엔 없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거짓과 악행 속에 사는 국민들에겐 견뎌내기가 곤고하고 고통스럽지만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2025. 10. 10. 14:1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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