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면서
중국이 지대물박(地大物博), 이목번다(耳目繁多)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중국인들처럼 인도인들도 자기들에겐 뭐든지 없는 게 없고 세계 최고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예컨대 인도인들은 흔히 “『마하바라타』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도 있고,『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도 없다”고 한다.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의 3대 서사시임) 과연 그럴까? 이건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소리로 인도인의 국뽕이다.
짧은 기간 동안 인도에서 내가 본 것들은 지극히 일부였다.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 빙산 아래에는 내가 보지 못한 다양하고 수 많은 모습들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2025년 1월 21일부터 스리랑카에서 첸나이로 건너와서, 코지코드, 포르 코치, 고아, 뭄바이 순으로 답사했다. 인도 서해안의 남쪽에서 북상하면서 주요 거점 도시들을 훑어봤다. 내가 둘러본 도시들 중엔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도 있고 수십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도 있다.
전체적으로 인도 정부의 국가 발전 전략과 시책을 미리 알고 여행을 한 게 아니어서 내가 본 것들 중엔 잘못 짚은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도시의 운영과 시스템 및 작동방법에 대해선 시간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첸나이에서는 인도 경제의 역동성을 봤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건설 현장과 활기찬 산업단지는 인도가 더 이상 잠자는 거인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대국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코지코드에서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도 서해안의 역사와 향신료 무역의 흔적을 만났다. 오랜 세월 아랍과 유럽, 동아시아를 잇던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도시 곳곳에는 서로 다른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포르 코치에서는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이 남긴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중국식 어망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작은 항구도시였지만 인도양을 무대로 펼쳐졌던 세계사의 현장을 직접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아에서는 프란시스코 자비에르의 유해가 안치된 바실리카 성당을 찾아갔다. 힌두 문화가 중심인 인도 안에서 포르투갈 식민통치가 남긴 가톨릭 문화유산은 또 다른 인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뭄바이의 활기찬 에너지와 역동성은 인도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현재 뭄바이는 21세기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정체성은 역사와 오늘날의 세계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2,0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이 도시는 인도 경제의 핵심이다. 새로운 기회와 활기찬 문화를 찾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성공과 빈곤이 뒤섞인 이 도시는 복잡한 미래를 보여준다. 볼리우드와 같은 산업은 번창하는 반면, 다라비와 같은 빈민가는 여전히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세계화는 뭄바이의 문화적 혼합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동시에 전통과 유산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는 과제도 던지고 있다.
인도의 이직률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아래 그래프에 나와 있듯이 2023년 1분기 현재 IT산업의 빅3 기업 직원들의 이직률은 평균 24%에 육박하고 있다. 대부분 외국 기업에 다니는 고액 연봉자의 이직률이 높다. 그래서 삼성전자 공장을 첸나이에 진출시켜 놓은 한국 등 외국 기업들이 인력 유출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아쉬움으로 남은 것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뭄바이 유대인 공동체가 남긴 풍부한 문화유산과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뭄바이는 오랫동안 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 바그다디(Baghdadi) 유대인 등 여러 유대인 공동체가 정착하여 상업과 금융, 교육, 문화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도시이다. 역사적인 회당(synagogues)과 공동묘지, 학교, 각종 문화유적은 오늘날에도 그들의 발자취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짧은 일정 탓에 이러한 유산을 직접 답사하지 못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오후 한 나절에 걸쳐 답사한 다라비(Dharavi) 역시 마찬가지였다. 흔히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로 알려져 있지만, 다라비는 단순히 '가난한 동네'만은 아니다. 수많은 소규모 공장과 공방, 재활용 산업, 가죽·도자기·섬유 산업이 밀집한 거대한 생활경제 공동체이며, 강인한 생명력과 공동체 정신으로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다라비의 모습은 영화 속 이미지보다 훨씬 복합적이라고 한다. 그들의 삶과 일상, 회복력과 창의성은 몇 시간의 관광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다음에 뭄바이를 다시 찾게 된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이면을 들춰보고 싶은 곳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여러 전국 정당들 가운데 양대 축은 인도인민당(BJP)과 국민회의(Congress)이다.
BJP은 1980년에 창당된 정당으로, 인도 Congress와 함께 인도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 정당이다. 1억 8,000만 명에 달하는 당원을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당원이 많은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약 1억 명의 중국공산당보다도 많다. 인도인민당은 경제적으로는 민영화를 장려하고, 정치적으로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우익 성향의 정당이다. 현재 집권 여당으로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2014년부터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1월 30일 오늘은 내가 인도 여행을 끝내고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날이다. 이 날은 마침 지난 세기 1948년 인도의 독립 영웅 마하트마 간디가 향년 78세의 나이로 힌두사원에서 반이슬람 광신자의 총에 맞아 암살당한 날이기도 하다. 간디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인류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인류는 대양과 같다. 비록 대양 속의 몇 방울 물이 더럽혀진다 하더라도 대양 전체는 오염되는 것이 아니다.”
간디의 정치적 후계자 네루는 스승의 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따스하게 감싸안으면서 밝게 비추어주셨던 태양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 모두 그분의 뜻을 기리고 따르도록 합시다.”― 네루 총리 추도사
인도의 미래는 밝다. 서광이 비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나라답게 젊은 인구와 풍부한 인적 자원,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는 인도를 21세기의 새로운 중심 국가 가운데 하나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도 정부 앞에는 빈부격차, 종교와 카스트 갈등, 도시 기반시설 확충, 환경오염과 교육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해 있다. 거대한 가능성과 거대한 과제가 공존하는 나라, 그것이 오늘날 내가 바라본 인도의 모습이었다.
내가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체험한 것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었다. 길거리나 관광지에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반갑게 인사를 건네거나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여성도 있었다. K-팝과 K-드라마를 비롯한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았겠지만,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역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작은 호의는 여행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인도 땅을 떠나면서 간디의 사망일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1637년(조선 인조 15년) 1월 30일, 조선의 인조가 남한산성을 떠나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올리며 항복했던 우리 민족의 치욕스러운 역사였다.
간디의 나라에서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지도자를 기리는 날인데, 우리에게는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겹쳐 떠올랐다. 같은 날짜가 한 나라에는 자긍심의 역사이고, 다른 나라에는 뼈아픈 반성의 역사라는 사실이 새삼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다.
결국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카메라 속 사진이 아니라 마음속에 새겨지는 기억인지도 모른다. 첸나이의 역동적인 산업 현장, 코지코드와 포르 코치의 오랜 해양문명, 고아에 남아 있는 유럽의 흔적, 그리고 잠들지 않는 도시 뭄바이의 거대한 에너지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인도는 내가 생각했던 나라가 아니었다. 또한 내가 짧은 여행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그만큼 인도는 복잡했고, 다양했고, 거대했다.
언젠가 다시 이 땅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이번 여행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인도를 만나고 싶다. 세 번째 여행은 끝났지만 인도에 대한 나의 탐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5. 1. 30. 15:50.(현지 시각)
뭄바이 크해트라파티 쉬바지 국제공항(Chhatrapati Shivaji Airport)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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