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주석 쩡리원(鄭麗文)-시진핑의 북경 회담, 미국의 반응 및 민진당의 대만독립 정책 簡介
시진핑(习近平, 1956~)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하 직함 생략)은 현지 시간 금요일 오전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4월 7일(화)에 '평화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을 방문한 대만의 중국국민당(KMT) 신임 주석 쩡리원(鄭麗文, 1969~) 및 그의 대표단과 회담을 가졌다. 쩡리원은 2025년 10월 18일 중국국민당 주석으로 당선되고 11월 1일 전당대회에서 주리룬(朱立倫) 주석의 후임으로 취임한 낯익은 인물이다.
눈에 띄는 장면은 시진핑이 이번 회담에서 대만에 대한 태도를 이전보다 약간 누그러뜨려서 '하나의 중국, 세 개의 담론' 등 전통적인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고 그 대신 중화문화와 중국역사 등의 비교적 '소프트'한 문제를 논한 점이다. 물론 그는 하나의 중국과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는 발언은 잊지 않았다.

이 회담에서 시진핑은 대만의 독립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쩡리원 주석(이하 직함 생략) 역시 대만독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쩡리원은 또한 “1992년 합의”('92共識'을 말함)와 “대만 독립 반대”가 국민당과 공산당의 공통된 정치적 기반이라고 언급했다.
('92共識'에 대해선 아래 필자의 학술논문에 내용이 핵심적으로 설명돼 있음)
https://suhbeing.tistory.com/m/1616
쩡리원은 대만해협이 더 이상 잠재적 갈등의 중심지가 되거나 “외부 세력의 개입”을 위한 체스판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외부 세력”이란 미국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미국의 과도한 대만 정국에 대한 개입을 우려해오고 있는 국민당 및 당외 대만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쩡리원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시진핑에게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제도화하고 점진적으로 평화적 틀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면서, 정치적 상호 신뢰 재건, 대만의 국제적 위상 강화, 대만-중국의 “지역경제통합” 참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장기적으로 '대만독립'을 지향하는 집권 대만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이 즉각 반박했다. 먼저 민진당의 총통부 대변인 궈야후이(郭雅慧)는 이번 공산당과 국민당 지도부 간의 회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과거 국민당과 중공이 동의한 ‘1992년 합의’(대만 해협 양안은 '하나의 중국'에 속하지만 '중국'의 실체에 대해선 중국과 대만이 각자 해석하기로 한다)가 양당의 공동 정치적 기반으로 이용하도록 허용한 것이고, 국제사회의 대만해협 평화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외부 간섭’으로 규정하며 이번에 쩡리원이 베이징의 주장에 동조한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대만 총통부는 국민당의 이러한 “자격 박탈적이고 자멸적인” 행태를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대만 행정원 산하 대륙사무위원회도 쩡리원의 국민당과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이 금번 북경회담에서 ‘1992년 공식’과 ‘대만 독립 반대’라는 공동의 정치적 기반을 재확인한 것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국민당의 의도가 ‘중화민국을 제거하는 것’이며, 북경이 국민당-중국 공산당 회담을 일방적으로 주도한 것은 대만혀협의 ‘양안 문제를 중국 내정에 편입시키고’, 대만이 중국 내정에 속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국제 여론을 교란함으로써 ‘외부 간섭 반대’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 말미에 대만의 2300만 주민만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과 쩡리원의 회담 이후, 미국은 대만해협의 현상 변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4월 10일(금), 시진핑과 쩡리원의 북경회담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변인은 미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양측 간의 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박을 중단하고 의미 있는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의미 있는 양안 교류는 북경 지도부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만 정부 간의 무조건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미국이 기존에 해오던 대로 북경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만 당국과 대화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 성명에서 미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으며, 대만해협 분쟁의 최종 해결책에 대해선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어느 쪽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 우리는 대만해협의 대화와 안정을 지지하며, 대만해협을 둘러싼 이견들이 강압 없이 평화적으로, 그리고 양안 국민 모두에게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라고도 밝혔다.
대변인은 또한 “의미 있는 양안 교류는 북경지도부와 대만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간의 무조건적인 대화는 물론 대만의 모든 정당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경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중단하고 대신 대만과 의미 있는 대화에 임할 것을 일관되게 촉구해 왔다”고 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경회담 후 미국의 소리(VOA)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는 지난주 북경회담에 앞서 자신이 발표한 국무부의 입장을 일맥상통하게 대시 반복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 국민당과 중공 외에는 전부 중공의 페이스에 끌려가는 듯한 형식의 대화는 반기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쩡리원은 왜 시진핑을 만나려고 했을까? 아직까지는 감춰진 방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건 없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나 동기로는 그가 북경에 비교적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양안 평화 협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양안 간에는 여전히 합의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즉 '제3차 국공합작'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인데 이것이 회담 목적의 전부라면 새로울 게 전혀 없다.
회담 후, 쩡리원은 국제사회와 대만의 유권자들에게 “양안 평화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며, 양안 대화가 더욱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했다. 이는 현재 양안의 침체된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청류”를 유입시키는 것이라고 자신의 시진핑과의 회담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건 국민당 주석으로 선출되고나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국민당의 기존 양안통일 당론을 대내외에 인식시키려고 한 중국방문에 대한 자화자찬이다.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은 쩡리원이 말한대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고 또한 “청류”를 받아들일 의사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쩡리원이 언급한 “淸流”의 개념을 조금 확대 해석하면, 이에 대해선 필자가 이미 1990년대부터 거론한 바 있지만 중국이 만약 대만과의 통일을 진실로 원한다면 대만과 대등한 관계에서 대만에게 국가 및 정부권력의 최소 반 이상을 내 주고, 특히 인민해방군을 대만군의 지휘하에 두면 된다. 그런데 시진핑이나 중공은 그렇게 할 의사가 전혀 없다. 말처럼 쉽지 않고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쩡리원의 “청류”발언의 반향은 대만 국민당에만 국한되고 말 것이다
쩡리원은 대만–중국 관계에서 민진당의 대만 독립 노선에는 비판적임과 동시에 국민당 내에서도 비교적 강경한 중화민국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한 친중(親中) 인사라는 뜻은 아니다. 국민당은 민진당처럼 대만의 현상유지와 “양안 긴장 완화”를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후자의 “양안 긴장 완화”의 방법에선 민진당과 다르다.
참고로, 이참에 민진당의 대외정책 기조이자 대중국정책이기도 한 대중국 정책 겸 대만의 국가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현재는 어떤 상황인지 노선변화에 대한 상세한 맥락 설명 없이 간단하게 소개한다. 이것은 민진당 역사의 한 축임과 동시에 대만 민주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민진당이 창당된 것은 1986년 9월 28일이다. 당시 사실상 불법상태에서 출범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민진당의 창당은 대만 현대사에서 대만 민주화의 상징적 사건이랄 수 있다. 당시는 서슬 퍼런 국민당의 독재와 계엄령상태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당시 불법·금기였던 “대만 독립”을 강령에 명시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국민당 일당 독재체제의 반대와 민주화 그리고 “대만 주민의 자결권”을 강조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만 독립을 표현했다. 즉 독립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로 출발한 것이다.
그 뒤 민진당이 정당으로 인정 받고 합법화된 것은 그 이듬해 1987년 7월 장징꿔(蔣經國) 총통의 계엄령 해제 때부터였다. 그 해 7월 14일, 장징꿔 총통이 계엄령 해제를 명령하는 '총통령'을 공포했고, 그날 밤 자정인 7월 15일 0시를 기해 1949년부터 38년간 이어져 온 세계 최장기 계엄령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때부터 민진당은 야당으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당세를 확장하면서 성장하다가 2000년에 이르러 민진당의 총통 후보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민진당은 대만독립 노선을 1986년 창당때는 직접적으로 당강에 표명할 수 없었고, 자결권을 주장함으로써 대만독립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당강에 명확한 독립 강령이 나타난 것은 1991년이었다. 그 해 10월 13일, '대만독립강령(台獨黨綱)'이 민진당에서 통과되면서 명확한 “독립 강령”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선 '독립 강령'이 대단히 급진적인 것이었다. 민진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는데 '대만 독립 강령'은 “대만은 주권 국가”이며, “필요하면 국민투표로 독립 선언”을 할 수 있으며, “대만 공화국 수립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진당이 명확하게 ‘독립 정당’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 뒤 1999년에 가서 대만은 “이미 독립 상태”라는 문구가 당강에 나타났다. 동년 5월 8일, 민진당은 당시 제8대 제2차 전국 당원대표대회에서 1991년의 급진적인 '독립 강령'에서 한발 물러나 현실적인 집권 전략으로 선회하며 '대만전도 결의문'(台灣前途決議文)을 채택해서 당강으로 통과시켰다. 이 당강에 “대만은 이미 주권 독립 국가”이며, 국호는 중화민국(ROC)이고, 이것의 변경 여부는 국민투표로만 가능하다고 명문화했는데 대만은 “이미 독립 상태”라는 개념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대만전도 결의문'은 역사적으로 볼 때 6.25한국전쟁(1950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 미국과 맺은 '중미 공동방어조약'(1954년, 中美共同防禦條約,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China),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 1979년)과 함께 대만과 대만인의 운명을 결정지은 5대 획기적인 변화였다. 양안관계의 역사에서 파장과 의미가 작지 않다. 이 결의문은 그간 민진당 내 급진파들이 부르짖어온 '대만공화국' 건립이라는 급진적 구호를 뒤로 하고, 중화민국 체제를 사실상 수용하면서 2000년 총통 선거에 대비해서 당 내부의 통합을 꾀하면서 집권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민진당 총통 후보였던 천수이볜이 집권하기 위해선 '독립 강령'에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과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과 국내 여론 등을 인정하자는 이른바 '현실상황 인정론'이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 결의문은 2000년에 대만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던 것으로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민진당 노선의 원칙이다.
요컨대 천수이볜이 집권한 2000년 이후 “현상 유지(Maintain the Status Quo)”노선이 정착됐다. 천수이볜 총통에 이어 집권한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도 이를 받아 들여 대외 정책 기조가 되면서 차이잉원 정부 때부터 완전히 확립됐다고 보면 된다.
2년 전 2024년 1월, '친미 반중 대만독립 강경파' 이미지가 센 라이칭떠(賴清德)가 제16대 대만 총통으로 당선됐다. 민진당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2026년 4월 현재도 “현상 유지”와 대만은 “사실상 독립”이라는 게 민진당의 공식 입장이자 라이칭떠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민진당이 밟아온 궤적을 뒤돌아 보면, 1999년이 2026년 현재 노선의 기원인 된 해였고, '台灣前途決議文'이 지금 민진당의 당론인 “현상 유지”의 이론적, 논리적 뿌리가 된 셈이다. 지금 민진당이 “온건해진 것”이 아니라 과거 독립 선언이 가능한 정당에서 지금은 “독립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는 입장인데, 목표가 바뀐 게 아니라 집권을 위해 표현과 전략을 바꾼 것이다.
지금도 민진당의 공식 강령에는 여전히 “주권 국가로서의 대만(Republic of Taiwan) 수립” 같은 표현이 들어가 있다. 실제 민진당의 정책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는 노선인데 그들은 대만의 “현상 유지와 이미 독립 상태”라는 입장을 지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독립을 희구하는 자신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일부 대만 국민들의 표를 의식해서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정당이고 강령 차원에서도 그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집권 민진당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주장한다. 대만은 이미 사실상 독립 국가(중화민국)이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독립 선언”은 필요 없다는 논리다. 대신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것인데, 중국과 통일을 추진하지도 않고 대만 독립도 추진하지 않는 현상유지가 핵심 정책이다. 민진당은 집권을 해도 헌법 개정이나 “대만 공화국” 선포 같은 법적 독립 조치는 추진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민진당은 “친독립 성향 정당이지만 현실적으로 현상 유지 선택”이라고 보면 된다.
민진당이 창당된 1980년대 중반(1986년 9월 28일)의 초기 선명하게 내건 중국 대륙 통일정책의 당론이 이렇게 바뀌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단순한 노선을 후퇴시켰다기보다 현실 정치 때문이다. 중국의 강한 군사·외교 압박과 함께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현상 유지” 방침에 호응하는 측면이 있어 현상유지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또 국내적으로 “급진 독립”보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대만인들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실상을 짚으면 2026년 4월 현재 민진당의 당 노선은 '투 트랙'이다. 이념적으로, 내부적으로는 대만독립을 지향하면서도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현실 정책상 현상 유지라는 이중 구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쩡리원이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을 만나 회담한다 해서 이런 구도가 바뀔 수 있을까? 미동도 않을 것이다. 중국-대만 관계의 변화는 국민당과 중공의 성과 없이 되풀이되는 영수회담이나 교류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민진당과 중공의 합의에 달려 있다. 열쇠는 이 두 당의 손에 있다.
2026. 4. 12. 10:00.
일산 향동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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