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간의 解怨
“육군 소위 서상문!”
귀갓길 술기운에 문을 열며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것이 못 이룬 당신의 한인 줄
어린 아들은 알 턱이 없었다.
태어나신 안강에서
열 일곱 고등 1학년의 아버지
死地에 투입될 극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아들을 숨겼다.
그날 피한 건 안강-기계전투였지만
세상은 꿈많은 청년에게
군 기피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머리 좋고 재주 많던 아버지는
인주 같은 낙인 하나로
평생 제 이름의 변변한 직업 하나
제대로 갖지 못했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이면
부자는 장기판을 앞에 두고 대적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전법을 익혀
고수가 되었다.
평생 아들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씀 한마디 없던 아버지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입학식과 졸업식에는
한 번도 오지 못하셨지만,
학교 대항 시민체전
고등부 400미터 계주
마지막 곡선에서
아들이 선두 주자를 제치던 날,
관중석에서 두 팔을 번쩍 들고
아들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부모님 모두 떠난 뒤에야
아들은 시계 태엽 감듯
지난날을 천천히 되감아 본다.
그제서야 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장기로, 서예로, 응원으로
건네주던 눈빛과 체온,
이따금씩 온몸으로 불러 주던
자식의 이름이었다.
가시고 난 뒤에
부모와 자식 간에 남은 맺힘은
자식이 두고두고 되감아
제 손으로 풀어야 할 매듭이다.
질긴 매듭 하나씩 풀릴 때마다
아버지의 한도,
아들의 한도,
조용히 이승인연 이전으로 돌아간다.
2026. 9. 25. 10:35.
일본 큐우슈우 아소산 가는 버스 안에서
雲靜 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