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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창당 및 제1차 전국대표대회기념관(상해) 초청 '중공창당사연구센터' 발족을 위한 중국 국내외 전문학자 좌담회 참석

雲靜, 仰天 2015. 10. 9. 10:29

중국공산당 창당 및 제1차 전국대표대회기념관(상해) 초청 '중공창당사연구센터' 발족을 위한 중국 국내외 전문학자 좌담회 참석

 

1. 일시 : 2015. 9. 19~9. 22
 
2. 장소 : 중국 상해 중국공산당 창당 및 제1차 전국대표대회기념관 회의실
 
3. 주최 : 중국공산당 창당 및 제1차 전국대표대회기념관
 
4. 주제 '중공창건사연구센터' 발족을 위한 중국 국내외 전문학자 좌담회(중국공산당 역사 연구 진작을 위한 연구방법론 및 사료 관련 토론)
 
5. 참석자 : 중국 국내 중공당사 전문 학자 20여 명+한국학자 1명(나는 본 연구센터에서 위촉한 러시아, 일본, 한국 등 총 3명의 해외 특약연구원 중의 한 사람으로 참석)
 
6. 주요 활동 : 좌담회 참석, 소주 여행

 
 

좌담회장 앞에 선 멀대. 중국인들은 공식행사에도 정장을 하는 이는 드물고 대부분 편한 옷차림으로 참석한다. 멀대도 그간 수 없이 많은 국내외 학회에 참석했지만 중국의 경우(특히 북경이 아닌 광주, 홍콩, 대만 등지의 남방 지역)엔 그 문화에 맞춰 편한 복장으로 다닌다.
좌담회 개시 전. 중국내 중공당사 전문가들이 거의 총집결했다. 외국에서 초청 받은 전문 학자는 멀대가 유일했다.
좌담회 광경
발언들을 경청하고 있는 필자
좌담회상에서 발언하고 있는 멀대. 중공창당사의 연구발전을 위한 몇 가지 새로운 방법론(마르크스주의의 중국전래나 코민테른과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중국과의 관계에만 초첨을 맞추지 말고 레닌과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세계적 규모로 공산주의를 전파 및 이식을 하려는 의도하에 전개됐기 때문에 중국을 넘어 터키, 인도, 티베트,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전체(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몽골, 중국, 베트남, 대만,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만이라도)로 시야를 넓혀서 거시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을 제시하면서 본인의 연구 성과 및 연구 경험을 사례로 실제 연구에서의 주의할 점, 자료수집 및 독해 면에서 주의할 점 등을 위주로 많은 얘기를 해줬다. 발언 내용은 주최 측에 모두 기록돼 나중에 회보로도 소개됐다.
좌담회 중간 휴식시간
중국공산당 역사 전문 연구자인 중부 중국의 중점대학인 武漢대학 역사학과의 톈즈위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
좌담회 후 중공 창당중심기념관 관장 주최로 열린 환영만찬 참석(오른쪽 첫번 째가 멀대, 그 옆은 기념관장)
만찬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돌아가면서 서로 건배를 하고 있다. 중국 대륙의 학자들은 비지니스업계 사람들과 달리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대만의 학자들은, 특히 나이든 학자들 중엔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멀대는 대만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은사분들에게 불려 다니면서 실력 발휘를 한 바 있어 이날 만찬에선 몇 순배 돌지 않아도 자연스레 두각이 드러나게 됐다.
좌담회가 파하고 다른 행선지로 이동하기 전 지인들 사이에 서로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주최 측 기념관의 연구원, 기념관 관장, 중국사회과학원의 리위쩐 연구원, 멀대. 일흔이 넘어서도 러시아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리위쩐 교수는 코민테른과 조기 중소관계 연구의 권위자다. 내가 1990년대 초반 한중수교 직후부터 만나 교류를 해왔으니 어느덧 20년이 훨씬 넘는 막역한 "꽌시"(관계)다. 리 여사는 몇년 전 내가 국제학술세미나를 주관했을 때 한국에도 초청을 해서 논문을 발표케 함으로써 국내학계에도 소개한 바 있다. 그 동안 나는 북경을 방문하면 거의 매번 그의 집을 방문해서 많은 얘기를 나눠왔고 부군인 왕 장군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좌담회 일정을 공식적으로 다 마치고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소주로 여행을 떠났다. 고속전철 안에서 본 바깥풍경
동행한 친구 虛量. 중국을 여행하면서 수 없이 겪은 사건이 소주에서도 벌어졌다. 친구와 함께 늦게 소주관광을 마치고 상해로 돌아오는 날 밤이었다. 소주 기차역에서 막차를 못 타서 역앞의 호객하는 택시 기사들 가운데 비교적 괜찮다 싶은 기사(나중에 보니 사실 다 같은 통 속에 짜고 치는 놈들이었다)와 흥정을 해서 가까스로 상해까지 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우릴 태운 택시가 막 시내를 벗어나 상해로 가는 포장도로가 나오는 외곽에 이르러서 택시 뒤로 오트바이 두 세 대가 계속 뒤따라 오는것을 발견한 내가 순간적으로 느낌이 이상해서 내가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해서 내렸더니 중국 측 범죄조직들이었다. 신변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만약 그걸 모르고 계속 산길로 접어 들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조폭들에게 가진 거 다 뺏기고 신변도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이 이슥한 11시 경 인적이 드문 외곽 도로에서 타고 가던 택시가 서고 운전수가 불러 따라온 자기편 조폭들에게 순식 간에 둘러싸이자 친구는 완전히 맛이 간 상태에서 말까지 더듬었다. 한 때 일본 동경에서 110kg가 넘는 거구의 스모도리(일본 씨름 선수)와도 맞붙은 바 있는 멀대는 세상에 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기민하고 대담하게 대응해서 중국공안(경찰)까지 출동시켜 중국 측을 완전히 제압한 사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금이야 추억거리로 얘기할 순 있지만 당시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사건에 대해서도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소주는 계림, 항주와 함께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도시다. 수많은 소주의 경승지 중 우리는 塘河를 유람했다. 이 때 여수에 젖어 멀대는 한시를 한 수 읊었다. 蘇州 塘河라고 제목을 붙인 이 졸시는 본 블로그에 같은 제목으로 올려놨다. 秋來塘河綠意多/與友登舟漕到何/柳枝漫垂凝碧影/此水路通往天界/還是通往武陵山/東坡姑蘇曾爲客/云不游虎丘乃憾/吾感塘河最景勝. 한글로 해석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가을 塘河를 찾으니 물이 푸르고 생각을 많게 하는구나/친구와 함께 배를 탔는데 어디로 저어갈까?/물가 버드나무 가지들은 길게 물위에 드리워 있고/이 물길이 닿는 곳은 하늘로 통할까/아니면 무릉도원으로 통할까?/옛날 소동파는 소주를 찾아와보고선 虎丘를 못 보면 한이 될 거라고 했지만/나는 塘河가 蘇州 최고 景勝이 아닐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