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작품 10

상어야 미안하다

상어야 미안하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지느러미로 쉼 없이 헤엄친다 그래야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 바다에 버려진 상어는 지느러미만 모두 떼이고 고통스럽게 흐느적대다 이내 죽고 만다 그렇게 죽어가서 지금 멸종위기다. 상어들이 비명도 없이 죽어갈 때 인간들은 값비싼 '샥스핀' 요리를 즐긴다 스프에 쳐진 양념 맛인 줄도 모르고 지느러미 맛이 아니란 걸 모른 채 상어멸종이 자기와 뭔 상관이란 듯이. 상어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한 때 모르고 나도 샥스핀을 맛있게 먹었어. 2022. 9. 8. 12:1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 위 졸시는『純粹文學』2023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대단한 가문

대단한 가문 뉘집인진 모르겠다만 대단한 가문이다 후손들이 저리도 조상을 잘 모시니. 중시조인 듯 봉분묘가 맨 위에 자리하고 그 아래로 차례차례 후대 조상 비석들이 묘들과 함께 빼곡히 들어서 있다 땅속 파고들다 만 벙커버스터 미사일처럼 여러 기가 산자락 곳곳에 꼿혀 있다. 공명도 좋고 人死留名도 좋다지만 혈이 뚫린 땅이 아프지 않을까? 말 없는 신음 소린 듣지 못하는가? 세월 지나면 다른 후손 묘비들은 어쩌나? 산자락 아래 마을에까지 앉히려나?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다. 누구나 남기고 가는 한 줌 가루 동해바다에 뿌린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따라 누울 자리도 그곳이다. 2022. 8. 27. 15시경 직관 8. 28. 04:02 옮겨씀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 위 졸시는『純粹文學』2023년 6월호에 ..

다중 속의 고독

다중 속의 고독 한국인은 배고픈 건 참아도 남 잘 돼서 배 아픈 건 참지 못한다. 자신보다 조금만 잘났다 싶으면, 자기보다 똑똑하고 깨끗하다 싶으면 눈 뜨고 못 보는 이가 대부분이다. 뒤에서 험담해서 자기위안으로 삼는다. 다수는 자기 성격 탓에 침묵하지만 대개는 자존감 없거나 순수치 못해서 그렇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니 그렇다지만 자주 이리 속고 저리 뒷통수 맞고 해서 학교 동기들에게라도 안겨볼까 했더니 그들도 배가 고픈지 아픈지 알 수가 없네. 잘났다 싶은 이는 어디서든 안길 데가 없다.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마음 붙일 곳이 없다. 함께 해도 늘 적막강산에 혼자 서 있다. 홀로 피어 세찬 비를 맞는 꽃이여, 한 떨기 오이꽃이여! 2022. 6. 29. 12:0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静 초고

카테고리 없음 2022.06.29

졸시, PEN문학지에 실리다!

졸시, PEN문학지에 실리다! 시인 등단 후 처음으로 졸시 한 편이 권위있는 문학지에 실렸다. 작년 3월에 등단했으니 꼭 1년 만이다.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끌적거려오고 있어 그간 쌓인 시들이 160수(한글시 뿐만 아니라 영시, 한시, 하이쿠 포함)가 넘어도 졸시를 문학지에 실어보겠다고 시를 보내고 한 적이 없다. 투고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시 게재가 결정된 후에 원로 시인 한 분에게 졸시 게재가 결정됐다고 말씀드렸더니 등단 1년만에 권위있는 문학지에 작품이 실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하셨다. 원로 분께서 괜히 내게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미 작년에 펜문학지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나는 문단에서 이 문학지의 평가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아직도 마음 한 곳엔 익숙한 학계와..

不垢不淨

不垢不淨 술 취해 반쯤 인사불성 된 직장 동료가 토한다 노래방 안락의자에 뒤로 기대어 누운 채 쿨럭 쿨럭, 쿨럭 쿨럭 가슴팍으로 용암처럼 꾸역꾸역 나오는 토사물 초겨울 한기 도는 실내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바로 윗도리를 벗어 두 손으로 쓸어 담았다. 토해낸 음식물이 더럽고 역하다고? 그러기 불과 두 시간 전, 술과 음식을 우리는 함께 맛있게 먹었다네 자체로는 더러워할 것도, 깨듯하달 것도 없지 찰나에도 생각은 오만 가지라 실체가 없는 걸 2022. 3. 27. 10:1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조문

조문 어제 못 간 조문 이른 새벽에 간다 오늘 출상인데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할까? 춘부장께서 건강하셨다는데 왠 변고인가! 얼굴은 뵌 적 없어도 생전에 인연이 없었을 리가 없다 인파 속에서 스쳐 지나갔거나 차안 옆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다 부채의식 없이 가는 문상 "한 세월 잘 사셨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천국에 가시면 제 선친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이젠 신이 되셨으니 제 이름도 아실 거잖아요." 가신 이는 여한이 없다 해도 자식은 한이 되듯 한껏 죄스럽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남은 이들끼리의 위안 잘 살라는 게 가시는 어른의 뜻일세 다음은 우리 차례라네 영안실 나서자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들 출근길 사람들 걸음이 분주하다 아버지가 잘 드셨던 막걸리가 몹시도 땡기는 어지러운 아침 2021...

세상과 거리 두기

세상과 거리 두기 며칠간 집에 틀어 박혀서 그림만 그렸다. 지금도 다 잊고 작업만 해오고 있다. 세속을 잊거나 세상과 거리를 두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인생도 비슷하다. 결과 보다는 살아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겠다는 목적 보다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대략 10여점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그제는 작품 1점을 완성했다. 동양화 붓으로 화선지에 그리는 그런 느낌으로 유화로 캔바스에 그린 것이다. 아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주에 심기도 그렇고 해서 일필휘지로 갈겼다가 마지막으로 운무, 사람과 개를 한 마리 그려 넣는 것을 끝으로 붓을 놓았다. 일단 더 이상 손 댈 데가 없다싶어 붓질을 멈춘 것이다. 최후의..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간다!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간다!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가는 것! 철이 들기 전 소싯적부터 내면 깊은 곳에 화석처럼 쌓여 있던 나의 마음인자였다. 상당 부분 타고난 천성이다.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으니 지금도 늘 표층의식에서 맴돌고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작동돼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지난 4월 중순이다. 붓을 놓은지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완성해본 작품이다. 그림 중의 소년은 그 시절의 나 자신이리라. 어딜 가는지는 몰라도 늦가을 어느날 오후, 꿈이 많았던 소년은 석양이 지는 서쪽을 향해 마냥 걷고 있다. 서쪽은 무얼 뜻하는 걸까? 현세에서 실현시키고 싶은 상상의 세계, 이상세계의 극락인 서방정토일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엔 혼자서 무작정 길을 떠난 그런 날이 적지 않았었다. 벌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