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김민기 斷想

雲靜, 仰天 2024. 5. 7. 06:59

김민기 斷想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라는 노래가 나온 게 우리에겐 고통이자 축복이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 '아침 이슬'의 작곡가이자 비운의 가수 김민기를 기억하시겠죠?

(사진 출처 : JTBC)


김민기는 서울 미대를 다녔지만 대학 시절 그림 그리기보다 음악에 더 심취했다고 하네요. 그는 정말 콩나물 대가리도 공부한 적이 없었는데 그냥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럼에도 주옥 같은, 동시에 역사성 있는 가사에 나직한 톤의 독특한 곡들을 뽑아 낸 걸 보면 하늘이 내린 천재임에 틀림 없어 보이네요. 그가 호소력 있는 저음으로 부른 노래들인 상록수, 아침이슬, 봉우리, 백구처럼 가슴 시린 노래들을 떠올리면 되겠네요.

그런데 타고난 성품 탓인지, 아니면 1980년대 신군부에 호된 핍박을 받아서 그런지 김민기는 언론 매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답니다. 노래 "아침 이슬"처럼 그가 작곡하긴 했지만 노래는 사실 양희은이 취입한 뒤 주로 운동권 젊은이들을 포함해 의식 있다는 이들이 불렀는데 전두환 정권(안기부)에선 그를 반정부 인물의 핵심이라고 보고 검거하려고 했답니다.

"학생 운동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주목받는 운동권 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민기의 친필 노트에서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부른 모든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이게 되었고 모든 활동도 전격 금지되었으며 생활까지 전부 엄격하게 감시를 받게 되는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만 것이다.

"노래의 가사는 끊임없이 수정지시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한 곡 내 이름을 작사, 작곡자로 명기할 수 없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김민기의 친필 노트에서

또 나중엔 김민기를 앞세워 젊은이들의 반정부 의식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그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민기를 회유시킬 것을 부탁 받은 그의 친구도 그 공작에 협조하지 않은 사실은 아래 다큐멘터리에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김민기는 자기가 작업한 글, 가요의 가사와 곡 이런 것들도 거의 전부 지인들에게 넘겨줘 발표하게 하고 자기는 말없이 뒤에서만 그야말로 "뒷것"으로만 살았답니다. 글밭을 뜻하는 "學田"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무대예술의 각본이든, 가요의 가사든, 노래든 모든 글들과 인재들이 모여들게 해놓고선 그걸 모두 친구 동료, 후배 등의 지인과 본인들에게 나눠줬다고 해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자기가 교육하고 육성시킨 배우들이 나름대로 연기자로 능력을 발휘할 때 쯤이면 다 극단에서 내보냈다고 하네요. 마치 논에 모를 심어 벼를 베고난 뒤 또다시 모를 심는 그런 못자리 역할을 수십년 간 반복했다는 것이죠. https://naver.me/GJEWTFqB

위에 첨부한 다큐멘터리도 언론계에서 그를 인터뷰해서 70대 중반 나이의, 더군다나 암투병 중인 그의 삶을 조명해보려고 기획했다는데 그래도 그는 한사코 나서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다큐멘터리라는 게 고작 김민기를 모르는 분들은 기분이 언짢을 정도로 3편의 내용에서 본인이 말한 것은 하나도 채록하지 못한 걸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김민기의 삶의 자세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거대한 실체에 대해 어느 댓글자가 남긴 아래 댓글이 설득력 있게 다가설 겁니다.

"김민기 선생님, 아침 이슬을 만든 분인줄 몰랐습니다. 뒷것으로 계셔서 그런가봐요. 공장의 불빛을 만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주루룩 흘렀고, 감사했습니다. 부마항쟁의 시초가 되었던 노래였구나…모두 다 연결되어 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김민기는 암이 와서 마지막으로 삶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암이 온 것도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한 탓도 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회 변화와 변혁을 갈구한 그가 인간들에 대해서, 특히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할 말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입을 닫고 살았으니까 그것이 화근이 돼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 그도 6년 전에 TV인터뷰 프로그램에 응해 앵커 손석희와 대담을 나눈 바 있는데, 그것이 언론에 나온 최초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도 이 인터뷰를 오늘에서야 보고 처음으로 김민기의 실제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김민기(사진 출처 : SBS DALI)
(사진 출처 : JTBC)

김민기는 막후에서 예술로 민주화 운동을 목숨 걸고 결행함으로써 '시대정신'을 현현시킨, "뒷것"이 아닌 역사의 선구자이자 淸流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숨어 있는 영혼 있는 애국자요, 진정한 프로이자 휴머니스트인데 이런 분이야말로 좌우를 넘어선 이 나라의 원로로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나 우나 어느 한 쪽 진영에 붙박혀 있는 이는 나라 전체의 대국을 볼 수가 없으니 국가 원로가 돼선 안 되는데 김민기는 양 진영을 초월한 삶을 살아 왔으니까요.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은 진정한 참 예술가, 이런 순수한 분들이 더 존경받고 잘 사시는 그런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김민기가 그런 큰 인물이었는지, 그런 큰 정신성이 있는 삶을 살았는지 몰랐는데 선배가 보내준 자료들로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 TV를 일체 보지 않는 탓으로 돌리기엔 내가 너무 게으렀고 무관심했다고 보는 게 옳다!) 한 사람의 역사학자의 인문학적 감각으로 단언컨대 그는 분명 멀지 않은 장래에 그의 노래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붕괴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그 또한 19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한 역사적 인물로 제대로, 세세히 기록되고 평가 받을 날이 올 겁니다.

한때 1970년대 암울했던 독재 정권 치하에서 오랜 족쇄에 갖힌 금지곡의 배후 주인공으로서  80년대 운동권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우리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던 적지 않은, 시대를 표상하는 노래들을 선사한 그의 영혼에 경의를 표하면서 나는 오늘 술 한 잔으로 그에게 감정이입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1970~ 80년대를 살았던 우리 같은 세대들 중에 자신이 당시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과 기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변절했는지 지금 현재 김민기를 거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단상을 쓰고 있는 중에 원래 이 자료를 보내준 선배께서 또 다른 자료(김민기가 2018년에 JTBC의 손석희와 인터뷰한 내용)를 보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김민기님이시여! 이제 고독한 은자의 삶을 뒤로 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길 기원드립니다!

2024. 5. 6. 16:32 초고
5. 7. 06:31 가필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https://youtu.be/D27V3apKaAM?si=CS1akbw8RWPXG0G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