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인물 및 리더십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雲靜, 仰天 2020. 4. 6. 14:05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하는 게 좋을까? 정치지도자에게는 시공 초월의 공통된 조건, 자격, 자질, 능력도 필요하지만, 21세기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요구되어지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전자는 대체로 타고난 것일 가능성이 크고, 후자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획득 형질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양자는 따로 노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보적으로 작용돼 한 가지 장점이 다른 장점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정치인은 어떤 조건과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할까? 결론부터 언급하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가 기존 한국정치인들의 리더십의 결함을 메우거나 넘어서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자, 둘째가 이번 코로나19사태 이후의 세계(the world after Coronavirus)를 새로 구축하는 데에 부합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라야 한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이 보여준 리더십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완하거나 극복해야 할 리더십은 다음과 같다. 기존 정치인들의 결함은 정말이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짧은 지면에 많은 것을 거론할 순 없고, 대표적인 것 다섯 가지만 들겠다.

 

첫째, 국민 다수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고 자신과 자기 일족 및 패거리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탐욕이다. 인재를 골고루 쓰지 않고 자기편만 챙기는 편협한 섹터주의적 골목대장식 리더십이다. 둘째, 진영논리, 지역감정, 이미 지난 세기에 승부가 난 이념정쟁, 간첩은 색출해야겠지만 근거 없이 해묵은 빨갱이프레임을 조장하거나 그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몰지성이다. 셋째는 합리성과 균형 감각이 결핍돼 편을 갈라 자기 세력을 만들어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넷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자당과 자기 이익에만 급급해 정쟁을 일삼는, 국제감각이 부족하고 인류 혹은 지구촌이 직면해 있는 인류공동의 문제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위기의식과 관심 부족이다. 다섯째, 남의 이야기, 듣기 싫지만 옳고 바른 소리를 듣지 않는 오만 혹은 속 좁음과 배타성이다.

 

인류는 공전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소수 독점에 따른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전체주의적 경향이 점차 심화되어가는 상황이다.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의 선명한 대비로 나타났다. 하나는 위기와 건강을 핑계로 개인 정보의 악용은 물론, 코로나 균의 확산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국가나 일당 독재의 당이 개인의 내면까지 통제하듯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전체주의적 권력작동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율적 권력운용방식이다. 중국, 북한, 이스라엘이 전자에 해당되고 대만, 싱가포르가 후자에 해당된다. 한국은 어떤지 더 지켜볼 일이다.

 

현재 우리는 가공스런 절대 위기를 구실로 인간에 대한 억압과 감시를 더욱 노골화, 상시화, 기술화 시키는 전체주의로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시민자유권의 확대로 나아가 진정하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냐 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급한 상기 두 가지 큰 주제를 같이 종합하면, 우리사회가 절실히 필요한 정치인은 아래와 같은 정치인상이다.

 

첫째,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깨끗한 인간은 있을 수 없지만, 종교지도자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분야와 관련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 비교적청렴하게 살아온 자라야 한다. 가난은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추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 無恒産無恒心은 그른 말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돼야만 임기 중 보수가 적어도 불만을 가지지 않고 각종 유혹에서 자유로울 확률이 높다. 공산주의국가와 달리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선 정치적 속성상 원래 훤쟁(喧爭)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싸움은 줄일 수 있음에도 이다지 시끄러운 건 대부분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꾼들의 이권다툼이 돼버린 정치권에서 비롯되는 게 많다는 걸 명심해야 된다. 한 명이라도 더 국회의원을 확보하고자 당을 수시로 깨고 새로 만드는 걸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생각하고 행한다. 수시로 당을 깨고 새로 당을 만들고 하는 게 아마도 세계 으뜸일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반 백년은커녕 사반세기도 채우지 못한 당들이 무수히 명멸했다. 이런 나라는 현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것이다. 단 하루라도 곳곳에 조용할 때가 없다. 모두가 밥그릇 싸움으로 권력 다툼으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개인의 사익만 추구하려는 사람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 사익 보다 공익을 먼저 하겠다는 자세가 갖춰져야 한다. 물론, 사익이 쌓이지 않도록 크게는 21세기의 시대상에 부합하는 헌법개헌에서부터, 작게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및 권력 제한, 사법기관의 권력화 및 오작동 방지를 위한 전면 개혁 등등 관련 법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최소한의 생활비와 연구비와 활동비를 적절하게 산정해서 지급하되 급료가 적어도 감내하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성의 소유자만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신변의 금융거래가 투명하도록 공개돼야 한다.

 

여기에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세비 중 최소 20% 이상을 지역사회나 공익을 위해 기부하도록 해야 한다. (말 나온 김에 주택은 공시지가가 일정 수준 이하인 것으로 하되 선출직 고위 공직자도 본인명의 한 채, 배우자 명의 한 채만 인정하고 이를 어기면 승진 못하게 하고 선출직에 진입 못하게 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공의 선과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개인적 사익을 완전히 포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국민과 시민들에게 있던 기본권과 권력이 지금까지 국가에게 과도하게 잠식당하고 빼앗겼던 것을 새로이 되찾아 오는 것이다.  

 

둘째, 언행이 신중하고 믿을 수 있어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정직과 신의, 타고난 양심과 정의감이 높은 자라야 한다. 신의는 비록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이라면 행하는 용기와 의지, 자신이 행한 언행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감이 있어야 형성되는 것이다.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후보자 중 전과자가 여전히 많은 것을 보고 새삼 절실하게 느낀 점이다. 국회의원 본인이나 후보자 본인이 전과자인 자들도 적지 않다. 그것도 살다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이해해줄 수 있는 전과가 아니라 성범죄, 음주운전, 사기, 정상이 참작되지 않는 폭력 등등의 흉악범, 파렴치범, 기초질서를 어긴 범죄자들이 많다. 가정은 모범적인가하면 그것도 아닌 자들도 적지 않다. 위로 대통령을 위시해서 아래로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들은 거의 모두 일반 국민들보다도 군병력의무 이행, 부동산투기 및 다운계약서 작성, 위장전입 등의 자녀문제도 더 많아 보인다. 논문표절도 일반인들의 평균 이상인 듯하고, 음주운전도 1, 각종 비리도 1위일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정치권에 들어가서도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고 다니면서 자신의 이익만 탐한다. 실제로 요즘 부쩍 늘어난 현상이지만 탈당하고 이당 저당으로 옮겨 다니는 것도 정치적 이념이나 민생을 위한 게 아니라 다 자신이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지 못 받을지 공천의 유불리를 계산하는데서 온다.

 

 

 

셋째,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세계를, 국가를, 사회를 어떻게 리세팅할 것인지 시대정신과 시대사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틀 짜기의 능력 그리고 창조력과 글로벌 시야에다 시민자율권(citizen empowerment)을 확대시키는 마인드를 갖춘 지성이 필요하다. 국민혈세인 정부예산을 지원해서 정권의 위수부대 역할을 하게 만드는 현 문재인 정권의 시민단체는 아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자국의 의지대로만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은 국제사회의 상의상관성이 어느 시대보다 높고 깊어지면서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지구촌의 환경 및 생태계 교란, 이상기후와 자원고갈 같은 중대한 난제들과 직면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적 난제에 대한 해결 가능한 지혜 및 능력과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一超多極의 세계판도에서 국제적인 변수가 워낙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험과 위기가 일국 차원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 수시로 발생하는 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한국은 혼자만의 힘으로 자력으로 존재하고 일어설 수 있는 독립변수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해외무역에 의존해서 살아 왔고 번영을 이뤘듯이 세계와 국제정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가 더 크게 작동하는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다.

 

게다가 위기와 위험 상황의 빈발성 그리고 그 규모와 성격도 한 나라의 대처와 노력으로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다.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파괴와 변화로 인한 지구촌 차원의 거대한 자연재해와 재난들이 빈발한다.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 이번 코로나19 역병도 모두 근원적으로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탐욕적 과소비, 상호발전의 공존공영이 아니라 자국의 배타적 패권의식 혹은 지구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변화에 근원을 둔 것들이다. 따라서 강대국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신군국주의적 대외 영향력의 확장이나 책임방기의 국수주의적 고립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 연대, 결속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더 많은 소통과 이해, 더 많은 정보교환, 더 많은 상호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과제들을 추진하고 이뤄낼 수 있는 국제적, 범지구적 마인드와 가치관이 갖춰진 인물이어야 한다.

 

넷째, 상당 수준의 지력은 물론, 어떤 분야든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자기만의 전문성이 2~3개는 있어야 한다. 정치는 양심, 정의감에다 봉사와 희생정신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전문지식도 대단히 필요하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의 정치에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는 국정에 참여할 수 없다. 지금은 도덕과 양심과 윤리 등 무형의 덕목만으로 정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공자 시대, 소크라테스 시대의 고대 사회가 아니다. 법률이든, 언론이든, 아니면 인문학, 국제관계, 국방 및 군사, 안보 및 외교, 경제, 교육, 자연과학이나 의료 및 보건위생 분야든, 예술이든, 남북통일문제든 다른 정치인이 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없는 이는 제 역할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참에 한 마디 더 하면, 요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보면 국회의원이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분명하게 모르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은 소속 지역구민을 대표해 대한민국 전체의 국정을 감시, 기획하고 그 다음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자리다. 그럼에도 이번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거의 대부분 전자와 관련된 공약은 없고, 오로지 후자에 대해서만 공약을 빽빽이 적어놓고 있을 뿐이다. 이 역시 포퓰리즘의 하나다.

 

다섯째, 타고난 이타행의 봉사정신과 겸손함이 투철한 자라야 한다. 평소 봉사정신과 겸손함이 투철하면 "비교적" 깨끗하게 살 수밖에 없다. 이번 국회의원 후보들의 평균 재산규모와 범죄전과를 보니 청렴성도 크게 의심이 된다. 정치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해야만 국민을 섬길 수 있다. 타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인품이 배어 있는 인간미가 없는 자가 정치를 하면 사회가 삭막해지고 그 자신도 부정부패로 갈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이 몸에 밴 인간형을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는 거의 모두 돈 많은 부자들만 해왔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재산을 추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말할 뿐이다. 부자들은 대체로 거만하다. 부자는 가난한 자의 심정을 모른다. 그들은 부자 중심으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아쉽지만 본론은 다듬지는 않았더라도 얘기할 건 거진 다 했다. 이제 본 주제와 관련이 없는 쓴 소리 한 마디! 이번 제21대 총선에서 정당들이 이른바 젊은피 수혈로 당의 수구적 이미지를 쇄신한답시고 경쟁적으로 청년, 젊은층, 여성을 영입했다. 반대로 나이든 이들은 제한을 가했다. 이런 방식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나이 제한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행태이니 철폐돼야 한다. 나이와 도덕성 및 전문성은 정비례하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청년들과 젊은 층에도 비양심적이고 기성 정치인들처럼 기회가 되면 한 탕 해보려는 못된 자도 적지 않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본질이 아니다. 나이 든 이들을 처음부터 제외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속지 않고 옥석을 잘 가려내느냐가 관건이다. 나이 제한을 두지 말고 모든 연령층의 인물에 대해 먼저 양심, 청렴성, 국민을 위한 봉사의지와 정직성과 비전, 전문성을 우선적으로 보고 그 다음으로 점수가 같을 경우에만 젊은 층에게 가산점을 주는 게 합리적이다. 선거에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일념에서 인기인이라고 무조건 영입할 거라면 가장 인기 있는 가수, 가장 인기 있는 영화배우, 가장 인기 있는 코미디언, 가장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인기 스포츠 선수,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로 채우면 된다. 김연아, 박세리, 박지성, 박찬호, 조수미, 이세돌, BTS그룹 멤버들을 영입하면 국회의원이든, 도지사든, 시장이든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다. 정치가 희화화 되고 정치인을 값싸게 조롱당하게 만드는 건 바로 정치인 자신들이다. 이 자명한 이치를, 자업자득임을 왜 모르는지 답답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 글에서 하지 못한 사족 한 마디! 정치 지망생들에게만 높은 기준과 조건을 가혹하게 들이밀 순 없다. 그들을 뽑는 국민, 즉 유권자의 자질과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뗄래야 뗄 수 없는 交互작용이 매개돼 있다. 정치인과 유권자 둘 사이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다. 감시자, 비판자임과 동시에 서로를 견인하는 동반자 관계다. 유권자는 청렴, 성실, 섬김, 봉사의 덕목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 청렴하고 유능한 정치인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한국의 유권자들 중 가난한 유권자들은 가장 재산이 많은 부자들이 모인 정당, 재벌 대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정책을 펴는 정당만 찍는다.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면 합법적으로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는 데도 말이다. 지지한 정당이 하는 걸 봐가면서 성에 차지 않을 때 때로는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렇듯이 기성 정치인들 중 평소는 애민정신은 차치하고 서민들과 중산층을 우습게 알면서도 또 다시 그들을 위해서 일할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면서 재래시장 방문하고 양로원 방문한다. 그런데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악수하고, 장에 앉아서 국수나 국밥 한 그릇 사먹고 서민 코스프레 하면 찍어주는 유권자들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산다.

 

또한 아직도 3대 세습의 전제왕조 같은 북한에 비위만 맞추면서 굽실 대는 철 지난 疑似 사회주의자나 이상주의자들, 동시에 아직도 그 대척점의 빨갱이좌익 프레임에 갇혀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사회에는 북한은 물론 다른 나라의 스파이들이 우글 거리고 있고, 이에 동조하는 "빨갱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와 별개로 정치적 목적으로 행하는 사실에 어긋난 빨갱이 사냥은 지양해야 한다. 요즘은 국민들이 정말 빨갱이인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양 극단의 실체와 목적 및 저의를 바로 봐야 한다. 언제까지 한 통속인 기성 정치인들의 짬짬이, 거대한 카르텔식 공동 사기에 놀아나야 하나? 언제까지 그들의 하수인이 돼야 하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시대, 유달리 시끄러운 이 나라의 난국을 헤쳐나가 대한민국을 바로 잡아서 또 한 번 도약의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치가가 없는지 두 눈 부릅 뜨고 지켜봐야 한다. 다시 한번 묻는다. 과연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하는 게 좋을까?

 

2020. 4. 6. 13:52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