星雲대사의 ‘人間佛敎’의 한국포교
星雲대사의 ‘人間佛敎’의 한국포교
서상문(경희대학교 중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승불교권에 속해 있는 대만불교는 최근 30여년 사이에 양적, 질적으로 괄목하게 성장했다.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급속한 경제성장 및 대만사회의 다원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경제의 고도성장은 불교단체들이 사회복지사업을 일으키고 불사를 사업화, 기업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대만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은 승려나 재가신도를 막론하고 대만불교인들이 신행에서 계율을 중시하고 비교적 잘 지킨다는 점 그리고 입세지향적이라는 점인데, 사찰불교 중심에서 재가불교로의 이행이 상당히 진전돼 있다. 즉 탈전통, 탈근대에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고적한 산중에서 나와 번잡한 인간세속으로 들어가 있다.
과거 출가 승려를 중심으로 산중사찰에 머물렀던 전통적인 불교가 현대사회 변화의 요구에 부응해 精舍, 念佛會, 禪센터, 불교문화센터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인간세의 저잣거리로 나와 있다. 도시화, 현대화가 진전돼 있고, 神聖性이 世俗性으로 轉化되고, 종교성이 사회성과 서로 교호 融攝하는 방향에 있다. 불교의 도시화, 현대화로 출가자 위주가 아닌 일반신도가 중심이 돼 움직이는 ‘居士佛敎’가 주축이 된지 오래다.
개창자인 성운(星雲)대사의 각고의 발원에 힘입어 1967년 臺灣 남부 高雄에 창건된 佛光寺는 계율을 중시하고 입세지향적인 인간불교의 발원지로서 인간불교 이념에 토대를 두고 불교의 現世化, 在世化, 대중화, 복지화, 세계화에 힘써오고 있다. 불광사는 입세지향의 인간불교를 지향하는 재가불교가 중심이다.
‘인간불교’란 星雲대사가 내세운 가장 핵심적인 불교이념으로서 새로운 불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취지는 잘못 알려진 석가모니의 원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늘 사회 속에서 생활했고, 托鉢, 乞食, 說法, 중생제도도 모두 사회 속에서 행했는데도 후세 불자들이 입산해 은둔수행하기를 주장해 사회와 단절되고, 적극적으로 세간에서 구해야 할 불법을 세상회피라는 소극적 의미로 바꿔 놓았다는 게 성운대사의 주장이다.
성운대사가 후세 인간들이 신격화한 석가모니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 그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속에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고자 원을 세운 이유다. 이처럼 석가모니가 고행을 하고, 고행을 통해 깨친 법과 진리를 중생들에게 설한 것도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었듯이 인간불교도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포교방법 면에서 인간불교는 현묘한 교리보다는 현실을, 개인보다는 대중을, 산속보다는 도심을, 개인의 利보다는 타인의 利를 더 중시한다.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인간불교에서는 불법과 생활이 별개의 둘이 아닌 하나다. 인간불교는 죽어서 내세의 불국토에 태어나기보다 살아 있는 현세에서 깨달아 불국정토에서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人間佛敎’의 한국 인연
불광산사 개창 후 성운 대사는 줄곧 불교의 세계화라는 願力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만을 넘어 세계로 눈을 돌려 인간불교의 이념을 포교해오고 있다. 불교의 세계화시대에 해외전도와 교류가 왕성한 가운데 대만뿐만 아니라 필리핀, 홍콩, 일본, 한국은 물론, 멀리 호주와 미국에도 사찰과 신도가 있다.
최근에는 중국대륙과 유럽 등지에서도 전도해오고 있다. 한국도 인간불교의 포교지 가운데 한 곳이며, 포교는 성운 대사가 1999년에 설립한 ‘한성 불광산사’(나중에 ‘서울불광산사’로 개칭, 현 주지 依恩)가 해오고 있다. 인간불교가 들어온 지 20여년이 되는 한국에는 성과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서울불광산사가 실행하는 포교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정리된다. 첫째, 한국 내 라디오와 TV방송 등 유수의 불교언론 매체를 통한 법문 및 인터뷰를 통해서 혹은 인간불교의 이념을 설한 성운대사의 법어집과 저서들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해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다.
둘째, 불교학자나 인간불교를 포교하는 스님들을 모셔와 학술세미나를 열거나 법회를 열고 있다. 포교 면에서 서울불광산사의 운영상황을 보면 각종 법회와 함께 중국어입문, 태극권, 참선 교리반, 어린이 중국어반, 퀼트반 등 문화강좌를 운영해오고 있다.
셋째, 한국 내 각종 불교행사와 활동에도 참여할 뿐만 아니라 불광산사 신도 및 가족 혹은 일반인을 데리고 직접 대만 불광사로 가서 성운대사를 친견하거나 탐방을 통해 인간불교 이념의 산실을 직접 체험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불광산사가 거둔 포교성과는 작지 않다. 한국불교계에 대만불교의 존재를 각인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성운 대사의 각종 법문과 가르침을 담은 저서들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해 한국불자들에게 석가모니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티베트 불교 등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불교사찰들과 함께 한국불교의 다양성 구현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불광산사는 한국-대만 불교교류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불교신도, 불학에 관심 있는 한국청년들의 대만방문을 주선하는 등 교류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도 불광산사를 견학케 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하고 불학을 공부하려는 마음을 내게 함으로써 인간불교가 중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다만, 서울불광산사는 한국어 능통자가 부족하고, 사회 전체가 전반적으로 무종교 성향이 강해지는데다 한국 불교신도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사회적 환경과 조건이 열악해 인간불교의 포교 성과는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불교신자 수의 감소는 대만불교계만이 아니라 한국불교계도 안고 있는 공통문제이긴 하지만, 대만화교는 현재 2만 명도 채 되지 않아 불교신도도 줄어드는 추세다. 또 중국에서 건너온 중국인은 유학생, 상사주재원, 언론인 등 잠시 거주하다 중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지금 보다 더 감소할 것이다.
대만사찰과 한국사찰을 다 망라해도 인간불교를 전파하는 사찰과 스님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인간불교를 소개하고 전하는 사찰이라고 해봐야 전국에 몇 개 없고 스님도 10명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인 불자에게 특별히 대만 불광산사 본사를 다녀오지 않는 한 인간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서울불광산사에서는 한국인 불자를 위한 한국어법회를 거의 개최하지 않고 있고, 한국어 법회의식 매뉴얼을 만들 인적 구성원도 부족하다. 한국사회에 인간불교가 널리 소개되지 못하는 이유다.
포교전략 재설정 및 포교대상 및 방법의 다양화
대만불교의 비권위적이고 신도를 위한 사찰운영이 알려지게 되면 지금 보다 더 많은 한국인 신도들이 올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선 신도들이 스님을 위해 존재하지만, 대만 불광사에선 스님들이 신도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신행, 불사, 교육 등도 모두 신도들을 위해 이뤄진다. 불광사에선 신도가 주, 스님이 객이라면, 한국의 사찰에선 반대로 주객이 전도돼 있다.
불광사에는 불사나 행사시 스님과 속인을 구분하지 않고 계획적, 시스템적으로 다 같이 일하는데, 모든 스님과 신도가 제각기 주어진 역할을 맡는다. 스님으로서의 권위의식은 없다. 다 내려놓고 같이 일한다. 신자가 스님 보다 더 상석에 있는 경우도 있다. 행사든, 법회든 모든 불사는 안정적이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다.
출가자가 비교적 계율을 잘 지키는 것으로 평가되는 대만불교의 장점은 한국사회에서 부각될 잠재력이 있다. 계율은 승려를 승려답게, 불교인을 불교인답게 만들어 부처님 제자임을 표증하는 지표다. 대만에서는 스님이 계를 잘 지키도록 일반 음식점이나 유흥술집은 스님의 출입을 거의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예 일반식당과 유흥업소에 가려는 스님도 거의 없지만 완전 채식공양이 가능한 ‘소식’(素食)식당이 전국 어디에서나 이용이 가능할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승려 개개인의 발심이 주된 이유가 되겠지만, 바람직한 승려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보이지 않는 기대와 요청도 승려의 행위를 규제하는 사회적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불교가 한국에서 그 가르침과 장점이 널리 알려지고 현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서울불광산사는 대만불교의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한국 불교계와 부단한 접촉, 대화,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또 한국화교들만 포교대상으로 삼아온 관성에서 벗어나 한국인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바꾸고 굳이 불교를 내세우지 말고 사찰이 소재하고 있는 현지의 지역공동체(community)로 들어가 주민들과의 접촉범위를 넓히는 것이 좋겠다.
한국인 불교신도들에게 인간불교를 접하게 하려면 불광산사가 있는 서울 중구청 인문학강좌에 중국 관련 과목을 개설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타종교인들에게 굳이 불교가 아니라도 좋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포교에 성공한 예는 미국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崇山 스님이 있다. 崇山 스님은 기독교인이나 유태인에게 개종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나 유태교를 믿으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참선 등을 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불교를 접하도록 해 나중에는 한국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하거나 신행하게 만들었다.
서울불광산사만의 특성과 장점, 예컨대 현재 서울불광산사에서 중국다도, 중국어반, 채식, 태극권 수련, 중국불교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살려 간접적으로 인간불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릇 포교란 포교자가 혼자서 행하고 마는 식의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고, 비불교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쌍방향이 돼야 한다. 일방적이 될 경우엔 효율성이 높지 않다. 늘 신도와 같이 해야 하고, 해당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에도 조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 가운데 종교계 지도자라면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커다란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점이다. 하나는 남북한간 긴장이 완화되고 정치정세의 호전에 따른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체제 보장이 상호 교환되고 남북한 관계가 호전돼 북한과의 교류가 확대 정례화 될 것에 대비해 북한사회에 인간불교를 전파할 준비가 필요하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도 수 만 명의 중국화교들이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사회를 지탱하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이념은 이미 북한 주민의 마음에서 떠나고 있다. 북한당국은 수령에게 운명도, 미래도 맡기면 된다고 선전하지만 북한 주민은 자신의 힘과 머리만을 믿고 있다. 불교는 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중인 제4차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한국사회의 변화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제4차산업혁명이 더 진행되면 사회구성원들 간의 각종 불평등이 심화돼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양극화 되면서 극빈층이 늘어나 인간은 더욱 소외될 것이다. 개인과 사회, 기업, 경제에 전례 없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사회전체 시스템도 변화될 것이다. 산업현장의 로봇이 생산업무를 지휘하고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노동자의 역할과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보다는 로봇과의 상호작용이 더 빈번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고, 첨단기술, 기기들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더 많아 질 것이다. 무선네트워크, 사물인테넷으로 대표되는 초연결사회는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사하겠지만 그 편리함을 누릴 사람들은 제한되고, 소득격차와 빈부격차만 더 벌어질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소통이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소통이 줄어들어 인간의 감성 지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불교계는 범불교계 차원의 필요성에 맞춰 제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빈부격차, 인간소외, 감성지능 약화 등 새롭고 복잡한 이슈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불광산사에서도 제4차산업혁명이 빚는 사이버공간에 결박되는 삶의 구조적, 의식적 변화가 가져다 줄 사회변화에 대응해 포교에 임할 필요가 있다.
문제해결의 전제조건은 한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의 육성과 충원문제로 귀결된다. 법회를 열어 인간불교를 설하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문화활동을 하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해당 국가의 언어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고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한 종교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그 나라 교포에 대한 교포도 중요하지만, 해당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려면 현지 언어 구사의 원활함은 필히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다. 충분히 훈련된 언어, 종교, 역사 및 문화 분야의 전문가와 승려만이 미래 한국 내 인간불교의 확장성을 보장할 것이다.
2018. 7. 22. 15:22
雲靜
위 글은 해인사에서 발간하는 불교잡지『海印』2018년 9월호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