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이 "중국인 100만 군대가 못하는 것을 조선인 청년 한 사람이 해낸 장거"라고 했다고?
장개석이 “중국인 100만 군대가 못하는 것을 조선인 청년 한 사람이 해낸 장거”라고 했다고?
최근, 본인이 학술기획위원으로 있는 김구재단 김구포럼의 요청으로 국내 한국독립운동사 관련 자료 소장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임정 및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 중에 중국에서 들여온 자료들을 일제히 점검해본 바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당시, 특히 1930~40년대 중국에서 생산된 각종 한국독립운동 자료들이 국내에도 벌써 1970년대에 들어와 소장돼 있었는데, 전문 연구자들 중엔 이 자료들을 참고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이 자료들의 소장처를 밝히지 않아 자료 가치를 크게 떨어트렸을 뿐만 아니라 수십년 간 자료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먼지가 가득 쌓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관련 자료들을 다시 전면 재수집하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국내 논문, 저서나 관련 기념관들에 나와 있거나 전시돼있는 독립운동 관련 내용들 중엔 상당한 오류가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계나 항간에는 한국독립운동사와 관련해 잘못된 얘기들이 실제 사실인 것처럼 많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장개석이 이 사건에 대해 “중국인 100만 군대가 못하는 것을 조선인 청년 한 사람이 해낸 장거”라고 칭찬했다고 한 것이 비근한 예다. 또 蔣介石이 “4억 중국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상찬했다는 얘기도 버젓이 언론에 올라와 있다.
2016년 12월 17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보도한 언론도 “상해의거에 감동한 장제스, 한국 임시정부에 매년 거액 지원”한 것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 언론보도는 이날 학술회의에서 김학준 단국대 석좌 교수가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다.
김 교수는 “장제스 총통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상해에서 일본 군부와 외교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성공한 것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장제스는 당시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하는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으니 참으로 놀랍다’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정적, 군사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또 김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윤봉길의 의거에 감명 받은 장제스의 인식이 ‘코리아 조항’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직접 루즈벨트와 처칠을 상대로 조선독립을 옹호하는 발언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리아 조항은,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에 감동한 장제스의 꾸준한 설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날, 나도 위 세미나에 참가해 김학준 교수와 함께 논문발표자의 한 사람으로「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와 중화민국의 한국독립운동지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나는 백범 김구와 윤봉길 의사가 사건 전 중국육군 병기창에 가서 투척할 도시락형 폭탄을 제작해줄 것을 부탁한 사실을 밝히고 그의 홍커우 공원 의거가 상해 주둔 중국군의 지원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이 주장에 대한 몇 가지 분명한 근거를 제시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이 주장은 지금까지 윤 의사의 단독 의거라고 알려진 홍커우 사건에 정말로 중국군이 개입했다면 윤 의사의 공로가 깎일 수 있어 크게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미나장에 취재 나온 기자들은 나의 이 주장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지 내 논문의 후반부를 구성한 중국국민정부가 김구와 임시정부에 지원한 경제지원 부분만 보도했을 뿐이다. 아래 기사에 그렇게 보도돼 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0271
이처럼 한국의 언론은 철저하게 보도하고자 하는 것만 하면서 이름 있는 명망가의 주장이나 의견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실 김학준 교수는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보니 역사지식에 한계가 있는 데다 사료검증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자들은 김 교수가 논문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일단 모두 ‘진실’,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보도한다. 여기에 많은 맹신과 오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날 세미나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은 김학준 교수가 장개석이 “중국의 100만 대군” 어쩌고 한 부분을 말했다고 한 주장을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장개석은 결코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하는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으니 참으로 놀랍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 러시아사 전공자인 김학준 교수는 중국어를 읽을 수 없고, 중국사 전공자도 아니어서 자신이 직접 이 발언의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항간에 떠도는 이 말을 그대로 옮겼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가 중국어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같은 한국전쟁 연구자로서 다년간 봐온 사실에 근거함)
많은 연구자들이 남의 주장을 확인해보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반인들은 물론, 국내 학계에서도 장개석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중국신문들을 다 뒤져봐도 그런 보도를 찾을 수가 없다. 장개석의 명령, 지시, 군에 대한 교육 훈령, 훈시 및 어록 심지어 그가 남긴 자신의 일기 등등 모든 문헌들을 샅샅이 다 뒤져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당시 정황은 어땠는가? 장개석은 이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굉장히 화를 냈다.
일본과의 조기 휴전을 바랐던 장개석은 이 사건이 그해 연초 발생한 ‘상해사변’을 둘러싸고 진행해오던 일본과의 협상에 지장을 가져다주지는 않을지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왜 중일협상에 지장을 초래할지, 또 장개석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서너 줄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여기선 소개를 생략한다.
위 사실은 전문 연구자들에게 성실하고 엄격한 연구자세가 요구된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 한국사 연구자들에게만 한국독립운동사 연구를 전적으로 맡겨둬서도 안 될 일로 보인다. 한국사 전공자들이 당시 중국의 정치, 군사, 외교 등등의 상황을 중국현대사 연구자만큼 심도 있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왕왕 관련 사료를 잘못 해석하고 평가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위 풍문도 필경 한국사 연구자들이 중국 사료를 잘못 읽어서 나온 것이거나 독립운동 관련자들의 입에서 부풀려진 거짓말일 것이다.
김학준 교수는 중국현대사 연구자가 아니고 지금까지 한국전쟁과 한국현대사 및 러시아현대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가 쓴 러시아현대사 관련 저서를 보면, 러시아어 자료는 거의 참고한 게 없고 대부분 영어 연구저서를 참고한 게 전부다.
그날 세미나에서 장개석이 말했다고 한 그의 주장은 과연 어디서 들은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 들은 것을 직접 원사료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주장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게다가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가서 장개석이 감명 받기는커녕 화를 냈는데도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 장개석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임정을 지지한 것이 윤봉길 의거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윤봉길의 의거에 감명 받은 장제스의 인식이 ‘코리아 조항’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건 대전제의 오류다. 장개석이 감명을 받았다는 전제하에 그 뒤의 역사사실을 해석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실로 그 대담함과 단순무신경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은 거의 대부분 전문 연구자들이 내놓는 연구성과나 책을 보고 그것을 역사적 지식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비전문가들도 국내에 나와 있는 한국독립운동사 관련 논문이나 저서를 읽을 땐 세심하게 주의해서 읽어야 할 이유다. 전문적인 학술 논문은 여기서 소개할 게 아니어서 독립운동과 관련해 대중적으로 소개한 졸문 한 편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2018. 9. 7. 14:17
雲靜
https://suhbeing.tistory.com/m/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