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과연 대만에 미 해병대원 파견을 강행할 것인가?
트럼프는 과연 대만에 미 해병대원 파견을 강행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기싸움 성격이 내재된 상태에서 미중 간에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불붙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1979년 미중수교시 미국이 인정한 이른바 “하나의 중국”(One-China Policy) 원칙을 변경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작년 미국은 40년 가까이 준수해오던 미군의 대만주둔 금기를 깨고 미 해병대원을 대만에 파견하겠다고 선언해놓은 상태다. 과연 미국의 이 선언은 막 점화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시진핑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술적 수단일지, 아니면 실제로 미군 주둔을 늘려가고자 하는 첫 시도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나의 중국원칙”이란 “중국은 하나이며,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라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 만들어진 이 통일정책은 역대 중국지도부에게 계승돼오면서 그 어떤 이익과도 바꿀 수 없는 국가전략 차원의 대원칙이다. 시진핑 정권에게도 그대로 계승돼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수교국과 수교시 수교국에게 반드시 이 원칙을 인정하도록 해왔다. 1992년 8월 한국정부가 중국과 수교시에 대만카드가 있었음에도 ‘밀당’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인정한 바 있어 우리에게는 곤혹스런 원칙이다.
1970년대 말, 미중수교에 즈음해 미국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인정했다. 그래서 대만과 단교하고 비공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되 그 대신 중국이 대만에 대해 평화적인 통일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정하지만 만약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려고 할 경우 반드시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듬해 1979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라 불린 이 법안에 카터 대통령이 서명함에 따라 4월 10일부로 미국의 법이 됐다. 대만관계법은 비록 미국 국내법이긴 하지만 국제법에 준하는 성격을 띄고 있으며,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고 지금까지 중국과 대만 사이의 위기가 더 이상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게 만드는 위기관리 기능을 해왔다. 그것은 중국정부에게 전해져 지금까지 양국 사이에 양해사항이 돼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원칙”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먼저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중국과의 관계설정부터 재정립 했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 때와 달리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이는 미 국방부가 확정한 ‘2018년 국가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에 적시돼 있다.
그는 중국의 대만정책과 대만문제의 민감성을 무시하고 역대 미국 행정부의 대만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대만을 대중국 협상에 카드로 사용해 중국이 실질적으로 양보하도록 하는데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대만독립을 지향해온 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통화하고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최근은 한 술 더 떠서 지금까지 금기시 돼온 미군의 대만 주둔을 언급함으로써 시진핑과 중국군부를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현재로선 트럼프가 중국을 겨냥한 대중 무역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대만해협의 양안관계를 갈등 상황에 몰아넣으면서 대만 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7년 6월 트럼프가 16년 만에 대만 방산업체와 거래를 재개하기로 하고 대만에다 조기경보레이더 부품, SM-2 미사일 부품 및 어뢰를 포함해 물경 14억 2,000만 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서를 비준했다. 또한 무기판매 결정에 이어 7월 말에는 미군이 하와이에서 비밀리에 대만군과 합동훈련까지 실시했다.
계속해서 트럼프는 대만과의 관계를 복원하여 중국을 견제하고자 2018년 3월 16일 ‘대만여행법’(Taiwan Travel Act)에도 서명했다. 이로써 대만의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미국 방문과 여행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중국지도부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반발하도록 한 것은 미국 행정부가 지난 해에 臺北시 內湖에 짓고 있는 美國在臺協會(American Institute in Taiwan) 新館 건물이 올해 6월에 완공되면 10여 명의 해병대 병력을 주둔시키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10일 오전 현재까지는 아직 미 해병대가 배치되지 않고 있다. 경비임무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정규군이 대만에 주둔하게 된 것은 1979년 미군이 대만에서 철수한 이후 3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은 1951년부터 1979년까지 28년간 대만에 군사고문단과 연합방위사령부를 두고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켰지만 중국과의 수교시 모두 철수시켰다.
대만과의 관계 단절과 대만 주둔 미군의 철수는 마오쩌둥이 미국 측에 반드시 준수할 것을 요구한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군의 대만 주둔은 앞으로 미국-대만 관계, 나아가 대만해협 양안관계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인임에 틀림이 없다.
트럼프의 이러한 동기와 몇몇 실제적인 조치는 시진핑에게 ‘하나의 중국원칙’을 뒤흔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3월 2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한 배경이다.
최근 트럼프의 대만 밀착을 겨냥해 “조국의 통일은 중화 아들딸의 공통된 염원이다. 한 치의 영토도 중국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국의 대만 접근행보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해상무력시위로 대만을 위협하면서 “어떤 형식의 대만 독립 분열행위도 좌절시킬 것”이라는 경고도 발했다.
시진핑은 4월 12일 하이난(海南)省 남쪽의 남중국해 해상에서 랴오닝(遼寧) 항공모함 전투전단을 동원한 군사훈련 및 해상열병식 그리고 4월 18일 대만해협 대안의 푸졘성 취앤저우(泉州) 앞바다에서 실시한 실탄훈련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재천명했다. 또 그는 지난 6월 말 면담을 한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도 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지금까지 대만은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해협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면서 총 네 차례의 큰 위기를 겪었다. 중국이 위기상황을 연출한 첫 번째는 1949년 10월 중국군이 국민당군이 점령하고 있던 금문도(金門島)를 점령하기 위한 금문도 상륙작전이었다.
두 번째는 1954년 푸졘(福建)省 근해 대만이 점령한 섬들을 공략하기 위해 공격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1958년 마오쩌둥이 소련 흐루시초프의 대미 항전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금문도에 감행한 대규모 포격이다. 네 번째는 필자가 대만에 체류 중이었을 때인 1996년 3월이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대 중국은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이 1995년 4월 대만과 중국이 각기 통치하는 정부 대 정부가 대등하게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6개항의 내용(‘6點政策’), 즉 하나의 중국원칙을 부정하는 정책을 발표한 데에 이어 1995년 6월 자신의 모교인 코넬대학 방문을 명분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하자 그 이듬해 3월 단거리 탄도미사일 ‘둥펑(東風)-15’(중국인민해방군의 編號는 M9) 10기를 대만 동부해안의 탄착지역에 발사하는 훈련을 실시해 대만 전체를 공포분위기에 몰아넣은 바 있다. 목적은 그달 23일에 실시될 대만 총통선거에서 독립을 추구하던 국민당의 리덩후이 후보를 떨어뜨리고 통일노선을 견지해오던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한 것이다.
당시 중국군이 쏜 탄도 미사일에 대만의 방공조기경보 시스템과 공군기지들이 무력화 됐으며, 대만 해군까지 중국군의 지대공 및 공대공 미사일의 사정권에 노출됐다. 1949년의 金門島전투와 1958년의 금문포격 이래 약 40년 만에 발생한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당시 워싱턴은 위기관리 차원에서 해군이 연안 작전만 가능한 수준이던 중국에 대해 ‘인디펜던스’와 ‘니미츠’ 등 2개의 항모전투단을 전개시키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런데 총통선거에서 중국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대만 유권자의 약 54%가 통일을 반대하는 리덩후이 후보에게 표를 줘 당선시켰다. 이 위기는 결국 집권당인 국민당과 리덩후이 총통이 급히 서둘러 ‘하나의 중국원칙’을 인정함으로써 리덩후이의 미국 방문 후 13개월이나 중단된 양안의 대화가 재개돼 위기가 가라앉았다.
1996년의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 시 가장 크게 이득을 챙긴 것은 역시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 위기상황을 이용해 1996년부터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에다 F-16 전투기, 전차, 전자장비 등 약 181억 3,0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구입하게 만들었다.
당시 대만이 가장 원했던 것은 중국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대탄도탄 방어능력을 가진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이었다. 대만은 이지스 구축함을 4척 구입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하고 그 대신 2000년대에 들어와 키드(Kidd)급 구축함 4척을 구입하는데 만족해야 했었다.
현재 대만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은 중국이나 미국 한쪽의 양보가 없을 경우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양국간에 포문이 터진 무역전쟁과 맞물려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가 대중국 무역역조의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대만 카드를 수중에 넣은 상황에서 중국을 굴복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이상, 트럼프와 시진핑이 세계적 차원의 패권을 의식해 자존심을 건 한 판 기싸움이 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과거의 역대 대만 위기처럼 미국이 항모전투단을 전개시키는 등 절대적 우위에 있던 군사력으로 압박이 가능했던 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문제해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그 중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지도부는 1996년의 대만해협 위기를 겪으면서 항공모함 보유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1980년대 초반 해군사령관 류화칭(劉華淸) 제독이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었지만, 실현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중국은 동년 7월 29일 핵무기 실험까지 행했다. 그리고 군사무기 현대화와 첨단화를 추구한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해·공군 무기와 장비를 지속적으로 사들였다.
그 결과 중국은 전투기와 미사일뿐만 아니라 해군 함정에 이르기까지 군사력이 증강됐다. 둥펑-21D 대함(對艦) 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게 됐고, 대망의 항공모함(랴오닝)도 2011년에 확보한 상태다. 현재 3척을 더 설계 중에 있거나 건조 중에 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해군의 작전능력을 연해를 넘어 대양으로까지 확장함에 따라 소위 서태평양상의 제2도련선까지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중국이 항공모함을 위시해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이러한 첨단 무기들을 갖추고 있어 미국이 항모전투단을 투사시킨다고 해도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중국해군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세기적인 무역전쟁의 불똥이 우리경제에 튈 파장이 어느 정도가 될지 이래저래 마음이 쓰이는 요즘, 과연 트럼프가 충돌을 격화시킬 미 해병대 병력의 대만 배치를 결행할지 매일 주시해오고 있다. 정 트럼프가 미국의 대만정책 방향을 틀려고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정부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 7. 10. 02:2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위 글은 2018년 7월 11일자『오마이 뉴스』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