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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정치적 거래의 도구로 삼는데도 ‘셀프 처리’하겠다고?

雲靜, 仰天 2018. 6. 4. 05:39

법을 정치적 거래의 도구로 삼는데도 ‘셀프 처리’하겠다고?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법과 법조인은 국가와 사회 기강을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것보다 엄정하고 공정해야 할 사회적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흔들리면 집채가 흔들리듯이 법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법관들이 엄정과 공정은커녕 정치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니 나라가 바로 서고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는가?
 
법은 검찰과 법관 등 법조인들의 쌈짓돈처럼 사유화해서 자의적으로 구속여부를 결정하거나 판결하고 해도 그 누구도 견제 내지 감독을 할 수 없는 체제가 우리의 법조 환경이다. 이른바 “검찰공화국”, “법관공화국”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실태가 어떤지 실증하는 사례가 지금까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나라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면 공정성과 정의가 서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법운용의 공정성에서 보장된다. 지난 정권에서 대법원장이 1심과 2심에서도 승소판결이 난 사건을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시켜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안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다. 하급 법원에서 심리한 법의 적용이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게 대법원 본연의 역할이다. 그래서 간혹 잘못된 법적용에 대해선 원심의 판결을 파기하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KTX승무원들의 소는 법률가라면 누가 봐도 뒤집어질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놀랍게도 법률심의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법관들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이면 뒷거래를 한 탓이다. 이것이야말로 적폐다. 허망하고 말도 안 되는 억울한 판결을 당해 어린 자식을 버려두고 자살한 KTX승무원은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7년 간 끌었던 소송에서 패소한 KTX승무원들이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봉쇄돼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법의 적용과 운용의 잘잘못을 살피고 관리할 책임이 있는 대법원장이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과 정치권력에 부역하고 공정해야 할 판결을 뒷거래 수단으로 삼다니! 또 그런 일에 협조하지 않은 법관들에 대해 신상을 뒷조사하고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고 한다. 이런 양아치 보다 못한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검찰에 불려 다녀보거나 법정에 서보면 그들이 얼마나 마음대로 법을 주무르는지 당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검찰도, 법원도 제식구 감싸는 오랜 관행 때문에 이번에도 전임 대법원장을 처벌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또 그에게 적용할 법도 없어 보인다. 그만큼 한국의 법체계가 허술하다는 소리다. 그래서 결과는 끝까지 지켜볼 일이지만 이번 사태도 역시나 차일피일 끌다가 유야무야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신성한 법원의 수장을 포토라인에 서게 한다는 건 법조인 전체의 체면과 명예가 걸린 문제라서? 신성한 법의 권위가 실추될까봐 우려돼서? 법을 다루는 이들이 스스로 법을 망쳐놓아 권위 같은 건 없어진지 오래 된 게 아닌가? 대통령도 범법사실이 입증되면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하는 세상에 사법농단이 명백하고 실정법을 어긴 대법원장을 구속시키지 못한다는 건 명분이 되지 못한다. 푸른 기와집의 민정수석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간에는 대한민국에 정의는 없다는 소리가 차고 넘친다. 분노와 울분을 넘어 이젠 자포자기 심리상태로 가고 있는 중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는 개인 혼자서는 아무리 법에 호소하고 정의에 읍소해도 유전무죄, 재판거래로 지고 만다. 이번 KTX승무원들도 그렇게 해서 당했다. 이러니 서민들 사이엔 늘어나는 건 한 숨이고, 원한이고, 불신이고, 냉소뿐이다.
 
오래 전부터 퍼져간 이러한 기막힌 상황에 대해선 검찰관과 법관, 정치지도자는 듣지 못한단 말인가? 오늘 현 대법원장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법관들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보고 종합해서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들은 사법권 범위 안에서 자체 조사하고 끝내고 마는 ‘셀프 조사, 셀프 방면’으로 매듭을 지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매번 속는 건 어디 호소할 데도, 저항할 수단도 없는 힘없고 막막한 사회적 약자들뿐이다. 그놈이 그놈이고, 모두가 한 통속이라면 이제는 ‘좋은’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재판거래 파동의 중심에 선 전임 대법원장 같은 ‘나쁜’ 국민에 대한 체포조도 좋고, 가칭 ‘사법기구혁파범국민대책위원회’나 ‘사법농단세력척결범국민대책위원회’ 결성도 좋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형편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생계가 어려워 여유가 없더라도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부터 가지는 것도 그 중 한 가지다.
 
자주 강조한 바 있듯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미친 듯이 폭주하는 이 험한 세상에 사회적 약자들끼리 연대하지 않고 서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다음엔 주변 지인, 가족이나 혹은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합당한 제도가 뒷받침됨으로써 평등의식이 사회저변에 확대되고 절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법 정의가 서지 않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밖에 없는 기이한 단어인 ‘유전무죄’와 ‘재판거래’로 불편부당한 판결을 받지 못하게 돼 약자들은 믿고 디딜 언덕이나 설 자리가 없게 돼 결국엔 막다른 구석으로, 음지로 내몰리게 된다. 우리사회의 자살율이 세계 최고로 높은 원인 가운데 하나다.
 
지금 이 ‘꼬라지’가 지금 우리사회의 얼굴이고 현주소다. 이게 어디 남의 일인가? 내버려둬서 안 될 내일이자 우리 일이 아닌가? 약자들이 연대해 사악한 무리들을 징치(懲治)시키고 사필귀정 시키는데 일익이 돼야 할 이유다.
 
위 글은 2018년 6월 5일자『용산시대』의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