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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용되는 ‘혁명’용어,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雲靜, 仰天 2018. 3. 26. 12:52

오남용되는 ‘혁명’용어,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최근 몇 년 사이 ‘혁명’이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예가 부쩍 눈에 띈다. 지난 주 청와대에서 공개한 개헌안에서 “4·19혁명”으로 그대로 명명한 것도 이에 해당된다. 이는 현행 헌법전문에 담겨 있는 ‘4·19혁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1962년 3차 개헌 당시 ‘4·19의거’로 명기됐다가 1987년 9차 개헌에서 ‘4·19혁명’으로 변경된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돼 오고 있다. 작년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어떤 후보는 4·19의거를 “미완의 혁명”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혁명인가, 군사쿠데타인가 하는 문제로 논란이 돼온 ‘5·16’은 국가권력을 잡은 이가 누구냐에 따라 ‘혁명’과 ‘군사쿠데타’ 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박정희에 대해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로 평가하는 이들은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지만, 박근혜에게는 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그는 수년 전 대통령 후보 시절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5.16군사쿠데타 세력은 당시부터 자신들의 거사를 혁명이라 칭함으로써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광주 ‘5·18민주화항쟁’을 “5·18광주민주화혁명”이라고 명명한 경우도 있고, 작년 촛불시위로 대통령이 물러나자 이에 환호성을 올린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촛불시위를 ‘혁명’이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작년 7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캐나다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국에서도 촛불혁명이라는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고, 제가 그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라고 소개한 문재인 대통령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혁명’용어를 오남용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거치지 않고 심정적으로 호불호와 동의와 부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자신이 선호하는 사건에다 ‘혁명’을 갖다 붙이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실로 ‘혁명’ 용어의 과잉시대, ‘혁명’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범람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 포스트는 이 포스트를 제작한 사람들이 혁명은 긍정적이며, 쿠데타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사회 전체가 몰이성적으로 돼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좌다. 이런 식으로 ‘혁명’용어가 쉽게 일반화 돼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바르게 적용된 명칭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해당 사건에 적용된 '혁명' 용어가 정당하게 사용된 것인지 숙고해보는 이성적 자세가 필요하다.

 

오도된 역사용어의 오용과 남용이 왜 문제가 될까? 이것이 지속되면 사과를 배라고 하고, 배를 사과라고 칭하거나 또는 악행을 선행이라고 우기면 일상생활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듯이 언어의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혼란이 빈발하고 기존 질서가 허물어진다. 국가전복행위와 쿠데타를 혁명이나 의거라고 부른다든지 혹은 독재자를 민주주의자라고 기록하면 언어상의 소통, 교육, 재판, 국가기록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치성과 자의성을 배제하지 못하면 혁명의 개념 정리는 학문적 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한다. 역사인물을 포함해 과거사를 지칭하는 역사용어엔 해당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찬반, 선악, 正否, 호오 등의 가치평가가 내재돼 있어 행위의 주체 여부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 정쟁이 되기 쉽고, 국민통합의 정도를 저하시킨다.

 

 

우리 사회에는 폭동이나 쿠데타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찬성하거나 좋아하는 것이면 긍정적인 의미로 '혁명'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혁명용어를 별다른 의식 없이 무개념적으로 오남용하는 이유는 이 용어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물론, 심지어 학계에서도 개념 정의가 엄밀하지 않고 애매한데서 연유한다. 가치평가가 내재돼 있는 혁명은 쿠데타, 정변, 혁신, 유신, 운동, 시위, 폭동, 봉기, 의거, 개혁, 전쟁 등과 각기 다르다. 과연 무얼 두고 ‘혁명’이라고 칭하고, ‘혁명’을 어떻게 정의해야 객관성이 담보될까?

 

이와 관련해 ‘혁명’의 한글어원이 된 한자의 革命과 영어의 Revolution이 함의하는 바를 보면 공통분모를 추출해낼 수 있다. 먼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혁명’이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즉 어떤 사건을 혁명이라고 평가하려면, 그것이 과거의 제도를 짧은 시간에 파괴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으로 중국에서 革命이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으로 가장 이른 기록은 주역(革卦·彖傳)에 있다. 즉 “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大矣哉” 중 ‘湯武革命’이 그것이다. 탕무혁명이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하늘의 뜻, 즉 백성의 바람에 부응해 하나라의 桀王과 은나라의 紂王을 제거해 멸한 것을 말한다. 이로써 고대에 천자가 ‘天命’(mandate of Heaven)을 부여받았지만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보고 왕조를 바꾸는 것을 일러 命을 革하는 것, 즉 天命을 바꾸는 것을 가리키게 됐고, 이를 ‘혁명’이라고 한 것이다.

 

또 혁명의 영어 대응단어인 Revolution은 원래 천문학에서 별이 궤도를 한 바퀴 돌고난 뒤 처음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회귀”와 “반복”을 가리킨 천문학 용어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운행론(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의 Revolution을 이런 의미로 사용했다.

 

서양사에서 천문학 용어로서의 Revolution이 회귀, 운동으로 인한 변화라는 두 요소를 충족시키면서 정치사상의 용어로 처음 사용한 것은 찰스 2세(Charles Ⅱ)였다. 1660년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영국혁명을 두고 상황을 평가했는데, 영국이 그 동안 “여러 번의 큰 Revolution을 겪었다”면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가리킨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Revolution은 단지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됐고, 진보개념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Revolution을 진보의 의미를 넣어 사용한 것은 튀르고(Turgot)와 볼테르(Voltaire)였다. 이로부터 Revolution이 비로소 근대성을 획득하게 됐다. Revolution이 “위대한”이 더해져 위대한 ‘변화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은 미국의 독립운동을 거쳐 프랑스혁명에서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혁명에서 혁명개념으로 명백하게 정의돼 정부의 변경과 새 질서와 새 시대를 시작한다는 두 의미가 하나의 의미로 통합돼 사용되기 시작한 사실이다. 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바스티유감옥의 함락과 프랑스왕정의 전복이 혁명의 개념정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시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바스티유감옥의 함락과 프랑스왕정의 전복처럼 하나의 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이 혁명정부만 성립시킨 게 아니라 혁명재판소와 혁명군도 창설되는 등 공포정치로 과격해진 뒤로는 Revolution이 혁명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레짐(regime)과 그에 따른 조치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됐다. 즉 폭력은 이미 혁명에 불가결한 요소가 돼 있었고, 공포정치와 더불어 Revolution은 폭력이 수반된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됐다.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외젠 들라크루와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서양에서 혁명에 대한 정의가 대체로 일치하게 되는 일반적인 합의가 도출된 것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였다. 즉 혁명이란 정치권력의 급격하고 폭력적인 변화이며, 통치절차와 주권 혹은 정통성의 공적 기반 및 사회질서의 개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사건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사건으로 인식됐다. 프랑스혁명이 근대성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식되고 있는 특징들, 예컨대 폭력에 의한 정부의 전복, 사회생활의 변혁, 인류 전체의 진보와 발전이 Revolution의 내재적인 의미가 됐다.

 

서구사회에서 Revolution의 의미가 프랑스혁명에 이어 또 한 번 크게 변화하는 것은 19세기 마르크스의 혁명사상이 대두되면서부터였다.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으로 형성된 근대적인 혁명개념을 역사적인 개념으로 만든 인물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혁명은 새로운 계급의 국가권력 획득, 기존 국체와 정체, 사회구조의 파괴, 사회생활상의 모든 변화, 공포정치의 한 시기를 거쳐야 하는 것 등의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건이라면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게 됐다.

 

지금까지 소개한 혁명에 관한 동서양 혁명에 내포돼 있는 공통분모를 추려내서 종합하면, 혁명이란 한 마디로 비합법적인 무력을 수단으로 삼아 단기간에 일국의 국체나 정체를 바꾸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되는 사건에 대해서만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행위 주체가 피지배 사회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계층이어야 하고, 둘째, 귀족제, 참주제, 과두제, 군주제, 민주공화제,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기존 국체와 정체를 다른 국체와 정체로 바꾸고자 하는 분명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셋째, 국가권력을 전복하고자 사용한 수단이 폭력적이든, 평화적이든 비합법적이어야 하며, 넷째, 국가권력의 찬탈이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등의 네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통치자의 제거나 독재정권의 혁파만 있고 체제변화를 지향한 동기와 목적성이 내재돼 있지 않는 사건에 대해선 혁명이라고 불러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4·19, 5·16, 5·18, 촛불시위는 모두 혁명으로 볼 수 없다. 4·19는 국민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공화제와 민주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의거 혹은 봉기가 맞다. 5·16은 행위의 주체세력들이 군대를 동원한 무력을 수단으로 삼아 짧은 시간에 국가권력을 수중에 넣었다는 점에선 혁명의 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역시 공화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다른 체제로 바꾸려는 동기와 목적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쿠데타였다.

 

5·18은 행위의 주체세력이 정체를 바꾸고자 하는 명백한 정치적 동기가 결여돼 있어 독재세력의 압제에 저항한 ‘민주화항쟁’이라고 보는 게 옳다. 촛불시위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냈지만 이 시위로 정체까지 바뀐 것은 아니어서 이름 그대로 시위나 항거였다. 단 독재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선 평가가 달라질 순 있다. 또 역사용어의 하나인 식민지체제도 마찬가지다. 학계나 시민사회의 심층적 연구와 논의를 거쳐 객관성이 확보된 혁명용어의 정의를 도출해 소모적인 정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위 글은 2018년 3월 26일자『오마이뉴스』에「너무나도 많이 쓰이는 단어 ‘혁명’, 어떻게 정의할까?」라는 제목으로 변경돼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