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紀行 : 唐詩 回鄕偶書 감상, 변화와 무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古典紀行 : 唐詩 回鄕偶書 감상, 변화와 무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고전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임은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다. 문학작품이든, 음악, 미술류의 예술이든, 철학이든, 혹은 정치 및 군사사상이든, 그것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면 어떤 식이든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성시, 절대시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또 고금의 장단을 떠나 우리가 섭렵해 정신적, 사상적 젓줄로 삼고 현창해야 할 지혜의 보고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현대 인류가, 특히 작금의 한국사회가 인간다움, 즉 휴머니티(humanity)를 상실한지 오래된, 삭막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까닭은 고전의 눈부심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고전의 지혜가 버림받고, 고전의 중후함이 정신을 떠받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雲靜이 淺學菲才임에도 고전을 들먹이는 건 고전의 세례로 사회가 조금이라도 인간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希願이 깜냥의 부실에 대한 認知 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사정과 앎이 허여하는 대로 고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할 소이연이다. 그 첫 번째 고전기행으로 문학작품 가운데 唐詩를 한 수 음미해볼까 한다. 唐代의 賀知章이 쓴 回鄕偶書를 골랐다. 이 시를 택한 이유는 고향, 인생, 무상 등에 관한 의미를 반추해보자는 의도에서다.
흔히 고향은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된다. 그것은 동물에게나 사람에게나 다를 게 없다. 首丘初心이란 그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삶의 양태를 주조하는 원형질과도 같은 것이다. 고향은 인간 정신의 영원한 의지처이지만, 현대인은 대부분 고향을 잃어버리고 산다. 혹은 고향을 등지고 산다. 고향이란 일견 공간적인 개념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시간이 매개돼 있는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고향이 주는 삶의 에너지와 기능이 퇴색될 수도 있어 결국 우리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고향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無常의 원초적 창출자다. 시간 앞에서는 변하지 않는 무상이란 있을 수 없다. 고향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향과 인생무상은 삶에서 함께 얽혀있는 넝쿨 같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首丘初心과 변화의 의미가 가볍지 않게 다가오는 연배라면 고향과 인생무상이 떠오르는 빈도가 많아질 터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回鄕偶書는 우리에게 이러한 성찰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 시를 접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고향, 인생, 무상의 파토스(pathos)를 새삼 성찰하고, 그 文香이 몸에 배이도록 스스로 걸어온 인생과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음미하게 된다면 본고를 上梓하려는 寸志가 달성되는 셈이다.
回鄕偶書
賀知章(唐代)
少小離家老大回
鄕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離別家鄕歲月多
近來人事半消磨
惟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
고향에 돌아와 고향이 변한 걸 보고 시를 쓰다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서야 돌아 왔더니
고향말은 변한 게 없지만 귀밑머리는 희끗하구려
아이들은 서로 봐도 몰라 보는구나
웃으며 객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고향집을 떠나 산 세월이 너무 길었구나
고향에 와보니 옛 것은 거진 사라지고 없는데
남아 있는 건 문앞 鏡湖의 호숫물밖에 없고
봄바람만 변함없이 옛날처럼 파문을 일으키네
위 ‘回鄕偶書’는 盛唐시대를 살았던 賀知章(659~744)의 여러 작품들(『全唐詩』에 총 19수가 실려 있고, 이외에도 다른 시들이 남아 있음) 가운데 ‘咏柳’와 함께 가장 널리 회자되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저자 하지장의 출생, 성정 등과 함께 이 시가 탄생된 시공간적 배경의 소개로 이에 대한 기행을 시작해 作詩의 심경을 추론해보자.
하지장의 字는 季眞이며, 호는 四明狂客이었다. 그는 越州會稽永興(지금의 浙江省 杭州市蕭山區)에서 한족으로 태어나 당 조정에 출사한 관료이자 문인이었다. 하지장은 소싯적부터 시문을 잘 짓기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허나 과거에는 37세 때에야 늦깎이로 급제했다.
그는 武則天 원년(695년)에 과거시험에서 上元으로 급제해 ‘國子四門博士’,‘遷太常博士’의 직함을 수여받았다. 늦은 과거급제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그 후로도 그는 예부시랑, 비서감, 太子賓, 집현전 학사, 공부시랑 등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40여년 관록을 먹었다.
도량이 넓고 호방한 성정을 가지고 태어난 하지장은 남과 어울려 담소하길 좋아하고, 음주와 풍류를 즐겼기 때문에 그가 어울렸던 사람들도 자연히 문인들이 많았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詩仙 李白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백과 忘年之交의 친구가 됐는데 그것도 이백의 시문을 보고 바로 이백을 “신선에 어울리도다”(適仙人也)라고 찬양한데서 기인했다. 나중에 李白이 관직을 맡게 된 것도 하지장이 玄宗에게 그를 천거했기 때문이다.
유유상종이라지 않는가? 하지장에게도 이백처럼 常禮로는 읽히지 않는 기이함이 있었던 것 같아 보인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존망을 받고 살았지만 만년에 자유분방한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四明狂客”이라고 자칭했다. 그의 시와 글들이 호방한 문풍을 지녔던 점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詩狂”이라고 일컬었던 데서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시 있는 곳에 술이 없을 수 없고, 술이 있으면 시가 나오는 법! 그는 시작을 즐겼지만 음주도 대단히 즐겼던 모양이다. 그가 李白, 李適之, 李璡, 崔宗之, 蘇晋, 張旭, 焦遂와 자주 어울려 음주를 곁들어 시를 짓다보니 “醉八仙”으로 불린 곡절이기도 했다. 또 陳子昻, 盧藏用, 宋之問, 王適, 畢枸, 李白, 孟浩然, 王維와 함께 “仙宗十友”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장이 살다간 삶의 궤적 중 두드러지는 동선의 하나는 그가 오랜 객지생활을 한 뒤 삶의 말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은 젊은 시절 진사시험에 합격하기 이전인 36세 때였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조정 관직에서 물러난 해인 80세였으니 객지생활을 44년이나 한 셈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그 동안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 이 사실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 回鄕偶書의 탄생 배경이자 文緣이기도 하다.
杭州가 고향이었던 하지장의 집은 鏡湖 호숫가에 있었던 모양이다. 항주는 기온이 온화하고 경치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경승지다. 鏡湖는 지금의 浙江省 杭州市蕭山區 북쪽 산기슭에 위치해 있는 호수인데,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사방 300여리가 되는 바다 같은 거대한 호수다. 44년만의 귀향이 이 시가 작시된 시간적 배경이라면, 항주와 鏡湖는 공간적 배경이다. 하지장은 귀향 후 5년이 지난 당 현종 시기 天寶 3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고향을 떠난 지 어언 40여 년이 지난 中壽의 나이에 찾아온 황혼녘의 꿈같은 귀향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노인이 돼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의 말소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이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음직하다. 고향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게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옛날’, 즉 과거의 옛 모습들이 그대로 존속돼 있기를 기대한 심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목도한 고향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경관이나 세상인심이나 모든 게 너무 변해 있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읊은 게 저자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인 듯하다.
제목 중 “偶書”는 우연히 시를 짓는다는 의미라기보다 고향의 변화에 대해서만큼은 글로 써야겠다는 작가 자신의 내면적인 詩情을 드러내는 단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偶書”란 ‘우연히 글을 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뭔가에 대해 느끼고 쓴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타관 땅에 살면서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심리적으로 의미 있는 풍경으로 남아있던 “아름다움”과 “추억”에 대한 상실감을 얘기하려는 욕구였다.
作詩의 구성과 시어의 운용 면에서 이 시를 특징짓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즉 “歲月多”(“세월이 많았다”), “近來”, “舊時”(“옛시절”) 등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를 써서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키는 점, 그리고 “鄕音”(고향 말), “鬢毛”(희끗희끗한 귀밑머리), “兒童”, “客”, “門前鏡湖”, “春風”, “波” 등 자신이 목도한 사물들에 대해서 자신의 내면적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점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들과 공간 및 움직임, 즉 변화를 암시하는 단어들을 시어로 동원해 시공간의 공감각적 이해를 극대화 하려는 장치가 이 시를 관통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전체적으로 과거를 회고하면서 현재 보다 옛날이 훨씬 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에 잠기게 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저자 자신이 느끼는 기분에 같이 젖어들게 만드는 흡입력을 발휘하는 점이 주목된다.
위 설명을 조금 더 풀어쓰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回鄕偶書’는 마치 풍광을 사진 찍듯이 묘사하면서, 묘사된 그 시어들을 통해 자신의 감회, 속내, 가치를 읽게 만드는 특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雲靜이 주목하는 두 가지 다른 영역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하나는 작자의 느낌, 감회, 감정 등을 가급적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자연 경관을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모사하는 것에 치중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하는 일본의 하이쿠(俳句)다. 다른 하나는 현대 미술에서 인간의 눈이 카메라 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을 과시라도 하듯이 사물을 섬뜩할 만큼 세세하게 재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이라는 극사실주의다.
이 둘은 결국 환경심리학의 한 분야인 ‘原風景’(original landscape)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로 수렴된다. 즉 과거 자신이 보고 경험한 풍광, 원풍경들을 기억, 회상하고 그것을 다시 말하고 공감하게 함으로써 話者의 마음과 정서를 순화시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원풍경의 학술적 개념과 그 심리학적 기능에 관해서는 吳宣兒,『語りからみる原風景 : 心理学からのアプローチ』, 東京, 萌文社, 2011年 참조).
지은이 하지장은 우선 고향을 떠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나 귀향했지만 고향의 말이 변하지 않은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상상된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귀속감과 고향 말을 매개로 한 동향인으로서의 일체감 같은 심적 상태 말이다. 그렇지만 곧 지은이는 직접 보고 느끼거나 친구와 친지들에게서 들은 여러 가지 고향 얘기들로 고향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을 察知하면서 마음이 일종의 심리적 이반, 실망감, 아쉬움으로 이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雲靜이 언젠가 다른 졸시(‘영혼의 안식처’,『suhbeing/blog.daum.net』2015년 5월 17일 게재)에서 피력한 바 있듯이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다. 그런데 하지장의 고향은 그가 타향에서 보낸 오랜 세월 동안 변해도 크게 변했다. 대상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사물에 대한 정서적 불일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어머니의 품을 기대한 고향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특히나 동네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타지에서 온 ‘객’인 줄 알고 ‘어디서 온 분이시냐’고 물었을 때 하지장은 이방인이 된 느낌마저 들었을 것이다. 이는 만약 지은이가 출향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고, 고향의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면, 그래서 다행스러움, 편안함, 일체감, 귀속의식을 함께 느꼈다면 어떠했을까하고 반문을 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하지장이 처한 이런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켜 상상해보라. 자신이라면 어떤 심정이 됐을지를! 우리는 그 다음의 “鄕音無改鬢毛衰“(고향말은 변한 게 없지만 귀밑머리는 희끗하구려)라는 對句로 그의 기대감이 이내 세월의 격절과 함께 현실로 다가온 자신의 늙음을 실감하는 심정으로 바뀌게 됨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세상인심의 변화를 보고 감회와 탄식이 나오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고향을 등진 세월을 아쉬워하는, 심지어는 약간의 자책감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심정은 다섯째 구 “離別家鄕歲月多”(고향을 떠나 산 세월이 너무 길었구나)에 잘 나타나 있다. 변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 대목에서는 그의 호방하고 奇人的 기질이 많이 누그러뜨려져 여느 노년과 같은 성정이 돼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하지장은 자신의 이 소회가 여기서 끝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앞의 심리의 연장 상태에 있으면서도 약간의 위안감을 느꼈음직한 미세한 반전을 일으켰다. 그것은 고향과 세상사의 변화와 무상에 대비되는 대목이다. 자신은 이미 백발이 성성한 늙은 몸이 돼 있지만, 오직 집 앞의 푸른 호수만이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봄바람에 찰랑찰랑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닌가! 이 광경을 보니 사람은 쉬이 늙고, 세상일이란 게 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구한 경호의 푸른 물결, 봄바람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여울의 풍광에 안위감을 느꼈지 않았을까?
자신이 직접 목도했거나 친구들과 친지들로부터 고향인심의 변화를 전해 듣고 실망한 마음상태에서 홀로 호숫가에 서면 어떤 감회가 떠오를까? 십중팔구는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끼면서 낙심감이 더했을 수 있다. 하지장도 인간인 이상, 그도 자고 나면 늘상 눈앞에 펼쳐지는 鏡湖 호수 가에 홀로 서서 일종의 “物是人非”의 심정에 젖어 있었던 게 틀림없어 보인다.
“物是人非”라는 자구는 송나라 李淸照(1084~1155)가 지은 詞(노래와 춤 곧 歌舞戲가 포함된 大曲과 노래 가사만으로 구성된 散詞를 일컫는 총칭인데, 宋詞는 중국문학사에서 唐詩, 宋詞, 元曲, 明淸소설이라고 말해지듯이 송대 문학을 대표하는 주류적인 장르로 꼽히고 있음)『武陵春』의 “物是人非事事休,欲語淚先流”에서 나온 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만이 없구나”라는 탄식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옛 시절이 아름답고 좋았다는 감회가 녹아 있음을 말한다. 예술적으로는 이 생각이 경향화 되면 擬古主義라 부른다.
이런 판단은 시의 마지막 제7구와 제8구 “惟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남아 있는 건 문앞 鏡湖의 푸른 물밖에 없고, 봄바람만이 변함없이 옛날처럼 호수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구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장도 “不改”(“변함없다”)라는 말로 “半消磨”(“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에 심리적으로 저항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惟有”(“~만 있구나”)로 독자들에게도 “半消磨”(“거의 사라지고 없음”)을 인지하게 해주는 쪽으로 이끌면서 호수의 물결 외에는 모든 게 변해도 너무나도 크게 변해 옛날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실감, 무상함, 허전함을 느끼게 만든다.
지금까지 소략하게 논한 해석과 분석만으로도 하지장의 ‘回鄕偶書’는 고향의 의미와 함께 누구나 인생 말년이면 으레 느끼는 무상감과 쓸쓸한 내면의 정서를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시키는데 상당히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하지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변화와 무상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시에서 읊은 대로 삶의 허무와 덧없음으로? 아니면 허무와 유한함의 긍정을 통한 삶의 한 자연스런 과정으로?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2015. 12. 13. 11:15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