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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미투’... 국가는 보고만 있을 텐가?

雲靜, 仰天 2018. 2. 26. 16:50

확산되는 ‘미투’... 국가는 보고만 있을 텐가?

 

최근 유명인사, 유력 남성들의 감춰진 여성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 사실들이 연일 봇물 터지듯이 뉴스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성적 피해 여성들의 ‘미투’(me too)선언이 확산되고 있다. 사법계에서 불거진 것이 지금은 문화계를 거쳐 방송계, 연극계, 교육계로도 번지고 있다.

 

 

자신이 당한 성희롱 경험을 폭로함으로써 '미투' 선언들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 쉽지 않은 용기에 큰 박수와 함께 지지를 보낸다. (사진 출처 : KBS)

 

앞으로 어느 분야로 불이 옮겨 붙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폭로된 불미스런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종교계에서조차 성폭행과 성추행 사건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우리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교묘하게 일상화 된 일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개인들 간의 사사로운 문제로 보고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게 인식한다면 이는 큰 착오다.

 

이 문제는 결코 개인들 간의 사사로운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사회적 건강을 해하는 범죄행위여서 한국사회 전체의 존엄이 걸린 사안이다. 인터넷 온라인상에서의 댓글로만 비판하거나 비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혐의자들은 비난 받고 면죄될 게 아니라 입건돼 조사를 받고 혐의가 사실로 판명되면 구속과 함께 죄과를 치러야 할 범죄자들이다.

 

그런데도 국가가 할 일이 없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정부의 무덤덤한 반응을 보면, 마치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투’ 선언이 각개 각층의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지만, 해당 혐의자에 대한 입건 혹은 구속 등의 사법 처리도 없고, 여성단체들에서도 문제시하지 않으니 동력을 잃어 시들해져 가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안 그래도 무른 한국의 법이 아예 부응하지 않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각에도 성추행자, 성폭행자, 성희롱자들은 버젓이 해오던 짓을 계속 할 것이다. 최초 혐의가 드러나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다 빠져 나간 유력자나 이른바 ‘문화권력자’들은 무너지지 않은 그들만의 철옹성 안에서 피해자들 그리고 나중에 본보기로 걸린 몇몇 힘없는 혐의자들을 비웃고 있지나 않을까?

 

 

한국사회에 여성(남성도 해당됨)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관련된 당사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어느 특정 한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위 사진에서 확인되듯이 문화계 한 곳에서만 거론되고 있는 미투 대상자들만 해도 이렇게 많다.

 

먼저 어렵게 용기를 내 폭로한 여성들에게 박수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 이번 ‘미투’ 선언의 확산은 오랜 세월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견고한 구조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리는 증좌다. 남성 위주, 갑과 기득권자 위주로 움직여지고 있는 한국사회가 견고한 듯이 보여도 언젠가는 분출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물론, 한국사회란 게 기존 사회시스템과 기득 관행이 워낙 견고해서 이번 한 번만의 충격으론 정화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인 을에 대한 소위 힘 있는 유력자들의 ‘갑질’, 종용, 억압이 주범이라면, 그들의 범죄사실을 알고서도 좋은 게 좋다는 조력자, 다수의 방관자의 침묵과 묵인과 비겁이 종범이다. 또한 당한 이들이 분노와 좌절 속에서 각종 압력을 받아 마지못해 하게 되는 타협하거나 입을 닫게 되는 것은 주범과 종범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사회 전체가 남성 위주, 편법, 위법, 탈법을 수단으로 거머쥔 권력자와 부자(정당한 수단으로 쌓은 권력자와 부자는 아주 드물지만 예외)들의 기득권을 유지, 보호, 영속, 확대시키는 구조로 작동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법, 국가행정, 남녀관계 인식, 취업, 교육 등등 수많은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같은 구조가 혁파, 개선되지 않고선 ‘미투’ 선언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항거와 ‘미투’선언은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 지속돼야 한다. 이 확산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여성만으론 한계가 있고, 우리사회에서 거시권력과 미시권력을 모두 움켜쥔 남성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남녀 간의 양성평등문제이자 사회적 정의문제와도 연결돼 있는, 우리 모두의 정화 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많이 적겠지만, 여성의 남성 성추행 혹은 성희롱이 근절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미투’선언이 성공하려면 상부구조의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기존 정치제도의 불합리한 것들의 개혁과 함께 시민들의 현명한 투표, 사회참여의 일상화가 수반돼야 의미 있는 성과가 따를 것이다.

 

그 전에 개인적 수준에서 먼저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피해자는 혼자가 아니라 연대자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한다. 동시에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어져야 한다. 정부 역시 당연히 피해자 자신의 자발적인 신고가 확산되도록 피해자의 신고에 대해 ‘후환’이 없게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예컨대 먼저 국가 공기관에서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신고해도 대부분 해당 기관에서 묵살하거나 해결을 더디게 만들어 제풀에 손을 들게 만들거나 나중엔 인사상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한국사회엔 전반적으로 물렁한 법집행이 문제인 현 상황에서 성범죄 관련 법집행은 특별히 엄하고 무거워야 한다.

 

이번 사태에 진보진영의 문인과 연극인이 포함돼 있음을 보고선 진보진영을 욕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성추행, 성희롱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인성과 관련된 문제이지 그것이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굳이 말한다면 대체로 보수진영은 부정부패와 탐욕과 무지 때문에 망할 것이고, 진보진영은 위선과 자만과 선민의식으로 망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노라면, 늘 그래왔듯이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을 넘어서서 상식과 진실과 이성과 합리성을 기준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더 넓은 차원에서는 남의,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나의 문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의 마음공부가 필요하거나 지속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여성을 내 아내, 내 딸, 내 질녀, 내 손녀, 이웃집 친구로 보이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가짐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는 마음이다. 개인은 그러한 마음이 몸에 배어나도록 마음 바루기를 생활화해야 할 것이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법과 제도로 뒷받침돼 보이지 않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는 자정, 자숙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성교육과 양성평등,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도록 하는 내용을 교육해야 하고, 사회가 그런 가치를 당연한 걸로 여기게 하고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잠시 시끄럽다가 이내 시들해지고 말 반짝 뉴스거리 정도로 끝나선 안 된다. 국가는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된 이번 항거를 기회로 삼아 시의 적절하게 그 기류에 올라탈 필요가 있다. 그 여부는 전적으로 사법기관 등 정부 관련 부처의 의지에 달려 있다.

 

2018. 2. 22. 08:33

雲靜

 

위 글은 2018년 2월 24일자『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