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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등해지려면 대사부터 급을 맞춰라

雲靜, 仰天 2018. 2. 12. 10:00

중국과 대등해지려면 대사부터 급을 맞춰라

 

서상문(고려대학교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한중수교 후 학계에서 중국학자를 초청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국가연구기관에서 중국학자를 초청하면서 왕복항공료, 체제비용 외에 논문발표 사례비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는 게 예사였다. 당시 중국화폐 가치로는 거금이었다. 중국학자 섭외를 맡게 된 어느 후배에게 국민세금을 왜 그런 식으로 낭비하느냐면서 초청경비를 줄여도 된다고 했더니 이미 중국학계에 알려진 기존 ‘몸값’ 때문에 초청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군계통 연구기관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수년 전, 업무차 중국국방부 외사판공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은 젊은 대위가 기존 중국주재 한국무관에게 해온 대로 내가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줄 알면서도 처음부터 ‘아랫것’ 대하듯 거만한 어투로 이죽거렸다. 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게 군인계급이라면서 호통을 쳐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바 있다. 40대 중후반 나이의 중령, 대령 계급의 한국무관이 중국국방부에 업무차 연락을 하거나 중국측에서 한국무관부에 연락할 땐 20대 후반 나이의 대위나 소령이 응대한다. 외교부 사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이외에도 한중 양국은 주권국가로서 대등한 관계임에도 두 나라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대칭적 사례가 적지 않다. 과거 조선이 중국을 ‘상국’, ‘천조’(天朝)의 대국으로 받들었고 중국도 조선왕을 신하로 대했듯이 양국 저변에 여전히 존재하는 중국=대국, 한국=소국이라는 자대(自大)와 사대의식만이 원인이 아니다.

 

상대국에 파견하는 대사의 급도 다르다. 중국은 대사를 4등급으로 나누고 상대국의 중요성, 자국과의 관계 경중에 따라 외교관을 보낸다. 1등급은 외교부장 아래 부부장(副部)급 대사,2등급은 국장(正司)급 대사, 3, 4등급은 부국장급 대사거나 영사다. 중국의 159개 해외주재 대사는 모두 부국장급 이상인데, 2~3등급이 대다수다. 차관급인 부부장급 대사를 보내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인도, 브라질, 북한 등 9개국뿐이다. 북한은 미국, 러시아와 동급으로 대우 받는다. 역대 총 17명의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모두 차관급임에 반해 한국은 북한 보다 한 급 아래로 분류돼 국장급이 대사로 나온다.

 

 

북경시내에 있는 중국외교부 청사. 중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교부는 직원들이 자신이 최고로 잘난 자라는 비뚤어진 엘리트의식에 빠져 사는 외교관들이 많다.
본 칼럼 주제와 관련이 없는 여담이지만, 필자는 이 중국외교부 청사에 과거 2000년대에 여러 번 들어간 적이 있다. 이 청사 안에 있는 외교사료관에 있는 1950년대 이후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올린 외교보고서를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들어갈 때마다 느낀 것이었지만 직원들이 상당이 고압적인 언사를 보였다. 소장돼 있는 외교사료들도 민감하다싶은 것은 모두 블라인드 처리를 해놓았다.

 

우리정부는 선진국, 상대국의 중요성, 외교관의 선호도에 따라 가, 나, 다, 라 4등급으로 분류하고, 중국을 미국, 일본, 유엔본부 등과 함께 가급으로 분류해 외교관이 아닌 집권당 유력자나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공무원급수로 따지면 장차관급 이상의 정치실세를 보낸다.

 

겉보기엔 양국 대사의 급수가 1~2급 정도 차이나지만, 중국의 외교정책 결정시스템을 알면 격차는 더 크다. 중국의 주요 외교정책은 대개 중공 중앙위원회 직속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총서기가 조장인 총서기 직속의 외사공작영도소조에서 조율된다. 외교부는 당 계통이 아닌 국무원 소속으로 외교업무 집행기관일 뿐이다. 여기엔 부장 1명, 부부장과 조리(차관보)가 12명 있고, 그 아래에 우리의 국에 상당하는 사(司)가 약 30개나 있다.

 

우리는 ‘4강외교’의 중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중국대사로 장차관급 실세를 보내는 것은 스스로 작아지는 당당하지 못한 자세와 오랜 관행이 결합된 소산이다. 양국 외교시스템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작년 방중시 중국을 대국이라고 추켜세운 문 대통령의 발언은 대국임을 과시하길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비위에 맞춰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해외에 비치는 국가위상과 우리국민의 자존감 손괴라는 보이지 않는 손해는 실리를 능가한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상대국 대사의 급에 맞춰 대등하게 대사를 보낸다고 해서 국익이 손상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우리가 중국대사의 급에 상응하는 국장급 대사를 보내도 불만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서로 대등해야 한다는 호혜평등을 누누이 강조한 마오쩌둥 이래의 외교원칙을 거스르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대등한 관계는 대사의 급을 대등하게 맞추는데서 시작된다. 베트남처럼 스스로 중국에 대등해지려는 의지가 절실하다.

 

위 글은 2018년 2월 9일자『서울신문』 서울광장난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