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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다 한국외교에 더 분통 터지는 이유

雲靜, 仰天 2017. 12. 27. 13:03

중국 보다 한국외교에 더 분통 터지는 이유

 

서상문(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국민이 매번 중국과의 협상에서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대국엔 저자세요, 국민에겐 고압적인 한국외교 덕분이다. 방문이 끝나면 정부가 외교성과를 자랑하는 것은 역대 한국정부의 오랜 구태다. 국가원수가 홀대를 당했다느니, 사대적인 굴욕외교였다느니 하는 문제로 국민들 사이에 소모적인 ‘쌈박질’이 벌어지는 것도 낯익은 풍경이다.

 

이제 이런 악순환은 벗어날 때다. 정부는 외교성과를 거뒀다고 자랑만 할 게 아니라 왜 국민들이 중국의 의도대로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통일전선의 틀에 갇히게 되는지 외교대응과정을 복기해봐야 한다.

 

한국외교가 우선 의제설정에서 중국에게 한 수 접혀서 협상을 벌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사드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한국은 물밑 조율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도발로 촉발된 사드문제를 주권국가로서의 자주국방의지와 주권행사의 독자성이라는 원칙을 견지해 북핵문제의 진일보한 해결방안이나 의지를 의제에 올리지 못한 반면, 중국은 한반도비핵화와 북핵반대라는 원론만 강조해 한국의 역공을 차단하고 우리에게 자승자박꼴인 소위 ‘3불’을 자발적으로 약속하게 만들었다.

 

이는 중국에게 북핵과 사드 배치의 불가분성을 이해시키지 못했음에도 조급하게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연내로 잡고자 무리수를 둔 데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12월 13일은 난징대학살 기념행사로 중공수뇌부 전원이 베이징을 비우는 날임을 알고도 이날을 방중개시일로 잡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문대통령을 텅 빈 수도로 찾아오게 만들어 중국이 사드문제해결을 한미 양국에 요청한 상황이었는데도 도리어 한국이 아쉬워 부탁하는 ‘을’의 입장에 서는 모습을 국내외에 각인시킬 외교수단으로 삼은 이상, 이날을 피하자고 제의하는 성의를 보일 리가 없다. 자국이 협상타결을 더 필요로 함에도 국내외에 종속적으로 비치는 걸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중국외교의 전통수법 중의 하나다.

 

중국은 통상 국내정책 결정절차와 정치일정에 맞출 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정치일정을 면밀히 검토해 상대국이 원하는 합의의 데드라인까지를 시야에 넣고 외교협상에 임한다. 사드해결보다 경제보복해제를 더 시급한 과제로 삼고 시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바라는 우리의 기대심리는 다 노출됐다.

 

한국도 시진핑 정권이 안고 있는 국내정치 취약점, 평창엔 시 주석 자신도 참석할 필요성이 있는 사정을 협상에 활용했어야 했다. 경제손실도 어차피 장기화되고 있어 우리만 입는 게 아니라 중국에게도 결코 좋을 게 없는 이상, 중국-베트남 같은 대등관계로 만들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중국은 우리가 중국과의 외교협상에서 매번 결기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손 든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차관보급의 대통령 기내 영접, 만찬 한 번에 그친 식사대접, 대통령에 대한 중국외교부장의 무례, 한국측 수행기자 집단폭행은 모두 자연스레 일어난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짜놓은 각본에 따른 노회한 외교공세였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엔 외교의례나 형식을 협상내용과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접대와 의례를 상대국에 대한 압력의 한 수단임과 동시에 자국민선전용으로 활용하는 전통이 있다. 중국정부가 정한 외교예우의 3개 지침 중 초청자를 대등하게 대한다는 대등원칙에도 반한다.

 

 

국익을 위해 인내하는 것도 좋지만 국가의 위상과 국민들의 자존심도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중국이 국가 원수를 초청해놓고 이런 식으로 누구나 갈 수 있는 보통의 식당에 가서 ‘혼밥’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한 각본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의지나 성격도 파악하고 협상의 우위에 서기 위한 술책인 것이다. 때로는 박차고 나와 버리면 더 큰 것이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판이 틀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는 것이 역대 한국 지도자들의 외교행위의 기본 패턴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더 큰 문제다. 중국은 기가 센 지도자에게는 더 예우하고, 더 깍뜻히 대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중 외교사에서, 아니 세계 외교사에서 길이 남을 명 장면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광경

 

중국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평소 우리 내면의 사대의식을 떨쳐내고 당당해야 한다. 중국은 외교부 국장급을 주한 중국대사로 임명하는데, 우리는 역대 정권에서 정치실세를 중국대사로 보내온 것부터가 사대적인 자세다. 양국 대사의 급을 대등하게 맞추고, 중국총리에 대해서도 총리급으로 응대해야 한다.

 

상대는 우리의 치적이나 정치철학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의 영도력을 칭송하고, 그도 모자라 중국 최고 명문대학에서 두 나라를 대국과 소국의 관계인 듯 연설한다거나 중국외교부장의 결례를 두고 청와대가 나서 친밀함의 표시일 것이라고 변호해주는 등 상대 비위를 맞추려는 사대의식이 뽑히지 않는 한 한국외교는 늘 국민을 분통 나게 할 수밖에 없다.

 

위 글은  2017년 12월 20일자『서울신문』의 열린세상의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