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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영화적 상상력의 허용치를 넘어선 영화

雲靜, 仰天 2017. 9. 4. 16:24

군함도, 영화적 상상력의 허용치를 넘어선 영화

 
요즘 시중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군함도가 호폄이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다. 안 그래도 폭염인 8월 염천을 더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큰 만큼 영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역사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영화를 봤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만큼 끝까지 보기에 지루하고 불편했던 영화는 처음이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극장을 나가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한낮이라 밖이 너무 덥겠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참고 보기는 끝까지 다 봤다.
 

영화 군함도 광고 포스터

중간에 나가고 싶었던 이유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정신박약아나 미숙아가 그린 그림 혹은 작문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그림이나 작문은 대개 정상적인 사고 기능을 가진 이들에겐 너무 엉성하고, 너무 말이 안 된다는 느낌을 주어서 끝까지 읽지 않거나 보지 않도록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그림과 작문에는 사실, 진실, 논리와 상식이 내재적으로 관류하고 있지 않고 비상식, 비약, 주제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나 이해, 견강부회, 나아가 非文, 非조형적 기호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속엔 작자의 의도나 동기는 반드시 들어가 있는 것임은 불문가지다.
 
과연 역사와 영화의 변별점은 어디에 둬야 할까? 둘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야 할까? 영화는 어디까지나 흥행을 염두에 둔 영화일 뿐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할 때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들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영화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역사왜곡일 뿐만 아니라 "천박한 상업화"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군함도'는 이러한 기본적인 의구심이 들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감독은 독재자 같은 존재라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영화감독은 자신이 그리고자 한 내용에 대해 상황에 따라 과장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현실의 왜곡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역사내용을 주제로 했을 때는 경우가 약간 달라져야 한다. 영화 군함도를 보면서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업영화여서 오락과 픽션이 가미되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단히 비정상적인 영화라고 느끼게 만든 이유들이 적지 않았다.
 
먼저, 시나리오 구성이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대본을 직접 쓴 류승완 감독의 자의적인 용인과 합목적적 동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간취됐다. 그러한 용인은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보였는데, 과연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영화 첫머리에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창작한 것”이라는 자막이 깔렸다. 영화 개봉 후 영화가 논란이 일자 감독 류승완은 인터뷰에서 “역사를 알릴 수 있다면 논란도 감당하겠다”는 취지의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감독이 밝힌 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창작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면, 또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한 영화 제작목적이었다면, 우선 큰 틀은 바꾸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따라 가되 어느 공간이나 시간의 한켠에 가공적 인물을 그려 넣어 개연성 있는 얘기를 만들어낼 때에만 가능한 게 아닐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제 영화의 줄거리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상황은 여럿 나온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근거는 단연 조선인들의 강제징용이다. 일본에게 강제 징용을 당한 조선인들은 큐슈(九州) 서남방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라는 조그마한 외딴 섬에 감금돼 지하 1100m 갱도 안에서 쥐꼬리만한 노임과 형편 없이 부실한 음식에다 휴식 없이 하루 16시간 가까이 석탄 채취에 강제 동원되는 등 비참하고 부당한 대우, 인권유린, 노동착취를 당했다.
 

큐슈 서남쪽에 있는 하시마. 섬의 모양이 군함 모양 같다고 해서 일명 '군함도'로 불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석탄 채취의 노동으로 번 임금, 즉 개인 재산까지 약취 당했다. 그들은 일제가 항복하고 나서야 겨우 조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후 일본은 이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사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노무자들에 대한 보상문제도 해결해주지 않고 있는 게 역사적 진실이다.

감독은 이런 야만적 역사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면 영화를 어떻게 구성해야 바람직할까? 실제로 류승완 감독도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하시마 탄광에 징용된 조선인 노무자들이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한 실상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한 제작 동기인 셈이다. 감독의 말대로 조선인들의 고통과 비극을 있는 그대로 전하겠다고 의도했다면, 기록영화, 다큐영화로 제작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또 오락영화라고 해서 동기와 그 목적을 살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기본적인 역사왜곡만 없다면 오락영화에서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표현하고 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감독의 의지나 말과 실제 영화의 성격과 장르는 달랐다. 기록영화나 다큐영화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사실과 해석에 빈틈이 없어야 할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소화하고 뒷받침하는 여러 구성적, 시각적 장치들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고증하고 매 장면마다 정확하게 나타나야 한다.

영화 초반부에 결혼하거나 취업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각지에서 악사, 성노예나 강제징용 노무자로 군함도로 가게 된 한 무리의 조선인들이 나오는데, 그들을 속인 것은 조선인(면장 등)이라고 돼 있다. 당시 조선인이 같은 동포를 속여 위안부나 정신대 등의 강제징용에 끌려 나가게 만든 예는 아주 극소수였고, 대다수는 일본군 헌병, 경찰, 지방 행정단위의 일본인 관리였기 때문에 이 역시 역사왜곡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군함도에 소년 노무자가 있었으며, 그 안에 조선인이 운영한 유곽이 있었는가? 또 그곳에 조선인 ‘위안부’도 존재했었던가? 당시 학대의 상징으로서 일본인들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문신을 뜬 경우도 실제는 흔치 않았거나 거의 없었던 일이었음에도 영화에는 버젓이 나온다.
 
영화 군함도에서는 착취자인 일본인에 저항하는 구도보다 피착취자인 조선인들끼리 필요 이상으로 격하게 대립하는 관계로 스토리를 진행시킨 비율이 훨씬 더 컸다. 특히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일제 시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무자들의 참상을 고발하겠다고 해놓고도 조선인 징용자들이 당한 형언불가의 고통과 참상에 대한 고발을 고갱이로 삼기보다는 그들의 탈출에 초점을 두다보니 자연스레 탈출 시 벌어진 피아간의 총격전이 지루하게 전개됐다.
 
그런가 하면 극중에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희화적인 장면을 설정하는 등 극중 인물들 간의 관계나 역할 설정을 보면 역사적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도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성공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큐영화로서 미비한 것임은 물론, 오락영화로서도 재미와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결례가 아니다. 조금 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 특히나 그로 인한 한국인의 반일정서에 편승한 상업적 동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묵과할 수 없는 역사왜곡은 또 있다. 영화에서는 군함도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무자들 400명이 집단으로 섬을 탈출해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시각에 모두 나가사끼(長崎) 앞바다 해상의 선상에 서서 원자폭탄 투하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을 보는 것으로 설정돼 나온다. 이게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필자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나 조선인 일본군 강제 "성노예"(잘못된 용어인 ‘일본군 위안부’ 명칭을 대신해 유엔에서 만든 공식 용어)들이 집단으로 탈출해 살아 돌아온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당연히 군함도에서도 조선인 노무자들이 1~2명의 소수라면 있었을 수 있을진 몰라도 수백 명이 집단으로 탈출한 사건은 없었다. 따라서 한 마디로 사실과 달리 조선인 노무자들을 섬에서 탈출시키는 건 역사왜곡이다.

더욱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끼에서 그랬듯이 원폭이 투하되면 반경 약 30km 이내 건물은 깡그리 날아가고 생명체란 생명체는 모두 재가 되듯이 피폭되는데, 탈출한 조선인 노무자들이 원폭 투하 후 버섯구름이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버섯구름과 섬광을 봤다면 그들은 모두 피폭이 됐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무신경하게도 그런 장면이 그대로 연출됐다. 물론 하나 같이 일본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노무자들의 염원 혹은 심사를 대변해주는 장면으로 감독이 만든 것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그것의 정도가 현실의 개연성과 너무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영화 군함도를 보는 내내 끝까지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외에도 또 있었다. 상식적으로 봐서 있을 수 없는 장면들이 너무 빈번하고 무리하게 연출한 결과 영화의 리얼리티(reallity)가 현저하게 반감된 데다 영화예술작품에서 용인될 정도의 개연성마저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몇 가지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영화 전반부에 조선인 소년 둘이 어두운 밤에 몰래 군함도를 탈출해 나무 조각에 의지해서 바다를 헤엄쳐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노무자들 가운데는 탈출을 생각하거나 실제 결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도 그렇지만 배로라면 몰라도 군함도를 탈출해 단지 널판자에 의지해 큰 섬인 큐슈로 살아나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 감독이 대담하게 이 상황을 연출시킨 것은 무리였다. 영화에서는 소년들의 탈출이 일제 측에게 발각, 체포돼 실패로 끝났지만 설령 두 소년이 무사히 헤엄쳐 나가사끼 항에까지 당도했다고 한들 당시 일본 측 관원에 잡힐 확률이 대단히 높았던 상황이라는 점을 알고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두 소년의 탈출 실패는 군함도 내 조선인들이 믿고 따랐던 윤학철(이경영 분)의 밀고 때문이었다는 게 영화 뒷부분에서 드러났다. 군함도는 탈출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는 점을 암시하는 복선을 깐 것이어서 두 소년의 탈출은 영화에서 등장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탈출에 성인이 아니라 왜 하필 소년들을 등장시켰으며, 실제라면 소년들이 광활한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의 군함도를 탈출하려고 마음먹을 엄두인들 났을까?
 
또 영화에서는 군함도에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미군 특수부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정보국)부대의 조선인 대원 박무영(송중기 분)을 투입시켰는데, 당시 역사적 상황을 봤을 때 이게 과연 개연성이 있는 일인지 의아스럽다. 박무영은 그 시절 OSS 지휘부로부터 조선인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는 윤학철을 구출해 중국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미군 OSS부대의 주된 임무는 일제 막바지 한반도에 진공하게 될 경우를 상정하고 김구 주석의 지도하에 있던 중국 충칭(重慶)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훈련시켜 한반도에 진입시키고자 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한반도가 아닌 군함도에 유폐돼 석탄을 캐고 있던 한 가공인물을 구출하기 위해 그 섬으로 공작원을 보낸다고? 이는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과도하게 자의적인 설정으로서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또 윤학철이 OSS대원 박무영에게 권총 두 발을 쏜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윤학철은 첫 발을 하복부에 쐈고, 두 번째는 쓰러진 박무영을 내려다보면서 쐈다. 그럼에도 박무영은 나중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그는 겨우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됐는데, 그는 불사조였던가?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조선인 노무자들이 밤에 실내에서 촛불을 들고 모두 섬을 탈출할 것인지 탈출 결행여부를 결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너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상황 설정이었다. 이 격론 끝에 탈출을 반대한 일부를 제외하고 조선인 노무자들 대부분이 탈출 대오에 나섰다. 이어서 시도한 그들의 집단탈출 과정에서 발각이 돼 일본군과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도 문제가 적지 않다. 영화 화면에는 쌍방 간의 전투가 지루하게 계속되는데 이 싸움으로 조선인은 물론, 일본군도 수 없이 많이 죽는 것으로 묘사됐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일본군 병사들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략 수 백 명은 더 돼 보였는데, 당시 군함도에 이처럼 최소 대대 병력 이상으로 보인 그 많은 일본군이 존재했던가?
 
더군다나 어린 딸과 함께 섬에 오게 된 악사 이강옥 역할을 맡아 열연한 주인공 황정민이 생존한 일본군에게 “소장도, 일본군 대장도 다 죽고 없으니 우리는 우리가 살던 곳으로 간다”고 고함 쳤더니 그들은 모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게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개연성에 토대를 둔 상황 설정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까지 나서 스스로 인내심을 시험했을 정도였던 까닭도 이 같은 왜곡 혹은 도가 넘은 자의적인 상황설정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소품과 스토리 전개방식에서도 당시의 현실상황, 혹은 극중 장면의 전후관계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자주 보였다. 소품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기능은 사람의 인체에 비유하면 마치 눈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눈썹은 없어도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사는 데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진 않지만 눈썹을 밀어버리면 어딘가 어색하고 뭔가 있어야 할 곳에 없어 허전하거나 이상하게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과 배우들의 복장, 성격, 신분 등등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소품들, 등장인물들이 뱉는 대사의 말투, 음악 등이 모두 사실에 부합하도록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점은 배우들의 일본어 대화에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몇 가지 발음의 오류가 현저하게 줄어든 점이었다. 특히 조선인들을 학대하는 야마다 역을 맡은 배우 김중희(33)가 구사한 일본어는 거의 일본인이 말하는 일본어처럼 들렸다.
 
영화 초입부에 1940년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끼(下關)를 오가던 정기여객선인 관부연락선의 내부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몇 장면 뒤 그 배를 타고 온 조선인들이 항구에 내린 뒤에 보인 관부연락선은 외양이 너무나 깨끗하고 호화로운 모습의 요즘 현대식 여객선처럼 나왔던 것도 전후관계가 맞지 않은 예다. 또 영화에서는 부실한 식사에 과도한 중노동을 한 노무자들 치고는 그들을 너무 근육질로 만들어놓았는데, 이것은 연출자가 치밀하지 못해 발생한 작은 흠이다. 게다가 서울사람으로 나온 이강옥이 서울 말씨를 쓰면서도 자기 딸에게는 자연스런 어투로 “이 가시나야”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 경우는 또 어떤가?
 
이처럼 극중에 무리하게 등장시킨 OSS대원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외딴 섬인 군함도에 잠입하게 된 과정이 모두 생략된 것이나, 생사가 걸려 있는 긴장상황에서 공기놀이를 하게 한다거나 하는 등 합리적 의심이나 고증 없이 무신경하게 연출된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내가 이 영화 제작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었더라면, 이런 저런 결말을 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은 영화였다.

 
결국 제작비로 220억 원이라는 거액이 든 이유는 딱 하나라고 추측된다. 군함도 세트장을 만들고 1급 배우의 캐스팅에 거의 다 갖다 부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다 홍보비까지 합치면 300억이나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초반에만 50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몰린 것은 영상미학에 대한 관객의 심미안적 호평이 그들을 극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제 만행의 역사에 대한 고발심리, 대리 복수심 등과 같은 정서가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영화 외적인 측면, 즉 대기업의 자본이 바탕이 된 광고의 힘도 작용됐을 것이다.
 
이 영화가 실제 극예술작품으로서 긍정적 가치가 있다면, 그건 한일 관계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일 것이다. 즉 당시 전시 중 강제 징용된 생존자나 그 유족들이 일본 미쯔비시(三菱) 중공업 등 당시 관련 일본기업들에게 소송을 제기해놓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자에게 흥행을 고려하지 말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강제징용 실화 영화’라는 문구만큼은 홍보자료에서 떼어 냈으면 좋겠다.
 
2017. 8. 2. 15:41
구파발 롯데몰 영화관에서 초고, 8월 말 보충
雲靜
 
*雲靜도 지난번에 '同學'(부제 1953 거제)이라는 영화 시나리오의 시놉시스를 한 편 써서 이에 대한 저작권 보호 등록을 저작권협회에다 해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