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지속과 변화 : 역사와 현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지속과 변화 : 역사와 현실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차 례
들어가는 말
Ⅰ. 중국의 한반도 인식의 틀, ‘脣亡齒寒’은 유효한가?
Ⅱ. 중국 수뇌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변천과 지속성
Ⅲ.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전략적 변화인가? 전술적 운용인가?
맺음말
들어가는 말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으로 약함) 역대 최고 지도자들은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해 왔으며, 이 지역에 대한 위기관리는 어떻게 해왔는가? 그리고 현재는 어떠한가? 이 내용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망라하고 있다. 이를 검토하는 것이 본고의 주제다.
상기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본고에서 검토할 ‘위기관리’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우선이다.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선 다양한 개념이 혼재되어 있어 위기관리를 어떤 측면에서, 어떠한 행위자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른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중국 최고 수뇌부가 취하는 자국의 안전을 위한 대응이라는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
위기(crisis)는 위협(threat), 불확실성(uncertainty), 긴급성(urgency)을 주요 요소로 하고, 특정 체계의 일반적인 발전과정에서 드러나는 혼란스러운 단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위기의 예방, 처치, 재건을 위한 위기관리는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정부기관 또는 거버넌스를 발휘하는 조직의 정치적, 행정적 활동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표하고 실행하는 공공정책들의 대응력 정도를 의미한다.
본고에서도 이 개념을 적용해 위기의 예방, 처치, 재건을 위한 위기관리를 정의한다. 즉 한반도에서 위기사태가 발생하거나 이곳과 관련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으로 약칭함) 수뇌부 및 중국 정부기관의 정치적, 행정적 활동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표하고 실행하는 공식적인 정책들의 대응력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군대 투입 또는 군사적 봉쇄와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중국지도부의 대만, 티베트 및 新疆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위기관리 형태와 달리 한반도에 대한 위기관리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대략 세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1. 위기발생의 예방 조치, 2. 남북한 간의 충돌 자제 유도, 3. 사후 화해 중재노력이 그것이다. 중국은 이 관점에서 위기의 정도를 치명적 위기, 중대한 위기, 엄중한 위기, 일반 위기 등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한다.
논의의 순서는 먼저 중국의 한반도 인식, 그에 대한 최고 지도부의 외교정책적 원칙과 변화를 역사적으로 살펴본 후 논의의 초점을 현재 중국이 보이고 있는 대북정책 변화의 성격으로 이동시켜 보기로 한다.
이유는 사실상 중국의 한반도 위기관리란 중요도에서 무력도발, 핵무기 개발, 보유 및 사용 등 북한이 안고 있는 위협요소에 대한 관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習近平이 중공 최고 수뇌로 등장한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에서 변화의 징후가 보이고 있는데, 그에 대한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Ⅰ. 중국의 대한반도 인식의 틀, ‘脣亡齒寒’은 유효한가?
안보 면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이른바 ‘脣亡齒寒’ 관점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를 바라다 본 중국인의 지정적 인식의 틀이었다. 여기에는 중국과 그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설정된 핵심지대, 변경지대, 완충지대, 전략적 변경지대의 지역구분과 함께 한반도와의 지정적 관계가 제시돼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지도1】과【지도2】에 표시해놓았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순망치한의 인식은 毛澤東 시대는 물론, 그 뒤 중국지도자들에게도 전승돼 온 지정적 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틀은 변화했는가? 변화했다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변화했을까? 결론을 말하면 세기가 바뀐 지금도 한반도에 대해서는
【지도1】중국의 지정적 지형도
【지도2】중국과 한반도의 지정적 지형도
‘脣亡齒寒’개념이 여전히 유효한 지정학적 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인식은 무기와 전술이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화하고 발달한 오늘날에도 본질적으로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주장은 미국-일본-한국 vs 중국-러시아-북한 두 진영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중국지도부가 북한 유사시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즉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면 그것은 중국지도부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핵심이익이 미국에게 침해당하게 된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인식과 안보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한반도, 특히 북한은 중국에게 완충지대(buffer zone) 기능을 가진 지역으로서 지속성이 있는 것이다. 이하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현실적 논거들이다.
첫째, 중국지도부는 역사적 관점에서 일본이 여러 차례 한반도를 거쳐 중국으로 진출하고자 했는데, 16세기 말의 임진왜란, 19세기 말의 청일전쟁, 20세기 초두의 러일전쟁이 그래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중국지도자들은 집단적으로 결국 일제시기 한반도가 일본에게 침탈당함에 따라 중국의 동북지역이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둘째, 중국지도부는 한반도를 자국이 해양으로 진출하게 될 때 거쳐야 할 21세기 동북아 해상교통로의 요지라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전세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켜줄 전략적 중요 해협을 16개로 선정했는데, 한반도와 대한해협이 그 가운데 하나로 지정돼 미 해군이 반드시 장악하고 있어야 하는 곳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중국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셋째, 중국지도부는 현재도 한반도를 미국과 일본세력이 들어올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할 지역으로 보고 완충지대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는 아시아의 발칸반도이자 ‘동아시의 팔레스타인’이라는 평가에 중국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를 러시아, 중국,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한 미군의 상존, 미일동맹 세력으로 중국 포위를 지향하는 미국의 의지, 한․미․일 3각 체제의 궁극적 목적 등이 이 같은 중국지도부의 예단을 정당화 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한반도를 영향권 내에 둘 경우 남중국해 이외에 태평양해역으로의 해양 진출이 용이한 지역을 확보하게 되고, 향후 점고될 동아시아에서의 중미 경쟁과 격화일로의 중일 경쟁을 감안하면 한반도는 그만큼 중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자국의 핵심이익의 범위를 대만, 남중국해, 티베트 등의 영토보전, 공산당 일당 영도체제의 절대성 및 지속적 유지, 경제성장의 지속에 국한했다고 해서 한반도가 핵심이익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는 중국 전략외교의 특징을 적용시키는 주된 고려대상이다. 중국 전략외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목표성, (2) 계획성, (3) 광범위한 사고와 행동, (4) 장기성, 장기적인 시각의 사고와 행동, (5) 종합적인 사고와 행동, (6) 전략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을 고려한다. 이는 그만큼 한반도를 용의주도하게 주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증거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Ⅱ. 중국 수뇌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변천과 지속성
1949년 10월 중국 건국 이래 중국공산당 당수이자 국가지도자로서는 毛澤東, 鄧小平, 江澤民, 胡錦濤를 거쳐 2014년 6월 현재 제5세대 지도자인 習近平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목표에서 본질적인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은 鄧小平 시대부터였다. 그 뒤로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상태다. 각 지도자별 국가목표와 대한반도 정책의 상호 연관성을 요점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毛澤東 시대
毛澤東 통치시대의 국가목표 가운데 핵심적 목표이자 가치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가 “독립, 민주, 평화통일, 부강한 신중국”건설이었다. 毛澤東은 동맹국인 소련뿐만 아니라 모든 평화애호 자유국가들과 연대해 제국주의국가의 전쟁도발 음모를 분쇄해 지속적인 세계평화를 쟁취하고, 중국내 절대 다수 인민의 힘으로 “독립, 민주, 평화통일, 부강한 신중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둘째는 이념적 목표였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현, 공산당 일당 독재 유지, 사회주의건설과 관련해 계급투쟁, 영구혁명, 신민주주의 이념을 실행하는 것 등이었다. 필요할 경우 대외 전쟁도 불사한다고 했다.
셋째는 이념과 별개로 외국과 평화공존 및 상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毛澤東은 중국이 매우 가난하고 낙후된 상태에 있지만 강대국들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가 몇 십 년만 지속되면 근대화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선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국외시장과도 거래를 해야 하는데, 중국은 고립되길 바라지 않으며, 소련은 물론 자신들이 제국주의세력이라고 적대시해온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도 교류, 통상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바 있다.
그래서 중국은 소련 같은 사회주의국가들과 평화공존도 가능하지만 정치제도가 다른 영국, 미국 같은 자본주의국가들과도 그들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원하며, 또 각자 경제건설을 위해 통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기본조건만 인정한다면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으며, 상호 협력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毛澤東은 미국의 봉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군사적, 외교적 대응임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한 평화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이른바 ‘소련일변도’ 정책을 취했다. 뒤이은 동구권 공산국가들과의 교류에 이어서 외교적 돌파구로 중국 주변국들을 대상으로 한 선린외교관계와 평화공존, 대등관계를 모색했다.
중국 주변국들 가운데 확고한 우호세력인 소련, 북한 이외에 중국이 접근을 시도한 국가로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또한 가까이 있거나 혹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이었다.
毛澤東이 이 국가들을 친중 세력으로 유도하고자 그들에게 내세운 명분은 대국과 소국 간에 존재한 불평등을 제거한 대등한 관계를 지향한 소위 ‘평화공존 5원칙’(주권과 영토보존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이었다. 그는 이를 중국이 장기간 견지할 외교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소국들과도 대등한 국가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국은 봉건국가처럼 소국을 스승이 제자 대하듯이 해선 안 되고, 타국에 군대기지를 건설해서도 안 되며, 군사적, 정치적 조건이 달린 원조 혹은 차관공여 그리고 상대국의 종교기관을 통한 간첩활동 등으로 내정간섭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국가 간의 평등, 대등 관계, 평화공존, 내정불간섭은 중국의 역대 지도부가 취하게 된 한반도 및 대북정책의 원칙이 됐다.
毛澤東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1950년 10월 이후부터 미국이 주도한 서방세계의 봉쇄에 직면했다. 동시에 냉전체제 하에서 중국, 남북한 사이의 3자 관계가 결정된 가운데 毛澤東은 북한에 대해선 전력으로 지원, 지지했지만 남한에 대해선 전면적 적대정책을 취했다.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분단은 미국과 소련이 전개한 냉전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毛澤東은 세계전략에 관한 자신의 구상에서 한국을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제1중간지대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해놓고도 “친구”, 즉 우방국으로 인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종속국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毛澤東은 제국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패권국인 미국과 소련 간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라고 판단하는 가운데 한국에 대해서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적대국가로 취급했다. 한국 역시 중국을 한반도를 침략해 남북통일을 가로 막은 공산 침략국가로 평가함에 따라 양국 교류는 40년 이상 단절됐다.
2. 鄧小平 시대
중국의 국가목표가 毛澤東 시대의 이념중심에서 실사구시의 실용적 경제개발과 개혁개방으로 전환된 것은 鄧小平 시대에 들어온 뒤부터였다. 이른바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공 제11대 3중전회(1978년 11~12월)에서였다.
이 대회에서 鄧小平은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은” 사회주의사회에 적용될 수 없는 잘못된 “좌경”방침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당과 국가의 관료적인 업무중심을 경제건설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건설’을 국가발전 방향으로 삼을 것을 제창했으며, “문화대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영구혁명”이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개혁개방 후부터 중국지도부는 줄곧 국가역량의 총합인 종합국력의 증강, 국가의 부강, 민족의 번영, 경제력, 국방군사력, 민족적 응집력 제고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이의 실현이 국가전략의 목표였다.
鄧小平의 새로운 노선은 국가 경제발전에 치중된 것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개혁개방 후 세계정세에 대한 중공지도부의 판단 또한 毛澤東 시대의 국가전략목표를 계승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바뀌기 시작했다. 권력을 장악한 鄧小平이 국내 정치개혁, 중국식 사회주의경제 건설, 대외개방 정책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이상 기존의 대외노선에서 약간의 조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중공의 외교노선 변화에 관한 개괄적인 개념이 제시된 것은 1979년 6월 중국국무원 총리 華國鋒이 제5계 전국인민대표대회 제2차 대회에서 행한 ‘정부공작보고’에서였다.
여기에서 중공지도부는 미소 패권반대와 세계평화를 강조했다. 또한 일관되게 ‘평화외교정책’ 노선을 걸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견지할 것이며, 毛澤東의 ‘3개 세계론’에 근거해 세계의 모든 연합 가능한 세력과 연합해 공동으로 패권주의에 반대함과 동시에 “평화공존 5원칙”으로 각국과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중공의 국가목표는 鄧小平이 중공 중앙간부회의에서 제시한대로 세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대외관계에서 패권주의 반대, 세계평화 수호, 둘째, 대만을 복귀시켜 국가통일 달성, 셋째, 경제건설을 통한 “4개 현대화 건설”이었다.
전자의 두 가지는 毛澤東의 유산이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셋째의 “4개 현대화 건설”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구혁명 대신 경제건설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그는 특히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의 ‘4개 현대화’를 이루기 위해선 대외정책에서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鄧小平 집권 시기 중국외교에서 변화가 나타난 것은 그가 독립자주원칙을 천명한 1982년부터였다. 1982년 이전은 중국이 미국 등 선진국들 및 제3세계 국가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제휴를 맺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때부터 외교에서 중국은 더 이상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지 않고 등거리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대외정책이 그 이전 毛澤東 시대의 대결 혹은 전쟁까지 불사한 대외전략에서 탈피해 평화지향적으로 전환되면서 당내 노선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982년 9월 중공 제12차 대표대회에서였다.
이 대회에서 鄧小平은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진리”와 중국의 구체적 현실을 결합해 ‘중국적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역사의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인민은 여타 국가, 인민과의 우의와 협력을 아끼지 말고 호혜 평등의 토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대외교류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대외정책노선 면에선 鄧小平은 반패권주의, 세계평화 수호, 제3세계 국가들과 단결하고 협력을 강화한다는 기존 정책을 계승했다. 그는 이러한 대외정책이 일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이 정책은 중공 대외정책의 원칙이 됐다. 이것은 같은 중공 제12대에서 胡耀邦이 정식으로 “자주독립”외교정책을 언급함으로써 정식화 됐으며, 중공의 외교노선으로 결정됐다.
胡耀邦은 보고에서 평화공존5원칙을 사회주의국가들을 포함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는 毛澤東의 대외노선을 이어 받아 발전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중국이 毛澤東 시대의 자주독립과 평화공존5원칙을 대외관계의 원칙으로 지속시킨 것은 국가경제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鄧小平이 주장한 중국의 가장 우선적인 임무는 20세기말까지 현대화를 위한 초보적인 목표, 즉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이른바 ‘小康’사회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향후 30년에서 50년 안으로 발전된 국가의 수준에 근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국제환경이 필요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이 계획은 바로 날아가 버리게 돼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鄧小平은 국가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대외관계에서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강화해 미국이 제기하는 평화공세를 차단하며, 소련의 군사위협을 경감시키려는 등 몇 가지 행동을 취했다.
첫째, 중간범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 각국과의 우호관계를 개선해 경제 및 무역 거래를 넓히고, 둘째, 주변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로운 주변환경을 조성해 개혁개방정책을 순조롭게 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 주변국들과 외교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소련 해체 후의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함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기존에 비해 급격하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당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三非三不願”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으로 요약된다. “三非”는 한반도비핵화, 남북한간 비전쟁, 북한장권의 비붕괴이고, “三不願”은 한반도가 미국과 밀착하는 것, 한반도가 중국과 경쟁관계에 들어가는 것, 남북한이 민족주의로 뭉치는 것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혈맹의 동맹국으로서 이념적, 외교적 관계를 돈독히 유지한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중공 당내 지도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선 정치, 외교, 군사관계는 접어두고 경제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鄧小平은 이미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수교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한중 수교 시 한반도가 영구분단 될 것이라는 이유로 남북 쌍방의 유엔가입을 반대해온 김일성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것이었다.
총리급 지도자를 보내 김일성을 설득하기로 한 鄧小平은 1991년 5월 李鵬 총리를 북한에 보내 남한이 유엔총회 회기 중 유엔가입 의사를 표시할 경우 중국은 재차 반대하기 곤란하며,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뒤에는 북한이 가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연형묵, 김일성 등 북한 지도부를 설득했다.
결국 중국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한중 수교에 대해 더 이상 시비하지 않도록 만드는데에 성공했는데, 이는 한중관계와 남북관계의 개선에 鄧小平이 기여한 작지 않은 공로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수교와 함께 선린우호관계로 교류를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와 정치(군사 및 안보)와 분리시킨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3. 江澤民 시대
江澤民 통치시대의 국가목표는 鄧小平시대 국가목표의 연장이었다. 江澤民은 鄧小平에게 발탁돼 최고 지도자로 육성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鄧小平의 의지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鄧小平의 통치이념과 국가목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지속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경제발전의 지속과 개혁개방의 심화가 그대로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외교 분야에서도 1980년대 중국의 외교방침으로 자리 잡은 자주독립 원칙과 평화공존5원칙이 중국 대외관계의 목표로 계승됐다.
이러한 외교기조는 1990년대를 통틀어 줄곧 지속됐다. 1992년 9월 江澤民이 재확인한 자주독립 원칙과 평화공존5원칙은 제3세계 국가들과의 단결, 대외개방, 반패권주의와 함께 이 시기 중국외교정책의 기본노선이었다.
이어서 그 다음 달 10월 江澤民은 평화로운 국제환경을 만들면 새로운 세계대전을 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고 세계평화와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국 외교정책의 기본목표라고 밝히면서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세력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지도부에게 평화와 발전이 금후 국가전략의 양대 화두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정책의 변화가 이뤄졌으며, 앞서 살펴본 한중 수교는 이러한 내외 정세의 순기류를 만난 덕분에 성사된 것이었다.
한중 수교체결 다음 달인 1992년 9월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과 중국지도부가 합의한 공동코뮤니케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의 개선 등이 반영됐다.
이 시점 이후부터 중국은 남북한 간의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한반도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을 한반도 위기관리의 원칙으로 삼았다.
1994년 3월 江澤民은 북경을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렇게 언급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없으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는 안정, 번영 된다”는 그의 인식은 곧 “한반도가 안정되면 중국의 동북은 안정 된다”고 인식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었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이면에는 이를 강조함으로써 얻고자 한 몇 가지 동기가 존재했다.
첫째, 북한의 일방적인 지지 요구를 피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북한을 설득, 권고하고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하는 한국정부의 요구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한반도문제가 지나치게 국제화 돼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개입이 확대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셋째, 구체적인 현안에서 중국이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거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15일 중공 당대회에서 江澤民이 표명한 외교방침은 鄧小平의 대외전략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199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채택된 문건에서도 鄧小平의 기본전략이 거의 그대로 답습됐다.
江澤民은 21세기 중국의 3대 국가과제는 현대화건설의 계속 추진, 중국통일의 완성, 세계평화의 수호 및 공동발전의 촉진이라고 했다.
이 주장은 중국의 대외환경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인식이 잘 나타나 있는 중국 군사과학원의 ‘2000-2001년 전략평가’에서도 확인된다. 즉 중국의 번영과 안정은 세계의 번영과 안정에 공헌할 것이며, 중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는 평화적인 국제환경과 양호한 주변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화적인 국제환경의 수호, 특히 주변 국제안보환경의 안정은 중국의 안보이익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인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현대화 건설의 계속적 추진과 중국통일 완성을 위해 江澤民은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韜光養晦, 有所作爲’를 중국 외교전략의 기조로 설정했다.(冷靜觀察, 穩住陣脚, 沈著應付, 韜光養晦, 有所作爲)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마찰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江澤民 시기의 ‘도광양회’ 외교전략 기조는 2000년대 이후 도래한 동북아지역의 신구 질서 전환기를 맞아 기존 미국, 러시아, 일본이 주도해 온 질서가 또 다시 반복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중공지도부의 인식에 따라 조정됐다.
중공지도부의 이 노선은 朱鎔基 총리가 2002년 3월 초 개막된 제9계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차 회의에서 행한 발언으로 나타났다. 즉 국유기업개혁, 경제공동발전 등 경제체질 개혁의 심화, 서부대개발, 국내시장의 내수 진작, 시장경제 관리 등 기존 경제정책을 강화하는데에 부합되도록 외교적으로도 독립, 자주, 평화외교를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중국이 역내 질서 재편의 관련자로 새롭게 참여해 자국의 안보, 정치, 경제적 목표실현에 이로운 국제환경을 만들려는 의지에서 기존 평화공존5원칙 하에 선진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주변국들과의 선린외교 심화, 세계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한반도 및 북한에 대한 외교방침은 바뀌지 않았고, 기존 노선의 연장선에 있었다. 주변국과의 선린외교를 심화한다고 했지만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북한과는 기존 혈맹관계를 유지하는 등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는 기존의 선린우호관계에서 협력동반자관계로 외교관계의 등급을 올려 경제교류의 확대를 지속하기로 했다. 중국정부가 한국과의 군사, 안보 관계에서는 별반 진전을 시키지 않았던 이유가 이 방침 때문이었다.
4. 胡錦濤 시대
2002년 11월 중공 제16대 전국대표대회에서 새로운 중공지도자로 결정된 胡錦濤시대의 국가목표는 전임자의 그것을 계승하는 범위 내에 있었다. 이는 2011년 9월 중국국무원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발표한 ‘중국의 화평발전’백서에 잘 나타나 있다.
즉 1) 국가 주권 유지, 2) 국가 안전 보장, 3) 영토 완정, 4) 대만과의 국가 통일, 5) 중국의 헌법을 확립하는 국가정치제도와 사회대국의 안정, 6) 경제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기초의 보장이었다. 축약해서 말하면 한 마디로 江澤民이 해왔던 대로 안정된 국제환경 속에서 경제성장을 지속하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보면 胡錦濤 정권의 외교정책 기조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취해온 대외 인식과 외교노선의 연장선이었다. 즉 “평화, 발전, 협력을 기치로 독립, 자주, 평화적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세계 각국과의 우호협력을 적극 도모한다”는 점이 강조됐던 것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외교정책 면에서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점이 눈에 띈다. 胡錦濤가 새로운 국가지도자로 출발하면서 중국외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 江澤民시대에 제기된 韜光養晦에서 벗어나 ‘유소작위(有所作爲)’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새로운 대외정책으로 채택된 것이다. 유소작위란 기존의 노선에 따라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개입해야 할 사안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한반도 정책 및 위기관리와 관련해서도 작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에 대한 영향력과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 胡錦濤 시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 기조였다.
특히 그동안 인정해온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정상적 국가간의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한반도 통일의 주체에 대해서도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중국의 이익과 입장이 최대한 많이 반영된다면 한국이 통일을 주도해도 굳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한 걸음 진전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그 동안 중국의 대한반도 위기관리의 최대 목표였던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 북핵 불인정 및 확산 반대와 저지에서 한중 수교 이래 견지돼온 중국의 한반도정책 주된 방향인 이른바 “三非三不願”이 ‘전쟁방지(不戰), 동란방지(不亂), 비핵화(無核)’로 이행됐다. 요컨대 중국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한반도의 안정이 비핵화 보다 우선시된 것이다. 이 시기는 胡錦濤 주석이 소조장이 된 ‘조선반도 소조’가 결성돼 한 달 간 내부 토론 끝에 그간의 노선을 조정한 2009년 7~8월 시점이었다.
이 때 중공은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왔던 중국외교부 노선을 폐기하고 북한체제의 안정화와 중북 협력을 우선시 해온 중공 중앙대외연락부의 손을 들어줬다. 중공지도부가 한반도에 동란이나 전쟁이 발생하면 당장 북한 주민들이 대거 중국 동북지역으로 유입하게 돼 이 지역의 안보이익이 침해당할 것으로 판단하는 가운데 이 지역의 안보불안 및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공지도부는 북한이 핵을 보유할 경우 미국이 선제공격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제어기술이 좋지 않아 핵이 유출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북핵문제는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상황을 관리하면서 해결을 모색하자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또한 6자회담은 북한비핵화의 기제이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관리의 기제로도 활용했다. 논의를 종합하면 북한의 비핵화 보다 북한정권의 안정에 더 많은 정책적 비중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胡錦濤 정권이 대북정책 노선을 수정한 이유는 북한체제의 불안정을 역내 평화와 안정적 질서가 깨질 수 있는 최대 요인으로 보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위기관리에 치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북한이 일으키는 무력도발에는 분명히 반대하지만 동시에 국제사회가 지나치게 대북제재를 가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 동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시에 중국이 보여준 ‘안정 강조’에서 드러났지만, 중국은 북한을 포용함으로써 더 이상의 전란확대를 방지 혹은 사전 제어하려는 쪽으로 관리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외교장관들에게 연이은 전화통화로 한반도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북한 개입을 미연에 차단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했다.
또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시 胡錦濤가 중공 주요 지도부 요원들을 대동하고 북경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조문한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중국은 김정은이 어린 나이에 북한의 최고 ‘존엄’으로 올라섬에 따라 3대 세습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방식으로 북한 내에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혼란을 예방하거나 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지도부가 그에 대한 지지를 표한 것은 김정은 개인에 대한 지지라고 하기 보다는 북한 체제에 대한 지지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이다.
5. 習近平 시대
2013년 3월에 출범한 習近平 정권은 이로부터 10년 간 중국을 이끌게 돼 있다. 習近平 주석은 전임 胡錦濤의 대외정책을 이어 받아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긴요한 마지막 10년을 경제발전과 국내 현안을 해결하는 데 치중하기 위해 평화와 안정을 중시할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신형 대국관계’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인데, 이 방침에 따라 향후 중국은 중미협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한 안정 유지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 행사라는 측면에서 대외관계나 한반도 및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지금까지 행해온 기존 대응보다 더 높은 강도의 대북 압박이나 대응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習近平 정권은 한국과의 관계를 확대, 심화해가면서 북핵문제는 6자회담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는 이명박 정부시의 전면적 협력관계동반자관계에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지금부터 이 사실을 포함해 현 중국정부의 한반도 정책, 특히 대북정책의 변화에 관한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 보겠다.
6. 중국의 한반도 위기관리의 지속성
1)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전략적 원칙
胡錦濤 시대부터 세계가 중국을 G2라고 평가하기 시작했지만 중국 자신은 발전도상국에 불과하다면서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는데 치중해왔다. 중국은 2050년을 국가현대화 목표의 달성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2020년까지는 국내 발전에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기’(戰略的機遇期)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중국 주변, 특히 한반도의 안보환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의 기본입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통한 동북아 역내의 안전 확보,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 그리고 위기의 악화를 방지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평화와 안정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은 중국지도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중공지도부는 국제질서의 다극화, 국제관계의 민주화, 새로운 안보관의 수립, 국가의 대소 강약, 이념 및 체제의 상이를 뛰어 넘어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求同存異’, 즉 의견과 입장이 다른 것은 내려놓고 우선 동일한 부분은 같이 추구하자는 점을 강조한다.
세기가 바뀐 현재에도 중국에게는 한반도의 평화적 안정상태가 지속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차적 목표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동북아 지역 전체의 안정과 평화유지를 추구하려는 게 중국지도부의 일관된 입장이자 원칙이다. 특히 2009년 7월부터 이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달성 보다 위에 놓여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은 6자회담에서 성사시키며, 위기악화 방지를 위해 남북통일은 당사자해결을 주장함으로써 외견상 중립을 표명하고 있다.
2)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중시하는 점
현재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중시하는 부분은 경제적 호혜, 정치적 선린, 안보적 협력이다. 경제적 호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雙嬴) 개념으로서 양국의 경제적 보완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국은 최대 무역국이자 수출국이다. 중국에게도 한국은 미국, 일본, EU 다음으로 중요한 무역상대국이다. 한중 양국의 경제협력 밀접도는 해마다 신장하는 교역량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역액은 수교 직전인 1991년에 약 44억 달러, 1992년 한중 수교 시 5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불과 20년이 지난 2012년 2,151억 달러로 늘어나 약 40배 이상 증가했다.
2014년 3월 현재에도 약 1,980억 달러로 2년 전 보다 약간 하락돼 있지만 이 폭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적 호혜협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이와 연동돼 여타 분야에서의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경제적 호혜협력 수준을 넘어 정치, 외교, 안보적 협력을 지향하고 있는 점을 보여주는 예는 한중 수교 이래 양국이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협력이 이뤄져 왔다는 사실이다.
한중수교 시 선린우호관계에서 출발한 양국관계는 1998년에 이르러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동반자관계란 상호공동 이익을 전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협상과 타협을 통한 협력 추구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동반자개념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관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국가 간 ‘평등성’의 원칙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일반 수교국 관계나 ‘우호협력’적 국제관계보다 진일보한 관계이며, 이론적으로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관계를 벗어나 약소국을 포함하는 좀 더 포용적인 개념이다. 동시에 중국이 전통적으로 즐겨 채택했던 원교근공(遠郊近功) 전략을 포기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내포돼 있다.
중국이 동반자관계 개념을 수용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냉전체제가 종결되고, 새로운 국제정세 인식을 담은 ‘신안보관’의 등장과 궤를 같이 했다. 이 개념은 友敵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우선시하고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냉전시대의 국제관계에서 벗어나 탈냉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국제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 하는 고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대의 한중 협력동반자관계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양국 관계는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됐다. 당시 이는 중국이 지각변동을 하고 있던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응해 한국과의 관계를 잘 운용하는 것이 향후 이 지역과 세계질서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동북아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이란 곧 미일관계의 밀착과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체제의 결속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김흥규가 지적했듯이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협력동반자관계로 높인 것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강화 정책에 즉응(counter-balancing)하는 성격도 존재했다.
향후 북핵과 북한문제의 해결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리고 북한의 대미접근에 대한 전략적 보험(hedging)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과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서 두 나라 정상이 양국의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에서 단계를 높이기로 함에 따라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까지 격상된 상태다. 금년 3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習近平 주석은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한층 더 내실화 하는 쪽으로 발전시켜 가기로 다시 한 번 의견을 모았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習近平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확실히 반대”하고, “중국의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중국이 지금까지 한국과 여러 번에 걸쳐 협력관계의 단계를 높여온 이유는 세 가지 배경과 조건이 서로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1990년 후반기 이래 국제관계에서 강대국과 강대국, 대국과 소국 간 협력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동반자관계의 체결이 빈번해진 시대적 배경이다. 둘째는 중국에게 중요한 교역국가라는 한국의 기술력과 경제력이다. 셋째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환언하면, 2000년대에 들어와 중국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수용한 것은 한국을 “전략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당사자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3)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시하는 점
냉전 시기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을 때 중국은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려는 의도에서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의 입장을 비호해왔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그 전과 동일하게 북한을 안정시키기 위한 북한지지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은 남북한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알선, 중재 역할을 해왔다고 자평한다. 북한에 대해서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같이 싸운 혈맹관계에 기반을 둔 脣亡齒寒의 지정적 이익,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념적 동지관계에 토대를 둔 ‘특수관계’를 지속해왔다. 또 두 나라의 우호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공과 중국정부의 변함없는 확고한 방침이라고 표현해왔다.
중국과 북한은 江澤民 시대까지는 그런대로 양당, 양국, 양군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약화되지 않았지만 習近平 시대 이후로는 이 성격이 현저하게 약화했다.
이유로는 공산혁명과 한국전쟁에서 같이 싸웠던 혈맹적 동지적 관계의 지도층 인사들의 사망으로 인한 인적 유대의 약화, 경제노선의 상이, 핵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들 수 있다.
현재 중국에게 북한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국가안보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아 중국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일은 별반 없다고 봐도 된다. 경제적 이익도 북한 내 광물개발, 나진항, 선봉항 개발, 두만강 하구의 개발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이유는 과거부터 북한과의 경제교류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다 중국이 북한에 경제를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1951년 중북은 무역의정서를 체결한 뒤부터 경제무역관계가 발전해가는 가운데 197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협력 형태가 대북 원조에서 점차 무역합작으로 바뀌게 됐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대북 무역의 주요 지역 창구기능을 해온 吉林省과 북한 사이에 무역이 중지된 때도 있어 북중 무역액은 1978년 이래 줄곧 2억 달러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한러 수교의 여파로 1992년 북한과 러시아 간의 무역거래가 감소하자 북중간 무역액이 6억9,600만 달러로 증가함으로써 북한에게 중국은 제2위의 무역상대국에서 첫 번째 무역상대국으로 올라섰다. 1993년에는 9억 달러로 무역총액이 전년 대비 29.2%가 상승했다. 하지만 그 뒤로 상승세는 주춤해 중한 경제교류 규모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상태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력 도발억제, 북한체제의 안정 및 유지, 비핵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난제는 무엇보다 북한정권에 대한 통제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정세의 안정을 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생각만큼 여의치 않다.
중국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는 북한 수뇌부가 중국의 통제를 받지 않고 권력을 한 사람의 ‘최고 존엄’이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바람과 달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 양국관계의 현 주소를 상징한다. 특히 북핵문제는 중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찬동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의 핵심이익이자 가치인 안전보장을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기개발로 파급돼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파괴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핵문제가 중국의 통제 범위 안에 있지 않다는데 있다. 중국은 북핵문제에 관해 초기 한 동안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북한이 중국의 권유에 따라 핵안전협정에 가입한 것이 한 예다. 당시 錢其琛 외교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정권의 최고위층에게 핵안전협정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득한 결실이었다. 중국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 한반도의 남이든 북이든 핵이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조용히 설득을 계속할 것이며, 북한은 머지않아 핵사찰 문제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중국측은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너무 조급하게, 또 너무 강력하게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북한도 체면과 명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끌어 내 체제를 보장 받고, 동시에 한미 군사합동훈련을 중지시키며, 한국에 배치돼 있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제거하려는 것이 진정한 목적과 의도라고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 상황임을 활용해 미국과 직접 대화를 통해 체제를 보장받고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보려는 의도에서 위기를 증폭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하는 북한의 노력에 대해서 북한이 이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핵 억제력”의 보유를 통해 국가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의 생각에 대해 찬성하지 않지만 일정 수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생존 및 발전문제에서 곤란을 겪으면 비교적 많은 “동정”을 보내면서 선의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북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과 연료 및 물자 제공을 통해 군사도발 방지, 남북대화 지지, 핵확산을 제지하려고 관리해왔다. 중국이 장기간 식량과 연료를 지원해준 것도 북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누구나 동의하듯이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및 보유의 저지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중국의 희망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만 것이다. 특히 김정은 등장 후 북한은 핵무기화를 북한의 헌법조항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제3차 핵실험에서 진전된 기술력을 과시하자 중국지도부는 북한의 핵무기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게 됐다. 중국은 북핵이 아시아 전체 지역에 예측 불가능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는 북한핵무기가 여타 지역으로 확산돼 미국이 주도해온 핵확산방지를 깨트릴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약간의 이해를 같이 한다.
이 점에서는 중국은 북핵문제에서 미국 및 관련 국가와 공동이익을 가지고 있다. 즉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개발과 핵무기보유를 반대하고 한반도의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게는 미국, 한국, 일본, 러시아와 견해를 달리 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즉 중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고 해서 국가안전이 보장된다고는 보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자국 안보를 위한 정당한 노력으로 여기면서도 핵무기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Ⅲ. 중국의 대북 정책변화, 전략적 변화인가? 전술적 운용인가?
習近平체제 출범 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핵무기개발 불용인 의지를 표명하는 등 중국의 대북정책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 내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習近平의 대북 수단과 강도에 기대를 가지게 만든 현상인데, 이를 알리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중국은 대외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강대국과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먼저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고 시도하기 시작됐다. 2011년 1월 胡錦濤 주석이 방미해서 상호존중, 호혜 공영의 협력동반자관계를 중미관계의 비전으로 제시한데 이어 2012년 2월 習近平 국가부주석도 미국을 방문해 이를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해 5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중미 경제전략대화에서 이른바 ‘신형 대국관계’가 대외전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즉 중국의 대외전략이 더 이상 피동적 입장에 머물러 있지 않고 대외문제에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 전략이 출현한 배경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일본과의 영토 및 과거사문제 그리고 G2로서 점증하는 자신감이 서로 연동된 결과다. 특히 習近平 정권은 중미관계에서 대결을 지양하고 상호협력을 증강시켜 가려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3년 6월 7~8일 사이 개최된 중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상호존중과 협력으로 윈-윈(相互共嬴), 중미 양국 국민과 세계인의 행복조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북핵문제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習近平 주석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 개발도 용인하지 않는다고 인식을 같이 했다. 이러한 공동 인식은 올해 3월 하순 중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과 이를 맞이한 習近平 주석 간에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 중미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북한의 핵보유 불인정과 핵무기 개발 불용인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진전된 견해를 보인 북핵 불용인 원칙이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재천명된 점이다.
3. 2012년 12월 북한이 은하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데다 작년 2월에도 제3차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중국지도부 내에서 대북정책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북한을 전략적인 부담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예컨대 上海 復旦대학의 沈丁立 교수는 미국 외교전문지『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정부는 북한 지원을 중단해야 된다는 주장을 폈다. 또 얼마 전 중공당교 기관지『學習時報』부편집장 직에서 물러난 鄧聿文도 2013년 2월 27일자 영국『Financial Times』에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을 계기로 중국은 한국이 한반도 통일을 주도하게 하거나 북한의 정권교체를 통해 핵을 포기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논조와 주장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당이 철저하게 검열하거나 차단하고 있는 중국정치체제의 특성상 모두 간접적으로 중국정부의 의사를 암시하거나 대변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 習近平 체제 등장 이후 중국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기존의 특수관계에서 다루지 않고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 간의 관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 내 많은 관료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 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중국은 대북문제에서 단순 상황관리로부터 주도권을 장악해 당과 당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 간의 이른바 정상적 관계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국가체제는 과거 모든 공산주의국가들의 정치체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당 국가’(party state)체제다. 따라서 집권당인 중공의 지시와 감독하에 놓여 있는 정부의 모든 기관은 당 우위의 원칙하에 당의 정책을 시행하고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시행기관 혹은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정부기관은 중공에 정책적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권위를 가질 뿐 실질적인 권력은 중공의 손안에 놓여있다. 북한도 중국과 유사한 정치체제인데, 그동안 중국과 북한의 두 당 차원에서 이뤄져 온 교류가 정부 차원으로 격하된다는 것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변화임에 틀림없다.
5.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북한지도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한 사실들을 들 수 있다. 중국정부는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제2094호 가운데 대부분의 내용을 북한이 준수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격상시키는데 동의했다. 習近平 주석도 2013년 4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개최된 ‘보아오(博鰲)포럼’에서 “이기적 목적을 위해 주변지역과 세계를 혼돈상황에 몰아넣도록 놓아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대북 경고메시지를 발했다. 이는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경고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나아가 중국정부는 중국의 대형 은행들에게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북한 조선무역은행과의 금융거래를 못하도록 중단시켰다.
6. 習近平 주석은 남한 주도의 통일에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에게 “중국이 급변사태 시 북한을 동북4성으로 편입하려는 계획이 있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習近平이 그럴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기의 변화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략은 본질적으로 변경 된 게 아니라 전술적 임기응변으로서 외양적으로 변화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習近平 지도체제 하의 대한반도 전략의 기본 목표는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는 전임 지도자의 일관된 방침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1순위가 북한체제의 안정과 존속이고, 2순위가 한반도 비핵화, 3순위가 북한의 비핵화였는데, 현재도 이 순위가 바뀌지 않았다.
둘째, 중국은 북한이 리비아-이란 사태를 통해 “체제 보장 없는 핵포기”는 “체제붕괴”라고 확신하고 있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경제격차를 축소해 경제적 전략균형을 이루고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정상화 등 안보적 전략균형을 이뤄야만 핵 포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중국의 시각이다. 따라서 중국은 핵실험으로 역내 긴장을 반복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에 대해 안보적 부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북정책을 크게 전환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활용도를 높이고, 그동안 거의 독점적으로 누려온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북한과의 일정한 유대가 필요할 것인데, 이 점을 고려하면 급작스럽게 지금까지의 압박 보다 더 높은 강도의 압박을 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은 북한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붕괴될 경우 그에 따른 대규모 피해는 상당 부분 중국으로 넘어오게 돼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라는 완충지역이 사라지게 돼 미국세력과 국경을 마주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이 지니는 지정학적, 전략적 유효성이 유지시키고 있는 구조적 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중미 간의 전략적 협력이 불투명한 상태인데다, 북한-한국 간의 상호 신뢰가 성숙되지 않고 있으며, 불확실한 대만통일 문제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최근의 변화들 가운데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정부가 즉각 국내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북한비판을 허용한 것 그리고 기타 중북 국경 통재, 세관, 국경수비대와 금융을 통한 제재들은 모두 북한을 압박하는 전술을 한 단계 높인 것에 다름 아니다.
맺음말
중공 지도부는 건국 후 지금까지 5명의 최고 지도자들의 국가전략 가운데 전환점이 된 것은 鄧小平부터였다. 전쟁불사에서 경제건설과 개혁개방으로 나아간 것이다. 대한반도 정책이 변화된 것도 이 시기와 겹친다. 한국과의 수교가 이를 상징한다. 그 다음으로 변화의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胡錦濤와 習近平 시대에 들어온 이후부터였다. 한반도 비핵화 보다 한반도 안정을 우선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들을 준거로 몇 가지 결론 도출과 전망이 가능하다. 또 이를 토대로 중국의 대한반도 혹은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데에 필요한 약간의 제언이 가능하다. 먼저 결론과 전망 부분인데 아래와 같다.
첫째, 중국은 대만, 티베트 및 新疆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위기관리 형태와 달리 한반도에 대해서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위기발생의 예방 조치, 남북한 간의 충돌 자제 유도, 사후 화해 중재노력 등 세 형태로 진행해오고 있다.
둘째, 중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고 해서 국가안전이 보장된다고는 보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자국 안보를 위한 정당한 노력으로 여기면서도 핵무기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봤던 엉거주춤한 입장이 북한정권을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게 만들면서 북핵문제의 확대를 불러일으킨 간접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셋째, 중공지도부가 세계평화와 주변국들과의 안정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조건 없는 평화애호 성향에서 비롯됐다고 하기 보다는 중국의 국력이나 군사력이 미국을 능가해 세계문제를 좌지우지할 정도가 아닌 상황에서 평화수호 노선이 자국의 국가 핵심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을 능가하는 시점이 되면 평화수호를 주장하는 강도와 의지가 저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넷째, 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북한의 핵 생산 및 확산반대 입장은 중국국가 지도자가 교체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영향력과 실리를 추구할 것이다. 이 가운데 한반도의 안정을 한반도 비핵화 보다 더 우선시하고 있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은 남한에 대해선 변함없이 경제교류와 무역규모의 확대를 통한 양국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남북한 모두에 배제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남북한 중 어느 일방에게 흡수 통일이 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다섯째, 중국의 북한정책은 전술적으로만 바뀌었을 뿐 구조적,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았다. 최근 習近平이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의 핵보유국 불인정, 핵무기개발 불용인이라는 미국의 원칙에 동의를 표명하는 등 일견 변화된 듯이 보이는 일련의 행보는 중국의 일관된 원칙임을 강조하는 선에서 대미 정책과 미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 따른 전술적인 변화에 가깝다. 그것은 앞으로도 동일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중공수뇌부의 의중을 발표한『人民日報』의 논설(社評)에서 향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할 것이지만 기존의 정책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기존 정책에서 북핵문제해결 보다 한반도 및 북한체제의 안정 유지 및 관리를 우선시 한다.
여섯째, 현 조건에서 북중관계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고, 중국은 미국과의 연관 속에서 북한문제의 장기적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 예상된다. 근거는 현재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원인으로 대략 세 가지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1. 미국과 북한 간의 모순인데, 중국관방 측은 한반도를 정치, 군사적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는 여러 모순 중 주요 모순으로 북미간의 모순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2.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이익과 목표가 다른 점이다. 3. 한반도의 위기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충돌이 누적돼온 결과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일곱째, 중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한반도에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미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 진폭이 결정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여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제고되긴 해도 그것은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이라는 원칙에 묶여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을 장악하거나 식량원조와 원유공급을 “대폭” 줄이거나 중단하는 등의 과도한 압박은 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북한을 반중 세력이 되게 하거나 아니면 북한이 미국과 전격적인 화해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한지도부의 비이성적인 모험주의를 경계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스스로 타국의 내정간섭을 금기시해온 원칙을 깨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그랬을 경우 북한이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유사시, 특히 현 북한체제의 붕괴, 최고 지도자의 유고나 미국의 북한 군사공격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해 최근 2014년에 들어와 중국이 한반도 유사시 한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한 중국 당국의 발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의지의 진정성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현재로선 다분히 전략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협의를 통해 유사시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총론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실현 수단이라는 각론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갖고 북한에 대한 기존의 관리 차원을 넘어 통제하거나 혹은 압박을 가할 경우 그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보다는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서 거둔 한중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행계획을 십분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특히 정치, 안보, 군사 면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내심 북한 지도부가 중국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얼마 전 주미 중국대사 崔天凱가 미국이 중국에게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시키라는 요구는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면서 미국을 반대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더군다나 중국은 북한을 압박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피력했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에 지나치게 기대기보다는 북핵문제를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중국과의 정치, 경제, 군사 교류를 확대, 심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협력하거나 보조를 맞추면서 북한 김정은 지도부와의 직접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선 핵 포기, 후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루자는 미국과 “선 북미관계 정상화, 후 핵 포기”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간의 대립은 6자회담 내에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근래 워싱턴에는 북한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무관심이 팽배해 있다. 또한 외부 압력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 내부로부터의 압박을 높여줄 수단을 강구하거나 아니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핵 포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이를 유엔, 중국, 러시아, 한국과 일본이 보장하면서 그 이행을 감독하는 등의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중국의 대북관계가 전술적인 측면이기는 해도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중국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리라는 환상에 빠질 것을 경계해야 한다. (끝)
열쇠말 : 위기관리, 한중관계, 중북관계, 중국의 한반도 정책, 중국의 한국정책, 중국의 북한정책, 시진핑의 한반도 정책
Abstract
This study makes three suggestions on China's foreign policies towards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ones towards North Korea, based on the conclusions and prospects made by the study.
First, China’s policies to manage the Korean peninsula have three forms, crisis prevention measures, the refrain from conflicts between the two Koreas, and mediation between the two after reconciliation.
Second, China has started policy to maintain the stability within the state rather than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it has been taking since July 2009, the Hu Jintao administration, and it seems to continue this policy line. China will maintain peace, stability and the denuclearization of the peninsula, while seeking to make influences and utility. China’s North Korea policy has not been changed fundamentally ; the only thing changed is its measures. China will stick to some principles, which ar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disapproval of North Korea's nuclear power status, opposition to North Korea's nuclear production and proliferation, despite changes in its leadership. Thus, it can be said that when it comes to nuclear issues of the DPRK, the conflicts between the USA, which pursues the strategy of “denuclearization first, normalization of the DPRK-USA relationship next”, and the DPRK, which maintains opposite strategy, is difficult to be resolved in the Six-Party Talks. Therefore, a new solution needs to be sought, such as conducting the normalization of the DPRK-USA relationship and the denuclearization processes simultaneously, while the UN, China, Russia and the ROK assuring and watching the processes, rather than counting only on the Six-Party Talks as a way of resolving the issue.
Third, China is predicated to influence on the Korean peninsula as a great power, and the level of the influences will be determined by the Sino-America relationship. Despite increases in the level of China's influences over North Korea, it will not exceed a certain level due to the non-intervention principle and North Korean leader's distrust toward China.
In case of emergency in North Korea, such as the collapse of the current regime, death of the Supreme Leader, military attacks by the USA, China is highly likely to intervene militarily. Therefore, through close strategic consultations with China, it is necessary for Korea to put efforts to help China understand that Korea will not infringe the interests of China in any case. The Park administration's ‘trust-building process in the Korean peninsula’ is heading to the right direction, but when it comes to actual measures, it is very probable that it will lose its direction if Korea has excessive expectation on China, which will lead itself to put pressures and controls on North Korea, which are beyond the current managing measures. Rather, it will be more effective to take the advantage of the various performance plans made during President Park's visit to China to strengthen the Korea-China strategic cooperative relationship. In particular, there is a need to promote the political, security, and military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other words, South Korea needs to expand and deepen the political, economic, and military relations with China, without over-dependence on the role of China and over-recognition of the North Korea’s nuclear problem.
On the other hand, seeking for dialogues with the Kim Jung-eun's regime, collaborating with the USA, may bring more meaningful results consequently. It is a desirable situation where China's policy towards North Korea is getting positive, even if the changes are limited to technical aspects. However, we should not have a fantasy that China will do what we want or understand the situation the way we want it to be.
Keywords : Crisis management, Korea-Sino relationship, Sino-North Korea relationship, China’s policy towards Korean peninsula , China’s policy towards South Korea, China’s policy towards North Korea, Policy of Xi Jinping towards the Korean peninsula
영문초록 한글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론과 전망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중국의 대한반도 혹은 대북정책 관련 제언을 종합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한반도 관리 형식은 위기발생의 예방 조치, 남북한 간의 충돌 자제 유도, 사후 화해 중재노력 등 세 형태다.
둘째, 중국은 胡錦濤 정부 때인 2009년 7월부터 한반도 비핵화 보다 안정유지 정책으로 돌아섰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이 노선을 지속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영향력과 실리를 추구할 것이다. 중국의 북한정책은 전술적으로만 바뀌었을 뿐 구조적,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북한의 핵 생산 및 확산반대 입장은 중국국가 지도자가 교체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선 핵포기, 후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루자는 미국과 “선 북미관계 정상화, 후 핵포기”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간의 대립은 6자회담 내에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북핵문제는 6자회담 내에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핵포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이를 유엔, 중국, 러시아, 한국이 보장하면서 그 이행을 감독하는 등의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한반도에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미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 진폭이 결정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여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제고되긴 해도 그것은 타국에 대한 내정불간섭이라는 원칙에 묶여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유사시, 특히 현 북한체제의 붕괴, 최고 지도자의 유고나 미국의 북한 군사공격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협의를 통해 유사시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총론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실현 수단이라는 각론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갖고 북한에 대한 기존의 관리 차원을 넘어 통제, 혹은 압박을 가할 경우 그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서 거둔 한중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행계획을 백분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특히 정치, 안보, 군사 면에서 양국간의 협력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내심 북한 지도부가 중국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넘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에 지나치게 기대기보다는 북핵문제를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중국과의 정치, 경제, 군사 교류를 확대, 심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협력하거나 보조를 맞추면서 북한 김정은 지도부와의 직접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관계가 전술적인 측면이기는 해도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중국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리라는 환상에 빠질 것을 경계해야 한다.
위 논문은 한국전략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하는『전략연구』, 제 21권 제3호(2014년 7월)에 실린 것입니다. 『전략연구』는 학술진흥재단 등재학술지입니다. 본문 중간에 빠진 두 개의 지도는 블로깅 하니 자동적으로 실리지 않게 된 것이지만『전략연구』에는 그대로 실려 있어 두 지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