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지정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인도양의 지정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21세기 들어 미국-중국 간 대결의 장이 서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인도양(印度洋, Indian Ocean)으로 확대됨에 따라 인도양을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각축전이 심화되고 있다. 서남아시아의 지역강자인 인도가 전통적으로 자국의 앞바다로 간주해온 인도양을 “수호”함과 동시에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접근에 호응하는 등 외교, 군사적으로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 각축전에 뛰어 들고 있는 형국이다.
각축전의 뒷면에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과 맞물려 가속화 되고 있는 동북아 질서의 재편 상황에 연동돼 있다.
강대국들이 인도양을 둘러싸고 세력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이 대양이 지니는 지정적 중요성 때문이다. ‘인도’라는 명칭에서 유래된 인도양은 동경 20°에서부터 태평양의 동경 146°55'까지의 해역을 말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바다다. 넓이는 세계 전체 바다 면적의 20%를 차지한다. 인도양을 에워싸고 있는 나라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걸쳐 총 47개국이나 된다. 이 국가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인도양에 국가이익이 걸려 있다.
이유는 인도양이 세계 해상교통로들이 밀집돼 있는 해역으로서 원유, 광물자원, 곡물 및 상품 수출입의 요로이기 때문이다. 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50%, 유조선의 70%가 이 해역을 통과한다. 세계 제1, 제3의 무역 대국인 중국과 일본에게 인도양-믈래카 해역은 중동·아프리카의 해상 석유수입 통로인 ‘시레인(sea lane)’이다. 이는 한국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무역국(수출 1위, 수입 2위)으로 올라선 중국은 대외무역의 90% 이상이 해운으로 이뤄진다. 중국이 수입하는 전체 원유의 80% 이상이 인도양-믈래카 해협을 거친다. 즉 인도양은 중국의 ‘목줄’인 셈인데 실제 중국인들 스스로도 “전략적 생명선”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모두 인도양에 국가의 사활 혹은 국가 활로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배경에서 인도양을 제패하면 인도와 서남아시아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은 알렉산더 대왕, 피터 대제, 히틀러, 처칠, 스탈린, 네루, 마오쩌둥, 닉슨 등의 정치 군사 지도자에서부터 맥킨더, 마한과 같은 지정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략가들이 인도와 인도양의 전략적 중요성을 언급한 것처럼 카프란(Robert D. Kaplan)은 인도양이 21세기 강대국들 간에 세력경쟁이 벌어질 주요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각축전은 이미 미국의 대중국 봉쇄망을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 봉쇄망 중 취약한 고리부분을 끊기 위해 인도양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와 그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 촉발돼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에는 시진핑 주석의 국가비전인 ‘중국의 꿈(中國的夢)’이라는 정치적 의지와 밀접하게 결부돼 있다. 중국의 꿈이란 중공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 목표로 국가부흥, 민족진흥, 인민행복 달성이 제시돼 있다.
이 꿈이 실현되려면 무엇 보다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의 지속과 대국으로서의 위상 및 영향력이 지속돼야 하고, 군사적으로는 이를 보호할 수 있는 군사력이 증강돼야 한다. 경제성장을 유지시키려면 중동 및 아프리카산 원유와 자원은 없어선 안 될 필수불가결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믈래카 해협을 자국의 영향 하에 두고 있는 미국이 중국의 생명선을 봉쇄할 경우 자원수송과 대외무역에 지장을 받아 ‘중국의 꿈’은 실현여부가 불투명해진다. 중국이 미국을 이 꿈을 실현하는 데에 최대 걸림돌로 상정하고 있는 이유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은 중국과의 교류 협력 모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심 중국의 세력 확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 일본, EU의 쇠퇴와 함께 중국의 상대적 부상에 따라 미․중 양국 사이에는 협력 보다 갈등요인이 많아지고 협력기조가 약화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이 구사해오고 있는, 중국 주변국들과의 관계 강화를 통한 대중국 팽창에 대한 견제와 중국포위 정책은 상당 기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해양 대국이긴 하지만 강국은 아닌 중국이 ‘해양 강국’건설을 선언하고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전략 면에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게 태평양(남중국해)과 인도양 두 바다를 연결하려는 ‘양양전략’(兩洋, Two Ocean Strategy)이다. 배경과 성과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주요 동기는 믈래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안전하게 중동과 아프리카 산 석유 및 광물자원을 자국으로 운송하고, 대외수출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실현 방안으로는 미얀마와 파키스탄을 각기 ‘국제송유관’으로 연결해 에너지를 수송하고, 이 지역의 항만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국제송유관 건설은 원유의 수송거리 단축에 따른 경비절감 등의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대한 대응은 물론, 인도에 대한 견제, 국경지역 국가들과의 각종 협력강화와 국경분쟁 및 국내 소수민족의 이탈예방 등과 같은 국가안보 면에서의 이익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미얀마 군사정권에 공을 들인 결과 미얀마 서부 항구도시 차육 퓨-만달래이-중국 쿤밍 구간 800km의 송유관에 대해 20년간 사용권을 획득했다. 이곳을 거쳐 믈래카 해협을 통하지 않고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출해권(出海權)을 확보한 것이다. 또 중국은 항구 운영권 인수와 경제원조를 통해 중국-파키스탄 간 철도 및 인프라 건설, 방글라데시의 무역항 치타공의 항구 운영권 인수와 스리랑카의 콜롬보·함반토타 항의 개발을 위한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둘째, 인도양을 인도의 제해권에 두는 것을 막고, 나아가 인도양의 제해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다. 미얀마(차육 퓨)와 파키스탄 항구(과다르 항)의 사용을 통해 인도양 진출로를 뚫음에 따라 중국 해군은 기존 태평양 위주의 한 바다( ‘一洋전략’)에서 두 바다를 동시에 활용하는 ‘양양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중국은 진주 목걸이 모양처럼 인도대륙을 둘러싼 국가들의 거점 항구의 건설을 지원해 이 항구들을 임차하거나 친중적인 협력관계로 만들겠다는 ‘진주목걸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들어오는 원유 및 상품수출의 해상 수송로를 확보하고, 나아가 중국의 ‘신 실크로드’ 전략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서남아시아 국가들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복안이다.
인도-태평양 시대(Indo-Pacific era)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세력 확대를 막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한국-필리핀-인도’를 잇는 군사·안보동맹을 구축하려고 한다.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균형정책을 내걸면서 동북아 지역 보다 동남아와 남중국해에 전략적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 서남아시아 지역의 지역 대국인 인도, 파키스탄과도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군사력 재배치에 착수한 배경이다. 그 동안 불협화음이 잦았던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인도도 중국을 견제하고 서남아시아 지역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호응하고 있다. 결과는 인도정부가 인도 남부 첸나이 기지에 미군 주둔을 허락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이곳의 최정예 육군 1,000명, 공군 500명의 병력과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 섬의 미 해군을 인도의 요청이 있을 시 수시로 동원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아태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면 인도와의 관계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인도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발판으로 미국의 아태지역 세권 확대를 봉쇄하려는 중국에게 인도는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나라다. 만일 인도가 중국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중국의 외교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년 제4세대 전략 핵잠수함(094급)까지 확보한 중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인도의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1962년 중․인전쟁 이래 중국과의 육상 국경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 인도양에까지 진출해 진주목걸이 전략을 시도하자 이를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는 인도의 입장에서는 해상 안보에도 적신호가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 중국은 진주목걸이 전략에 대해 우려하는 인도를 대규모 경제지원을 통해 안심시키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파키스탄을 지원해 인도를 견제하는 정책을 접지 않는 한 인도의 의심과 양국 간의 전략적 경쟁관계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인도 정부가 최근 발표한 ‘신해양군사전략’ 보고서에서 인도양 진출을 노리는 중국 전략 핵잠수함의 위협을 집중 부각시키며 이에 맞서 군비를 증강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이 보고서에서 인도는 “국방 현대화를 추진해온 중국이 인도양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맞서기 위해선 핵잠수함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3면이 바다인데다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해양의식이 뒷받침돼 있는 인도해군은 연해방어ㅡ지역통제ㅡ원양공격력의 육성 경로로 발전해왔다. 2014년 4월 현재 인도는 이미 취역했거나 건조중인 항공모함만 3척이며, 구축함 8척(이와 별도로 3척을 다시 건조할 계획임), 호위함 17척(이와 별도로 10척을 더 건조하고 있거나 건조 계획 중임), 경호위함 24척(이 가운데 22척이 건조 중이거나 건조 계획중임), 잠수함 16척 등 약 140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27년까지 항공모함 3척을 포함해 신형 수상함과 잠수함 150척으로 세계 제3위의 해군력 보유를 목표로 육․해․공 3군 중 3분의 1 이상의 예산을 해군 군비에 할당하고 있다. 어떤 해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60%에 가까웠던 적도 있었다.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의 ‘남진’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견제하고자 하는 인도와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는 인도에 향후 5년간 무려 3조5,000억엔(약 34조원)의 투자와 융자를 약속하면서 미국과 인도의 해상 공동훈련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그는 또 남아시아의 관문이며, 원유 등 수입 자원의 해상수송로에 놓여있는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에도 적지 않은 액수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처럼 아베가 일본정부의 재정문제로 한동안 중단됐던 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원조에 박차를 가해 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은 중국의 양양 및 진주목걸이 전략에 대항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렇듯 인도양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열외에 있는 느낌이다. 중국, 일본처럼 한국도 인도양-믈래카 항로에 국가의 명운과 활로가 걸려 있음에도 우리는 인도양을 전략적 인식 속에 넣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각축전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팔짱을 끼고 있다. 자칫하다간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일본-한국-필리핀-인도’ 라인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고 인도양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국익은 우리 힘으로 보호할 수 있는 해군력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위 글은 월간『自由』지 2015년 2월호(2월 1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