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노래 '비오는 양산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노래 '비오는 양산도'
누가 평가하든 한국 가요계에서 최상의 목소리를 들라치면 여가수로는 이미자(1941~)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이는 “트로트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이미자를 가요계의 여왕이라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문화예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대한민국 대중 가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받은 수훈자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물론, 고령층의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이미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첫남편과 이혼한 뒤 친딸을 외면하고 산 이야기나 후배 여가수 견제, 증여세 포탈(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총 44억 5,000여 만 원) 등의 나쁜 일화들이 회자돼서 그에 관한 악플이 적지 않고 안티팬도 꽤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자의 인품이나 도덕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노래실력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평소의 멀대답지 않게 이 글에서는 이미자의 노래 한 곡을 공유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니 인품과 도덕적 잣대는 거두고 단지 음악적 측면에서만 그를 보기로 했다.
과연 이미자가 지금까지 부른 노래는 몇곡이나 될까? 아마도 2000곡은 족히 될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는데 실제로 2000곡이 넘는다고 소개돼 있다. 이미자는 이 많은 노래들 중에 어느 곡을 가장 마음에 들어할까? 또 그의 팬들은 어느 곡을 가장 좋아할까? 아마도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다양한 반응이 있겠다. 나는 '비오는 양산도'라는 노래가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가히 이미자의 대표곡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미자의 노래 중 히트곡으로 분류되는 노래만 가수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1959년)을 시작으로 동백아가씨(1964년), 지평선은 말이 없다(1966년), 섬마을 선생님(1967년), 빙점(1967년), 아씨(1970년) 등등 약 400여 곡에 달하는데 비오는 양산도는 여기에서 빠져 있다. 그래서 이미자의 매니아가 아니고선 '비오는 양산도'라는 노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자가 비오는 양산도를 부른 것은 1969년이었는데 28세 때였다. 이 노래의 작사와 작곡은 모두 한국 가요계의 거장으로서 일세를 풍미하다 간 박춘석 선생이 했다.
언젠가 비오는 양산도 노래를 두고 이미자는 “사실 이 노래는 부르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2011년 5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박칼린의 데뷰무대인 '디스 이즈 칼린'의 무대에 섰을 때 박칼린의 신청을 받고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천재들끼리는 통하는 모양이다. 언젠가 박칼린은 '비오는 양산도'를 “한국 최초의 R&D노래”라고 극찬한 바 있다. R&D는 학술에서는 연구개발을 뜻하지만 음악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최초 1940년대에 등장한 Rhythm and Blues 음악의 약자다. 박칼린은 이미자로부터 음악적 재능이 “천재적인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은 음악가다. 또 박칼린은 대학에서 서양음악, 국악을 섭렵한 후 뮤지컬 등의 무대음악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 “음악감독”이니 보고 듣는 귀가 있을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 역시 이 비오는 양산도 노래에 일찍부터 꼽혀 있었다. 가사를 보면 님을 두고 떠나는 이의 애닯은 심사를 표현한 한 편의 시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둠의 농도가 짙어가는 초겨울 밤 잠시나마 상념과 우수에 젖게 만드는 곡이라는 생각이다.
궂은 비 나려 나려 기러기 떼 날으는
양산도 칠십 리 적막한 칠십 리
님을 두고 가는 내 마음 음음음음음
가슴 속에 스며드는 가슴 속에 스며드는
첫 사랑이 애달퍼
가랑비 소리 없이 낙엽 위에 나리는
양산도 칠십 리 외로운 칠십 리
님을 두고 가는 내 마음 음음음음음
소매 끝에 스며드는 소매 끝에 스며드는
찬바람이 차가워
끝으로 의문 한 가지! 가사 중 양산도라는 곳은 어디를 말할까? 이런 저런 자료를 뒤져봐도 어디에 있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지도에서도 찾아봤지만 남북한 모두 보이지 않았다. 한자로 陽山道라고 한다면 일본에는 있는 지명이지만, 한국에는 없는가 싶다. 양산도가 실제의 지명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이 든다.
가사 중에 “날으는”이라는 표현은 한글 맞춤법에는 맞지 않는 것이지만 “나는”이라고 하면 의미가 바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서 박춘석이 고의로 그렇게 표기했을 것 같다. 이제 군소리는 이쯤에서 그만 접고 “한국 최초의 R&D노래”를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https://youtu.be/cCCsYl30qxQ?si=hzQUA-4CSBIbpJNy
2024. 12. 2. 09:27
고향 포항집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