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일본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 새삼 국가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본다!

雲靜, 仰天 2024. 11. 14. 20:31

일본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 새삼 국가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본다!


일본은 우주개척 경쟁에까지 뛰어들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G3라고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아날로그로 작동되고 있다. 디지털 사회로 진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때 고도성장이 시작된 196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의 발전이 그대로 지속되면 가장 먼저 디지털 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1955년 “55체제” 출범 이래 자민당 일당독재이다시피한, 그래서 변혁과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는 정치계 그리고 행정구역상 “토도우후껜”(都道府県, Prefectures)의 최상층 토(都)에서부터 최하위 말단의 오오아자(大字)나 고아자(小字)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1718개(일본정부가 자국령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영유 북방4도의 6개 촌을 제외한 숫자임)나 되는 지자체들의 지역이기주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가 혁파되지 못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여전히 아날로그로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교통, 통신, 행정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뒤처져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수도 토우쿄우(東京, 장음 구분이 어렵고 격음과 경음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 문제 많은 현행 한글외래어 표기체계에 따르지 않고 그런 오류를 바로 잡겠다는 의도로 현지 외국어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임)나 오오사카(大坂) 같은 대도시의 전철 및 버스 회사가 각기 다 달라서 전철과 버스의 요금이 연계돼 있지 않다. 또 한국에선 전자정부가 돼 있어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왠만한 공문서와 서류 신청과 처리는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 따위의 개인 서류는 굳이 주민센터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발급받을 수 있지만 전자정부가 전혀 아닌 일본에서는 반드시 행정관청에 가야만 발급받을 수 있다.

한국이 이러한 디지털 행정 및 문화에서 일본보다 앞서 있다고 일본인들에게 얘기하면 한국에 가보지 못한 이들은 말로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한국이 그럴 리가 있냐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이기나 제도는 한국인이 보면 일본 국민들에게 굉장히 불편함을 안겨주는 듯하지만 일본인들은 오랜 타성에 젖어 있어 그런 불편함도 불편함이라고 못 느낀다. 한국은 한국인의 노마드(Nomad)적 특성이 순기능적으로 발휘돼 너무나 빠른 속도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넘어왔기 때문에 한국인이 일본에 가면 비교가 되기도 하고 많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현상은 어느 한 지역만의 특징이 아니고 일본 열도 전역에 전반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올해 내가 다녀 보았던 북쪽의 홋까이도우(北海道)에서부터 최남단의 오끼나와(沖縄)에 이르기까지 다 동일한 모습이다. 이번에 가본 큐우슈우(九州)의 쿠마모또(熊本)에도 다른 도시들과 마찬 가지로 여전히 길거리 여기저기에 우체통과 공중전화 박스가 남아 있었다. 5만 명 이상의 인구 중 60% 이상이 도시 구역 내에 거주하며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에는 물론이고, 시 아래 행정단위인 정(町), 촌(村), 군(郡) 지역에서도 눈에 띤다.

그런데 아날로그라고 해서 다 나쁘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다. 또 디지털이라고 해서 다 좋고 편한 것만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다. 가하지 않는 게 없고, 동시에 불가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사가 일장일단이 있고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듯이 디지털은 디지털대로,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대로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시내 길거리에 아날로그 체제하의 우체통과 공중전화박스를 남겨 놓은 것은 그것대로 장점이 적지 않다. 한국에는 이미 우체통은 전국 어디에서든 길거리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어진지 오래다. 이젠 박물관이나 근대역사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기물이 돼 버렸다. 그래서 바쁜 사람들이 소포는 몰라도 편지 따위의 우편물도 보내려면 반드시 우체국에까지 가야 한다. 거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전체 국민들의 비용으로 환산하면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길거리에 공중전화가 사라지고 없어 핸드폰을 살 수 없는 극빈층 사람들이 비상시나 중요한 전화를 하려고 할 때면 늘 애를 먹는다. 한국인들 중엔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늘 예외 없는 경우가 없듯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 해외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도 대부분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중에는 핸드폰이 없는 이도 있고, 그들은 자기 고국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없지 않아 있다. 간혹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온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이 편하다고 해서 사회 전체를 그것으로만 도배할 순 없다. 아날로그 체제가 더 편할 때도 적지 않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스템을 상보적이고 보완재로 공존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무엇을 아날로그체제로 남겨놓을지 선정작업이 현실과 국가예산에 부합하도록 치밀하고 합리적이어야 함을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체통과 공중전화는 국가가 앞장서서 존치시켜야 할 사회적 공기능 중의 하나로서 아날로그적 기능도 일부 남겨둬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사기업에 맡겨선 안 되는 것이다. 사기업은 공공의 안녕과 사회적 이익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먼저 따진다. 자본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리하여 사기업은 이윤이 남지 않으면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않거나 해오던 사업도 접어버리는 게 거의 대부분이다. 겉으로는 효율과 성장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기업 이익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산골 오지나 외딴 도서지역으로 연결돼 있는 열차나 선편 혹은 의료시설 등을 사기업에게 사업하도록 맡기지 말고 적자가 나더라도 정부나 공기업이 지속적으로 맡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자 존재 의의다. 한국사회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된 길거리의 우체통 그리고 거의 다 사라지고 없는 공중전화는 지금이라도 일본처럼 국가의 존재가치를 고려해서 지역마다 인구에 비례해 최소한도의 숫자는 되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으로 정부부처나 공기업이 공적 사업을 지속해야 할 소이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사회 빈부 격차를 완화시키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 중에 한 가지이기도 하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글의 주제는 일본에 남아 있는 아날로그적 이기와 국가 역할의 상관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날로그적 상태가 최상이라는 논지를 펴는 주장이라고 곡해하거나 논리를 비약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해서 상당한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 행정, 사회(디지털화 포함함)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경제 면에서도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까지도 안 돼 있는 등 한국에 비해 대략 30년 이상 침체돼 있다. 여기에다 잦은 지진 및 쯔나미 등의 요인으로 말미암아 제조업 공장이 상당 부분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서 일본은 경제적 공동화와 황폐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 여파로 젊은 사람이나 중년이나 전부 희망과 의욕이 없어 사회 전체적으로는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2024. 11. 14. 20:30
일본 쿠마모또 시내 식당에서
雲静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문호 나쯔메 소우세끼(夏目漱石)가 1년 정도 머물렀던 쿠마모또 집을 보고 오던 중 눈앞에서 우편물을 우체통에 넣는 한 시민을 보고 그대로 포즈를 취해 주길 요청해서 찍은 사진이다. (이 분의 손동작이 너무 빨라 편지봉투는 이미 쏙 들어가고 난 뒤임) 길거리에서 선채로 그와 우체통의 존치여부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봤다. 한국에선 이미 길거리에서 없어졌다고 했더니 그는 일본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길거리의 공중전화는 일본도 점차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히라도(平戶)시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기념성당 내에 있는 우체통

히라도 시에 있는 우체통
쿠마모또 시 중심지 인도에 놓여져 있는 공중전화 박스. 일본은 어디서든 공중전화 이용자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철거하지 않고 있다. 국가가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가(佐賀)현 사가시 소재 공중전화
까라쯔(唐津)시 기차역 앞에 있는 공중전화
히라도(平戶)시 히라도성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