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省의 시간 : 한국 불교문화의 정수 범패 시연 감상
警省의 시간 : 한국 불교문화의 정수 범패 시연 감상
오늘 오후 2시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 국악원에서 열린 동주 원명 스님 팔순 기념 경제어산수륙재(京制魚山水陸齋) 시연회에 초대 받아 가서 친구들과 함께 범패를 감상했다. 京制魚山이란 서울 경기 지역 사찰들의 불교의식에 쓰이는 소리를 말하고, 水陸齋는 말 그대로 물과 육지에 홀로 떠도는 孤魂들(귀신들과 아귀들)에게 공양해서 그들을 제대로 인연을 찾아 가도록 천도하는 재다.
세 마당(첫째 마당 도량옹호, 둘째 마당 도량쇄정, 셋째 마당 소청상위)과 영산예경, 향화공양, 회향의식으로 나눠 130여 분 동안 조용히 진행된 공연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숨 죽이고 관람했다. 말로만 듣던 범패, 哱囉춤을 포함한 승무를 직접 듣고 보게 된 좋은 체험이었다.
범패는 진감(慧昭라고도 함, 774~850) 선사가 당나라에 유학 가서 배워와 하동 쌍계사(당시는 玉泉寺)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 이 땅에 범패가 뿌리를 내리게 된 시초였다는 설이 있고, 현대에 들어와 명맥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 너무나 아름다운 공연을 접했다. 저음으로 발성되는 범패와 승무를 듣고 보는 동안 먼저 가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등 이승과 저승의 孤魂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침묵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같이 본 친구들도 모두 좋다고 입을 모았다.
수륙재는 일체 성인과 모든 범부에게 공양을 베푸는 재회인데 불교 의례 중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범패는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총칭하는 것으로, 사찰에서 재(齋)를 올릴 때에 부르는 소리다. 한자로는 梵唄라고 쓴다. 梵자는 인도 브라만(Brahman)교의 최고 원리로서 세계 창조의 근원을 가리키는 의미의 글자를 고대 중국인들이 한자로 옮긴 역어이다. 또 梵語가 산스크리트어를 뜻하듯이 산스크리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唄는 노래를 뜻하기도 하고 불교를 찬양하는 염불의 의미도 있는데 노래라는 의미로 쓸 때는 한국에선 이 한자 보다는 歌자를 쓰는 게 보통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서는 지금도 歌자 만큼 이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시연을 보면서 소리와 춤사위의 동선을 따라가는데에 몰입돼 다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었지만 끝나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쏟아 올랐다.
우선, 공연하는 스님들의 시연의 일체성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연 승 열세 분이 모두 한 사람인 것처럼 숨까지 같이 쉬는 듯, 발동작과 손동작 등등 모든 게 일치하고 엇박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즉 열 세 분이 범패를 읊조리거나 바라를 쳐도 신기하게도 소리와 동작이 동떨어진 게 없었다.
이 지구상에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리예술과 무대예술이 있지만, 이 범패와 승무는 시종일관 조용히 진행되는 게 큰 특징이다. 靜中動의 미학, 침묵의 예술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망자의 영혼(영가)을 中陰神(불교 唯識學에서 말하는, 사망 후 다음 생으로 나투기 전의 상태) 상태에서 다음 인연으로 이행해 가게 하기 위해선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이 슬프다고 소리 내어 울거나 떠들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예술은 놀이에서 나왔다지만 이 범패와 승무는 예외인 거 같다. 가장 경건히 치러져야 하는 죽음과 생명 관련 의식 그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범패(경산 소리)와 영남의 범패(영남 소리)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서울 범패와 달리 영남 스님들은 귀신을 몰아낸다는 광쇠라는 악기를 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동주 스님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타령조와 같이 들린다고 했다. 물론 서울 경산 범패도 큰 징을 치면서 하기도 하고 바라, 호적, 태징, 법고에 여러 소리가 있어 영남 소리보다 다양하고 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범패를 배우고 전수하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스님이 되고자 하는 출가자들이 줄어드는 데다가 이 어려운 범패를 가르치는 분들도 줄어들었고, 또 그걸 배우려 하는 스님들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올해로 법랍 63년차인 동주 원명 큰 스님의 말씀(국립국악원 구술총서 25,『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경제어산 보유자 어산어장 동주원명』, 국립국악원, 2023년, 73쪽)에 의하면, 해방 이후에 한동안은 승려사회에선 “중질할 줄 아느냐?”는 “범패를 할 줄 아느냐?”라는 뜻으로 통했고, 또 “중질을 좀 배웠느냐?” 하면 “범패 좀 배웠느냐?”라는 뜻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에는 “범패소리를 할 줄 아느냐”는 것이 “중질”이었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범패로 “중질”하는 승려들이 거의 없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걸 전수하는 과정과 배우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 터다. 모든 게 먹고 살만해지자 이기와 편함만을 쫓은 결과가 아닌가 싶어 퍽 아쉽다.
여러 가지 의문들(예컨대 범패와 관련해서 왜 魚山이라는 한자가 들어가 있고 魚山은 무슨 관련이 있으며, 또 魚와 山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하는 점 등등)이나 코멘트할 것도 눈에 띄었지만 이 방면에 공부가 부족한 내가 사사로이 거론할 게 아니다 싶다. 오늘은 그냥 아래에 공연이 진행된 순서대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동영상은 시연 중 매마당 마다 중요한 대목이다 싶은 일부 장면만 부분 부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보유자인 동주 원명 스님의 자서전도 사진 찍어 올렸다. 어젯밤 친구들과 헤어진 뒤 귀갓길 차안에서 책을 펼치니 출가한 연유, 범패 전수 과정, 수행 역정, 범패 예술의 세계 등등 큰 스님의 삶이 너무 흥미로워서 단숨에 다 읽었다. 스님들의 수행, 또 범패의 세계에 대해서 많은 눈을 뜨게 해줬다.
그 가운데 동주 큰 스님이 옛날 해인사 선방 시절 같이 지낸 지월(指月)스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 혹은 정신이 깊숙히 폐부를 저몄다. 당시 1970~80년대 지월스님은 세상에 많이 알려진 성철 스님과 달리 일반 국민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승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도력을 지닌 분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주장자, 누더기 한 벌과 염주 하나로 살았으며, 그리고 성철 스님 이상의 법력과 법기를 품고 산 선지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늘 승려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영산회상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하얀 옥백미 쌀밥에, 유리쪽같은 장판에, 이 좋은 집에 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양가(속가와 절집)의 죄인이 된다.” “중은 부모의 은혜를 져버리고 나왔으니까 부모에 대해 불효한 죄인이요, 부처님의 은혜로 시주 밥 받아먹고 공부 안 하면 부처님께 죄인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위로는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부모님과 시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와락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 나 자신은 잘 안다. 더 이상의 언설은 浮薄한 느낌이다. 槨示雙趺요, 拈花微笑일 뿐이다!
2024. 9. 9. 08:3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추기 : 위 내용을 시연을 주재한 정오 스님께 보내드렸더니만 스님께서 시연회 전체 과정을 모두 녹화한 동영상을 보내 주셨다. 여기에도 올린다.
https://youtube.com/watch?v=41sWMMUBADg&si=ykWdViLHdV2xAT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