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미국 수뇌부는 원폭 사용 고려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국 수뇌부는 원폭 사용 고려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왜 원자폭탄을 사용하려고 했는지, 또 왜 사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는 연구자들에게 오랜 관심사가 되어 왔다.
맥아더 원수는 1951년 4월에 트루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유엔군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는데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맥아더의 전쟁 전략이 트루먼의 세계전략에 상치되었고 종종 트루만 의중에 배치되는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중공군에게 밀려 후퇴하는 등 고전하게 된 상황에서 중공군을 제압하기 위해선 압록강 너머 동북지역에 있던 중공군 병참 등의 후방기지들을 공격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핵무기까지도 사용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전쟁확대론이었다.
반면, 트루먼 대통령은 그럴 경우 소련의 개입을 우려했고 전쟁이 제3차 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둘 사이엔 누적돼온 요인이 있었다. 예컨대 중공군과 북한군의 총반격에 직면하여 총퇴각이 불가피해지자 맥아더가 1950년 11월 30일 대만의 장개석군의 사용을 건의한 점, 자신의 이 건의가 새로운 세계대전을 우려한 합참본부에게 거부되자 맥아더는 원자탄 사용을 주장했다. 트루만은 기자회견에서 전황이 패퇴하는 상황이지만 대만의 국민당군의 활용은 고려하지 않지만 전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중”이며, 이 무기는 현장의 군 지휘관이 통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그는 국가비상사태까지 선언했어.
트루만의 원폭 사용 고려 발언은 이승만을 제외하고는 영국 등 서방 진영에서 반대했다. 심지어 영국의 애틀리 수상은 즉각 트루만과 만나 트루만의 원폭사용 고려를 철회시키면서 합의에 의해 전쟁을 종식시키기로 했다.
그럼에도 맥아더는 계속 국민당군의 투입, 중국 동북지역 폭격, 중국본토를 수복하기 위해 중국 남부에 제2전선을 열어야 하고, 일본 주둔 4개의 미군 방위사단을 증파해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모두 승인되지 않았다. 또 그 이듬해 대략 38선을 중심으로 피아 쌍방의 전선이 안정화 되고 워싱턴도 이를 통한 38도선 재설정정책(재분단정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던 중에 맥아더가 3월 24일 38도선 전면 재돌파 그리고 국민당군 투입, 중국본토를 공격해야 한다는 확전성명을 또 다시 발표했는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트루만은 4월 11일 그를 전격 해임하고 후임으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을 앉혔다.
그런데 트루만은 자기도 원폭 투하를 고려한다고 해놓고 왜 맥아더를 해임했을까? 또 트루만은 한국전쟁에서 만일을 위한 조치로 핵분열성 핵을 탑재한 핵폭탄 9개를 공군에 넘겨 오키나와로 운반하도록 허가했으며, 오키나와에 원자폭탄을 탑재한 B-29를 다시 배치하는 것도 승인했다. 그럼에도 그와 미국 지도부는 제한된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떤 역할이 될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 사전에 수립되지 않았던데다 이 새로운 무기와 전쟁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폭격을 가한다 해도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577393
2024. 8. 29. 22:2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