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로버트 번스와 '올드 랭 사인'
시인 로버트 번스와 '올드 랭 사인'
1796년 7월 21일 오늘, 스코틀랜드의 서정시인(lyrical poet)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가 서른 일곱 살의 짧은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스코트랜드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도 기억에 남을 노래의 가사가 된 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남기고 간 사후 불후의 예술가였다.
로버트 번스의 전기적 이해는 아래 소개글이 길지 않은 데다 좀더 자세하게 그의 작품도 언급돼 있는 별도의 소개 동영상이 첨부돼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r.search.yahoo.com/_ylt=Awr9ziMkepxmr.8awR9XNyoA;_ylu=Y29sbwNncTEEcG9zAzUEdnRpZAMEc2VjA3Ny/RV=2/RE=1721559716/RO=10/RU=https%3a%2f%2fwww.biography.com%2fauthors-writers%2frobert-burns/RK=2/RS=_HoAWJoN1L7jakd3IxuF738tTDQ-
올드 랭 사인은 '붉디 붉은 장미'(A Red, Red Rose)와 '셰라뮤어 전투'(The Battle of Sherramuir)라는 시로 유명한 로버트 번스가 1788년에 지은 시였는데, '그리운 옛날'이라는 이 시를 작곡자 미상으로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작별을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민요에 붙여 노래로 만들어졌다.
한국인들은 이 멜로디만 들어도 누구나가 “아~'작별'이구나”라거나 “아, '석별의 정'이구나”라는 탄성이 나올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상해 임시정부 시절 김구 주석의 모친 곽낙원 여사가 먹을 것이 없어 상해의 허름한 시장의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배추잎사귀들을 줍는 장면이 참 가슴 뭉클해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린 기억이 남아 있는데 바로 이 음악이 이 영화를 보면서 더욱 비감을 자아내게 했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부르는 축가로 쓰인다.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어로 '오랜 옛날부터(영어로는 Old long since)'라는 뜻이다. 이 곡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이고 어딘지 애수를 자아내는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다양하게 리메이크 되어 많이 애창되고 있다. 1997년에 있은 홍콩 반환식에서도 영국군 의장대가 마지막으로 행진하며 연주했던 곡이기도 하며, 영국이 EU와의 결별을 선언한 브렉시트(Brexit=Britain+exit)가 확정된 후 유럽 의회에서 의원 일동이 다 함께 부른 민요이기도 하다.
올드 랭 사인
옛 추억은 잊혀지고
사랑의 불꽃은 꺼져야 하나
그대 가슴 속의 그리도 뜨겁던 심장이
이리도 차가워지다니
정녕 그대 그리운 옛날을
되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never brought to mind?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auld lang syne?
오래된 인연을 어찌 잊어먹고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리?
오래된 인연들과 지난지 오래된 날들
어찌 잊으랴?
(후렴) For auld lang syne, my jo,
for auld lang syne,
we’ll take a cup o’ 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오랜 옛날부터, 내 사랑아
오랜 옛날부터
다정함 한 잔 축배를 드세
오래된 옛날을 위해
2절
And surely ye’ll be your pint-stowp!
and surely I’ll be mine!
And we’ll tak a cup o’ 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너는 네 잔을 한 잔 사고
나는 내 잔 한 잔 꼭 살 테니
다정함 한 잔 축배를 드세
오래된 옛날을 위해
3절
We twa hae run about the braes,
and pu’d the gowans fine ;
But we’ve wander’d mony a weary fit,
sin auld lang syne.
우리 둘은 쉴새 없이 언덕을 누비고
아름다운 민들레 꺾곤 하였으되
이제 발이 지칠 만큼 돌아다녔노라
오래된 옛날부터
4절
We twa hae paidl’d i' the burn,
frae morning sun till dine ;
But seas between us braid hae roar’d
sin auld lang syne.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우리 둘은 노를 젓곤 하였지만
우릴 가르려는 바다는 넓어지려고만 하네
오래된 옛날부터
5절
And there’s a hand, my trusty fiere!
and gie's a hand o’ thine!
And we’ll tak a right gude-willy waught,
for auld lang syne.
내 사랑하는 친구야, 그 손이 저기 있으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게
유쾌한 한 잔을 같이 마시니
오래된 옛날을 위해
아래는 이 곡의 스코트랜드판 버전이다. 곡을 들어보면 영국 북부의 춥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해온 스코트랜드인들의 애환이 연상되기도 해서 가히 우리의 아리랑에 버금 가는 멜로디가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to1xT93IlUI?si=QH98AQWrmnmhSvud
이 곡은 1절 외에는 불려지는 나라마다 다르게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 글 후반부에 가서 부연 설명을 소상히 하겠지만 특히 일본은 근대 이래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곡을 여러 번 개작해서 원래의 가사와 많이 다른 식으로 불리고 있는 데다 또 꼭 이별할 때만이 아니라 행진곡으로도 쓰이듯이 다양한 상황에서도 많이 불려지고 있다.
먼저, 이 곡의 한국어 버전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자. 8.15 광복 이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를 사용했다. 1948년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환상곡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이 애국가의 곡으로 사용된 것이다.
https://youtu.be/xf7-uVQcIiU?si=pzt6LFXrWnxwwMRI
1946년 1월 14일 중앙청에서의 태극기 게양식에서 연주된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이다.
https://youtu.be/3tduOm896fk?si=4nwcoA0xO0hYFPVl
광복 이후 정부수립 전까지는 북한에서도 마찬갖로 올드 랭 사인 곡에 맞춘 애국가를 사용한 바 있지만 1948년 중반부터는 그 1년 전인 1947년에 작곡된 오늘날의 북한 애국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3년 영화 '애수'가 상영되면서 이 노래가 다시 소개되었고, 시인 강소천이 한국어 번역 가사를 붙였다. 강소천이 번안한 가사는 아래와 같다.
1절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 날 위해 축배를 올리자.
2절
잘 가시오 잘 있으오 축배를 든 손에
석별의 정 잊지 못해 눈물도 흘리네.
이 자리를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고
다시 만날 그 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그 뒤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위한 환송곡으로, 연말에는 한 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쉬운 마음으로 많이 부르곤 했다. 1980~90년대엔 서울 종로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는 타종 직전에 서울시립합창단이 이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고, KBS가 해마다 연말 제야의 타종식을 중계할 때에도 출연 가수들이 올드 랭 사인을 불렀다.
또한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을 때에도 장군이 살아 있었던 생전엔 오늘날의 우리 애국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실이 참작돼 올드 랭 사인의 곡이 사용됐다. 2023년에 개봉한 영화 '1947년 보스톤'에서도 위 멜로디의 애국가가 사용된 바 있다.
다음으로 다양하게 개작되고 변주된 특징이 두드러지는 일본어판 버전을 보자. 일본에선 1881년(明治 14년)에 최초로 Auld lang syne의 곡조를 이나가끼 치까이(稲垣千穎, 1845~1913)가 번역하고 가사를 붙여서 심상소학교(尋常小学校, 메이지 유신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된 일본의 초등 교육기관의 하나임)의 창가집 초편에 게재되면서 연주와 함께 점차 일본 전역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해에 이 노래가 창가된 이후 주로 학교 졸업식에서 자주 연주되었다.
일본 근대 서양음악 작곡가 세또구찌 토우끼찌(瀬戸口藤吉, 1868~1941)는 올드 랭 사인을 아래처럼 행진곡 형식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일제의 군국주의라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https://youtu.be/D2av0JNJrNk?si=agvcRxKh4GZbMM7N
https://youtu.be/uSBzZyIxdak?si=v8EFzOK1DpHdYcia
원래는 아래에서 알 수 있듯이 4절까지 있었고 3절과 4절은 제국주의 시대 군국주의 냄새가 진동하는 가사로 돼 있다. 현재는 1절부터 2절까지만 연주된다. 아래 가사엔 일본어 한자 뒤에 후리가나(ふり仮名)를 그대로 붙여놨다.
蛍の光ひかり窓まどの雪ゆき
반딧불과 창문에 비치는 눈빛으로
書読ふみよむ月日つきひ重かさねつ々
글을 읽는 날을 거듭하는 사이
何時いつしか年としも杉すぎの戸とを
어느덧 세월도 흘러 삼나무문을
開あけてぞ今朝けさは 別わかれ行ゆく。
열고서 오늘은 서로 작별하는 날
止とまるも行ゆくも、限かぎりとて、
고향에 남는 이도 떠나는 이도 오늘이 마지막이니
互かたみに思おもふ、千万ちよろづの、
서로 생각하는 마음은 천년 만년이어라
心こころの端はしを、一言ひとことに、
마음의 오만 가지 생각을 한 마디로
幸さきくと許ばかり、歌うとふなり。
"부디 잘 지내렴" 하고 노래하네
筑つく紫しの極きはみ、陸みらのの奥おく、
큐슈의 끝단이든 토호꾸의 내지든
海うみ山やま遠とほく、隔へだつとも、
산과 바다가 우릴 멀리 갈라 놓아도
其その真ま心こころは、隔へだて無なく、
그 진심만큼은 멀어지는 일 없이
一ひとつに尽つくせ国くにの為ため。
오로지 나라 위해 진력하리라
千ち島しまの奥おくも、沖おき縄なわも、
치시마 열도 내륙도 오끼나와도
八やし洲まの内うちの、護まもりなり、
일본의 보호 하에 놓인 땅이니
至いたらん国くにに、勲いさおしく、
그 지배가 미치지 않는 나라에는 용감히 맞서리라
努つとめよ我わが兄せ、恙つつが無なく。
열심히 일하시오, 남정네들이여 부디 무사하시기를
위 4절에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나라에는 용감히 맞서리라"라는 가사가 역사학자인 나로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다. 아래 가사는 같은 4절인데 일제의 패망 해인 1945년까지 연주되었던 4절의 가사다. 가사 내용을 보면 일본의 내지로 일본과 함께 대만이 돼 있는 게 특이하다.
4.台湾の果てから樺太(からふと)も、八島の内の、守りなり。到らん国に、勲しく。勤めよ我が背つつがなく
4. 대만의 끝부터 카라후또(사할린)도, 야시마(일본)의 내지로 지키는 땅이니 그 지킴이 미치지 않는 나라에, 공훈을 세우리라. 근면하는 나의 등은 이상이 없네.
https://youtu.be/m0SFJDTB6xw
지금도 일본에선 80대 중후반 이상인 노인들이 이 노래의 일본어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고 일본어로 부르기도 한다. 또 일본 해상자위대에서도 함정의 진수식, 함선 퇴역식이나 임무수행을 위한 함정의 출항 등을 위한 행사에서도 군악대가 이 노래를 연주하며, 졸업식에서도 그대로 연주되고 있다.
본래 원곡은 스코트랜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날 새해맞이 직전에 지나간 한 해에 작별을 고하며 부르는 노래였지만 일본에선 이 곡의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 꼭 새해가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의 작별을 주제로 불러지기 시작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선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제곡으로도 쓰이기 시작하여 점포의 폐점시간 직전에 트는 노래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지금도 일본에선 간혹 서점, 마트 등의 상점에서 영업을 마치고 폐점하기 전에 이 노래를 틀어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이 노래 원곡의 의미와 쓰임새를 익히 알고 있던 서양인들이 일본에서 백화점이나 상점 측에서 왜 영업 마감시간 직전에 이 곡을 틀어주는지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나도 1980년대 후반 이래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했을 때 외국인이었지만 그날 영업 "시마이"(仕舞い) 한다는 걸로 바로 이해했지만 여타 서양인들 중엔 이 곡을 틀어주는 뜻을 알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도 마감시간임에도 끝까지 쇼핑을 계속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2020년대 이후로는 상점의 마감시간을 알리는 음악을 육성 방송으로 대체하거나 다른 음악으로 교체한 곳도 많다. 다이소도 2024년을 기점으로 다른 곡으로 교체하였다.
일본의 방송사상 가장 오래된 연말가요제인 NHK의 “우따갓센”(紅白歌合戰)에서는 지금도 맨 마지막에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무대로 나와 이 노래의 1절을 같이 부르는 걸로 막을 내린다. 이 전통은 1963년 토쿄 올림픽 찬가로 딱 한 차례 변경된 것을 제외하면 지금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한 시인이 남긴 시가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전지구촌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줄이야 로버트 번스 자신인들 알았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노래로 삶의 애환과 비통함에서 많은 위안과 힘을 얻었을까? 예술가의 위대함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라는 오래된 경구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여기서 또 한 번 보게 된다. 오늘로서 타계 228주년을 맞는 로버트 번스 시인의 작고일을 맞아 천상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염원한다.
2024. 7. 21. 12:1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