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음악 가요

음치의 대거리

雲靜, 仰天 2022. 4. 2. 09:04

음치의 대거리

 
오늘 아침, 멀리 해뜨는 동녘에서 친구가 육성으로 노래를 불러서 보내왔다. 봄기운이 가득한 봄꽃도 사진을 찍어서 함께 보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펴들었다. 친구가 한 소절만 불러서 아쉽지만,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낙화유수'다. 일제 말기, 고복수와 함께 당대 최고의 미성 가수 남인수가 불러 공전의 히트가 된 이 곡은 선친께서 젊은 시절에 자주 부르셔서 추억과 회한이 봄날 아지랭이처럼 묻어나는 노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이 노래를 음미하거나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 심사 속엔 내가 걸어온 인생사의 일단에 대한 회한과도 매치가 되어서 歌我一體가 되곤 한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노래보다 아버지와 어머니 살아 계실 적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멀리서 친구가 내 마음을 알고 불러준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심전심이요, 염화미소다.
 

친구가 직접 찍어 보낸 사진. 봄이 영덕 동대산 자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꽃들도 봄의 전령 역할을 하느라 바쁘기 시작한 모양이다.

 
친구는 정말 수준급으로 노래를 잘한다. 나는 그에 비하면 완전히 음치다. 직업 가수들이 잘 구사하는 빼고, 꺾는 것도 일품이다. 나는 오늘 또 그의 노래를 듣고 흉내를 내보면서 배운다. 그래도 절대로 음치의 수준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지만!
 
허나, 음치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옛날 노비들이나 머슴들이 주인 양반들에게 대들거나 반란을 펴듯이 나도 노래 잘하는 사람들에게 대거리하듯이 불러보기로 했다. 소음공해라고 바로 꺼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고맙겠다. 이참에 자신의 인내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시험도 해볼 겸 말이다. 한 소절만 불러줘서 친구의 노래 실력이 다 발휘가 되지 않아서 유감이긴 해도 먼저 그의 노래를 듣고 난 뒤에 음치의 반란이 어떤 정도인지 보는 게 예의겠다.
 

나는 '낙하유수'를 아주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다 잘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아무리 불러도 친구 만큼 따라 부를 수 없으니 다른 노래를 부르겠다. 내가 부를 노래는 일본 노래 '유시마의 시라우메'(湯島の白梅)다. 일제 말기 1940년대에 일본에서 발표돼서 대단히 히트를 친 곡이다.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은 내가 예전에 써놓은 글을 참고하면 소상히 알 수 있다. 아래에 붙여놨다.
 

https://m.blog.daum.net/suhbeing/780

유시마의 흰 매화(湯島の白梅)

유시마의 흰 매화(湯島の白梅) 먼저 아래의 노래부터 한 곡 들어 보자. https://youtu.be/PKNekQzg-C4    느낌이 어떤가? 위 노래는 작사가 사에키 다카오(佐伯孝夫, 1902~1981)가 작사한 가사에다 작곡가

blog.daum.net

 
나이 들고 남을 것은 자연다움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물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凍氷可折이 될 나이도 됐다. 되도록이면 작위는 최소화하고, 무작위는 늘여간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그쪽으로 가면 차츰 몸도 뒤따라 간다. 원초적 회귀를 위한 채비라고 봐도 틀릴 게 없다. 자연과 같이 물 흐르듯이, 구름 가듯이, 바람 부는 대로 사는 것이다. 때로는 몸이 가는 대로, 때로는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가 간혹 진실로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사는 친구가 이따금씩 안부를 물어오기라도 한다면 그런 寸音은 망외의 기쁨이다.
 
최근, 나이든 한 기업인이 밝힌 일화가 생각이 난다. 멀리 떨어져 살지만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사는 친구가 자기에게 가끔씩 전화를 걸어오는데, 그때마다 그는 대뜸 "야, 이 새×야 잘 있제? 사랑한다!"고 하고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린단다. 다른 말은 없고 전화하면 늘 이 말만 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점차 그 친구의 목소리, 그 친구의 욕소릴 듣는 게 큰 위안이 되고, 나이 드니까 그것이 낙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박종규다. "피스톨 박"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인들 중엔 정말 드물게 존경할 만한, 인간다움의 철학을 실천하는 바른 기업인 박종규 회장이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음악이든, 육성이든, 글이든, 소식이든,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발하는 살아 있는 소리가 듣고 싶다. 내게도 그건 작지 않은 희열이다. 강남 간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는 것 이상이다. 오늘 나처럼 음치여도 대거리의 소리를 직접 전하는 게 친구에게는 또 다른 사는 맛이 될 것이듯이.
 
세월이 또 낙화유수처럼 흐르고 있다. 이내 매화도 한껏 자태를 뽐낼 것이다. 또 친구의 목소리도 기다려진다.
 
2022. 4. 2. 09:0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