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심사
어느 겨울날의 심사
벌써 일찍부터 대선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노라니 우리민족은 지도자복이 이다지도 없는가 싶었는데, 최근은 점입가경이라 맥이 풀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신병원에 가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소시오 패스도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한껏 활개치며 나부대고 있다. 위로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아래에도 "무지한" 대중을 농락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게 이 시대라고 다를 게 없다. 시대사적 전환기에 처한 내우외환의 大局은 보지 않고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차고도 넘친다.
https://suhbeing.tistory.com/m/1136
오늘 그림을 그리면서 연속적으로 많이 들은 노래 한 곡 보내드립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을 자아나게 만든 일본 '엔까'(엔까의 원조는 일제시대 경기민요라는 설이 있음)입니다. 가사가 너무 이국적이고 시적이어서, 그리고 일부는 나의 심사와 겹쳐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가사는 앞뒤 맥락을 상상하게 만들도록 생략이 많이 돼 있지만(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메끼 사부로우(梅木三郞)가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이었네요!) 행간을 보니 가슴 아픈 이별이나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관계가 상상 되고요.
YouTube에서 '長崎物語' 보기
https://youtu.be/-xHIJ9nfphs
임진왜란(임진전쟁)을 일으키면서 세계는 넓다는 걸 체험한 일본의 막부는 바로 쇄국을 단행했죠. 이로 인해 에도(江戸)시대 약 300년 동안 일본 국민들은 외국으로 나가는 게 엄격하게 금지됐지만 그래도 몰래 도항으로 타국으로 나간 일본인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주로 범법자들과 상인들이 많았죠. 물론 박해 받은 천주교 교인들, 현실에선 이루지 못할 연인들도 있었습니다. 또 막부에서 추방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일본을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되돌아갈 순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잡히면 목을 내놔야 했으니깐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하지만 일본만큼 비민주국가란 없고, 가장 불쌍한 국민들이 일본국민인데, 그 옛날 칼이 모든 걸 지배한 전통 시대엔 삶의 희망이 없던 더욱 암담한 시절이었죠.
해외로 몰래 도항한 일본인들끼리 모여 산 곳 중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가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구룡포의 일본인 마을은 고작 일본인들이 제일 많았을 때가 300명 정도였었죠. 그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이곳은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한 네덜란드가 세운 동아시아 침략의 근거지로서 당시는 "바타비아"(バタビア)라고 불렸습니다. 바타비아와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히라도(平戶)-데지마(出島), 중국 등지를 오간 상선들이 질식 직전의 일본의 숨통을 트여줬죠.
1939년에 발표된 위 노래는 이국의 자카르타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가슴 아리는 사정이 담겨 있네요. 특히 자카르타에서 혈육이 돌아오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데에 대한 애타는 마음이 표현된 게 감지되는데 가사 중에 "종이 운다", "데지마의 앞바다에 엄마의 精靈이 흘러간다"는 대목이 그것을 은유합니다. 이 소절에 가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와락 쏟아지네요. 아마도 자신의 심사가 투영된 것일 겁니다.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하루 점들 술잔에 비치는 잿빛 하늘만 을씨년 스럽네요.
2021. 12. 21. 17:2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