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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화백, 온 라인에 일상의 풍경을 수놓다!

雲靜, 仰天 2021. 5. 17. 09:08

이상락 화백, 온 라인에 일상의 풍경을 수놓다!

 

이상락 화백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꾸준히 해오던 작품 활동을 온라인으로 연장시켰다. 그는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를 주된 화제로 그리는 구상 계열의 작가다. 그는 취미로 그리던 아마츄어 화가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선지 오래 되지 않은 직업 화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개인전도 몇 번 열었다. 온라인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단체전 출품도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수상도 여러 번 된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 정물이나 사람들이지만 모든 화가들이 그렇듯이 이상락 화백도 아무 것이나 다 화제로 삼지 않는다. 자신의 심미안을 거쳐야만 한다. 작가의 앵글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작가의 감성도 잠자코 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란 모든 外境에 광안경과 현미경을 다 들이대고 보는 1급 관찰자다. 이것이 일반인들과 화가가 다른 여러 가지 중의 중요한 일면이다.
 
일단 이상락 화백의 눈에 들어오면 풍경은 “리얼리티”(reality)를 넘어선 또 다른 그만의 세계로 펼쳐지며, 정물은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꿈이 되고, 인물은 실제 보다 더 육감적이 된다.
 
이상락 화백의 작품들에 흐르는 것은 자연 상태의 靜態的 숨결 그리고 자신의 심성 및 삶의 역정이 작품에 반영된 따사함이다. 한 마디로 작품들이 말 없이 존재하는 자연처럼 순연하고 우리의 일상처럼 정겹다. 소박함과 맑은 심성도 느끼게 한다. 사람을 다가오도록 잡아 끄는 힘이 있다. 작품에서 기교를 부리지 않는 질박함이 있다. 색감과 질감도 따스한 느낌을 준다.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심성, 그리고 오랜 세월 사연이 적지 않을 만큼 자신이 겪은 지난하고 신산한 삶이 투영돼서 그런지 매우 순정하고 인간적 향이 배어 있다.
 
아마도 그의 작품세계를 작가의 내면적, 심리적 機制까지 곁들어 매치시켜 볼 수 있는 사람은 나 멀대 이외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이유가 없지 않다. 내가 말하는 지난 옛날 얘기를 들어보면 감이 잡힐 것이다.
 
이상락 화백은 어릴 적에 포항시 북구의 학산 앞마을 나의 옆집에 살았다. 그는 나 보다 서너 살 위의 동네 형이다. 그러니 형이 내 옆집에 산 게 아니고 내가 형 옆집에 살았다고 하는 게 예의다. 우스개소리임은 물론이다. 그만큼 친숙한 사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상락이 형은 마을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신동으로 이름이 자자했다. 각종 사생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다. 아쉽게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동네가 달라서 한동안은 내왕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중등부부터 나가기 시작한 각종 미술대회에서나, 또 거의 일요일 마다 포항지역에서 그림 잘 그린다는 남녀 학생들이 모여 같이 그림을 그린 그림모임인 “화란회”(畵蘭會)에서도 형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화란회는 김두호 선생님의 지도 아래 이상락 형이 회장을 맡아 창립된 포항지역 고등학교 미술학도들의 모임이었다. 이 단체는 그 뒤 몇 년이 지나 없어졌지만 1970년대 포항 미술인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다. 현재 포항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 중엔 화란회 출신들이 적지 않다. 나도 회원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내가 후배들을 지도해서 포항 지역에서 고등부로선 최초인 대동고등학교 제1회 미술전람회를 열게 된 일화와 함께 당시 이 화란회 모임에 대해서 회고담을 쓰게 되면 좋겠다.)
 
 

포항지역 최초의 고등학생 미술동우회 화란의 멤버들이 전시회를 열면서 찍은 기념사진. 뒷줄 좌로부터 김일수, 멀대, 황원구, ???, 이상척, 앞줄 우에서 좌로 정용근, 하만수, 김미남, ???

 
당시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상락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고에 진학한 상태였다. 그 시절 그는 여러 미술대회에 나가서 많은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우리 집도 어려웠지만, 이상락 화백의 집안도 가난하기로는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다 가난했던 그 시절이었으니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근 반 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고인이 되신 지 오래된 이 화백의 慈堂께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들에게 그림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자식에게 미안해하신 모친의 표정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게도 맺혀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상락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어릴 적에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늘 웃는 얼굴로 쾌활하게 지냈다. 오히려 장난기가 있어 짓궂기까지 한 면도 있었다. 간혹 내가 개구지다고 나에게 꿀밤을 먹이기도 했다. 결국, 형편이 어려워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선 취직을 했다. 꿈을 멀리하고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 삶의 전선이 시작된 것이다. 오랜 세월, 이상락 화백의 특유의 낙천성과 성실함이 힘든 직장생활을 지탱시켰다.
 
그러는 한편, 그는 소싯적부터 꿔오던 전문 화가의 길로는 들어설 순 없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틈틈이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독자적이고 개성 있는 세계를 구축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꾸준히 연구하고, 사색하고, 몰두해야 한다. 그기에 따르는 경제적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직업 화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이상락 화백은 삶과 예술 양면에서 모두 자수성가했다. “물건을 담지 않으면 자루는 제 스스로 설 수 없다”고 한 것은 현대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였다. 이상락 화백 역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인생의 자루에 많은 것을 채워 넣었다. 자루가 서듯이 삶도 일어섰다. 작품도 따라 일어섰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순전히 독학으로 이뤄낸 형설지공이다. 늦은 용틀임이 아쉽다.
 
소싯적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같은 동네의 동생으로서, 한 때 그림을 같이 그린 후배로서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그가 미대에 진학해서 일찍부터 스킬을 쌓음과 동시에 각종 현대 미술의 사조들을 폭 넓게 접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지 못한 점이다. 이 화백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회사를 퇴임한 뒤인 50대 후반부터였으니 이제 겨우 수년 밖에 되지 않았다.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자질과 품성을 모두 타고났음에도 생활에 쫓기느라 그렇게 되지 못해 여간 마음이 짠하지 않다. 나는 그의 작품을 대하면 내가 송구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는 이나, 쓰는 이나 둘 다 어느덧 예순을 넘긴 나이가 됐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을 붓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이상락 화백을 친형처럼 좋아한다. 푸근한 그의 덕성이 우선 좋다. 그리고 붓을 끝까지 놓지 않는 화가로서의 의지와 성실함을 본받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화백은 숨이 멈추기 전까지는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인간과 자연과 삶에 대한 따스하면서도 자신의 삶이 형성시킨 애잔한 눈길도 거두지 않을 것이다.
 
형, 코로나 사태가 가라앉으면 한 번 봐야죠! 그때까지 建安하시길!
 
2021. 5. 17. 08:38
북한산 清勝齋에서
弟 雲靜
 

위 겨울의 소나무숲 그림은 교과서적인 대칭구도를 뛰어 넘어 비대칭 구도로 포착했음에도 어설픈 느낌이 없다. 그만큼 색과 붓질 등의 여타 조형적 요소로 너끈하게 소화했다는 얘기가 된다. 아래 허수아비가 있는 작품은 前景의 허수아비, 中景의 전신주와 기와집, 遠景의 다른 집들과 산으로 구성돼 있어 공간의 깊이를 더해준다. 색감도 따사한 느낌이다. 한 마디로 따뜻하고, 밝고, 여유로운 서정미가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흔히 접하는 시장 풍경이다. 인생에서 비켜갈 수 없는 삶의 현장으로서 정겨운 공간이다. 서민의 여러 가지 풍상을 겪으면서 살아온 작가 자신의 삶처럼 서민의 애환을 바라보는 정겹고도 짠한 눈길이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사실적으로 이 공간을 화폭에 담고 있지만 극사실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멈춰선 듯하다. 시장이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극사실이 주는 차가운 느낌을 피하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오른쪽 하단 구부려 일하는 여성의 몸체가 여타 기물들에 비해 조금 작게 처리된 것이 옥의 티가 아닐까 한다.

 
설익은 해설 보다 직접 작품을 접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번 작품들을 담은 자료를 아래에 첨부해 놨으니 바로 감상하기 바란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 외에도 완성된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이상락 화백은 코로나사태가 걷히고 내년 쯤에나 오프라인에서 여타 작품들도 선을 보일 생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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